여름밤, 그대를 연모합니다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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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부문 최우수 연기상... 발표하겠습니다."
시상자가 맑게 웃으며 조금의 뜸을 들이는 동안, 여주가 이 부문 후보에 올랐기에 무대 위 큰 전광판 화면에 그녀의 얼굴이 비치는 때였다. 카메라랑 눈 안 마주치려고 드레스 깃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냥 내가 널 사랑하게 해줘_의 임여주. 축하합니다!"
"···?"
여주의 이름이 마이크를 타고 큰 홀 안에 울렸다. 여주는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이 토끼눈이 되어 한동안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있는데··· 같은 작품을 찍었던 배우들이 여주의 등을 떠밀었다. 대박, 여주 축하해!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여주는 어··· 머뭇거리고만 있던 와중에 무대 위에서 그녀를 부르며 손짓하는 시상자에, 바닥에 닿는 기장의 드레스를 살짝 들어올려 조금씩 무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괜히 부끄러운 탓에 복화술로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제 무대 위로 올라가는 계단 5개만 오르면 되는 상황. 20센치 가까이 되는 굽이 달린 힐로 한 걸음 오르려 했을까···.
"···!"
스텝이 꼬여 그만, 우리 여주는 그대로 삐끗해서 넘어지고 만다. 그것도 철푸덕. 계단 근처에 있던 배우들 중 몇 명은 놀라서 여주 일으켜 주고. 괜찮아요? 묻는데 괜찮을 리가. 생방송으로 시상식이 중계되고 있는 데다가··· 넘어져서 느끼는 아픔보다 수치심이 더 하다는 거.
그래도 괜찮다며 웃어보인 여주는 가까스로 일어섰다.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일어나서 마저 계단을 오르는데, 발목 부근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여주는 발목뼈가 무슨 이상이 생겼거니 생각하고 일단 수상소감은 말해야 하니까 꾹 참고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아들고 마이크 거치대 앞에 섰다.
"어..... 우선, 이 상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말문이 끊긴 여주. 시선은 천장을 향한 채, 할 말을 떠올리고 있는데... 넘어지니까, 너무 당황해서 할 말이 기억이 안 나네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든 빈 오디오를 채워갔다. 그렇게 결국은 재치 있게 소감 발표를 잘 마무리 했다는.
𝙨𝙪𝙢𝙢𝙚𝙧 𝙣𝙞𝙜𝙝𝙩
"······언니. 나 진짜 너무 수치스럽다."
"응. 그럴만하더라."
아주 제대로 넘어졌던데? 자동차 핸들을 지지대 삼아 엎드린 여주의 매니저이자 친한 언니인 사라는 큭큭 웃어대기 바쁘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여전히 드레스 차림의 여주는 그게 그렇게 웃기냐면서 창가에 머리를 기댔고.
"벌써 인터넷에 기사 떴더라."
"벌써···? 아- 안돼..."
"시상식 꽈당녀래...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만 웃어... 좀...ㅋㅋㅋ"
"진짜 임여주 대단해."
나도 대단한 거 알아, 언니. 어이없다는 듯이 여주가 웃으며,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근데 있잖아, 나 깁스해야 할 것 같아.
"뭐?!"
"이것 봐. 지금 너무 아파."
다리를 펼쳐 붉게 부어오른 제 발목을 가리키며 태연하게 말하는 여주. 사라는 왜 그걸 이제 말하냐고... 여주 혼내고. 그럼 여태 아픈 거 참고 있었냐면서 묻길래 응! 세상 발랄하게 답한다. 사라는 그런 여주 보더니 뒷목 잡고. 야, 너 일주일 뒤에 새 작품 촬영 시작인데... 할 말을 못 다한 사라는 너랑 나 또 소속사 사장한테 혼나게 생겼다며 이마를 짚는다.
"촬영 미루자고 감독님 설득해보면 안 돼?"
"······니가 할래?"
"응! 내가 잘 말해볼게."
"···말이 쉽지. 이 사고뭉치 임여주야!"
콩, 여주의 이마에 딱밤 때린 사라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 젓는다.
𝙨𝙪𝙢𝙢𝙚𝙧 𝙣𝙞𝙜𝙝𝙩
이파리가 푸릇푸릇하게 바뀌어가는 6월, 대망의 새 작품 대본리딩 날. 한 작품 끝낸지 얼마 안 돼서 수상까지 하고, 광고 찍고, 예능에, 영화에··· 연이어 새 작품 촬영을 하게 된 여주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스케줄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도 기력 잃지 않고 지나가는 스태프들 보일 때마다 허리 숙여 인사한 여주는, 제 자리를 찾아 앉기까지 오늘만 인사를 백 번은 더 했다. 그렇게 ㄷ(디귿)자 테이블에 하나둘 배우들이 앉기 시작하고··· 다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연예계에 친목 쌓은 사람은 없기로 유명한 여주는 1회차 대본만 넘기는 중.
맞은 편 테이블에 붙어있는 상대 배우 이름표 '하율 역 김태형'을 가만 보던 여주. 하얀 종이에 단정한 글씨의 검은 글자만 들어오던 시야 안에, 갑작스레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안녕하세요."
김태형. 최근 들어 수준급 연기력과 물오른 미모로 10대 20대 소녀 팬들이 증가하는 추세의 배우. 여주와 똑같이 시상식에서 남자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받아, 화제성은 논할 것도 없다.
그런 그가 여주랑 아이컨택을 하······긴 했는데, 지나가듯이 1초가 전부. 덩달아 인사 건넬까 말까 고민하던 여주는 마음을 접었다. 잠긴 목 좀 풀고 있으면, 구석 쪽에서 대본리딩 현장을 촬영하려 하는 낌새가 보이길래 급히 손거울 들고 제 모습 살피는 여주.
"상태 좋고- 목소리 좋고-."
오늘 유독 피부가 좋아보이네. 흐뭇하게 웃은 여주가 만족해하고 있으면··· 문을 열고 동시에 들어오는 작가와 감독. 다들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하기 바쁘다.
작가와 감독이 자리에 나란히 앉자,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소개를 시작하는 시간이 시작되고···
"반갑습니다. 드라마 윤슬의 연출을 맡게 된 민윤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명료한 인사를 끝으로, 윤기의 옆에 있던 작가도 일어나 환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여러분의 대본을 책임 질 김수린이라고 해요."
앞으로 배우분들의 멋진 케미 기대할게요. 사르르- 녹을 눈웃음 보인 수린은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그러고 나면··· 이제 주연 배우부터 시작되는 인사.
"이번에 하율 역을 맡게 된 김태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윤슬 역을 연기하게 된 임여주입니다."
여주가 다시 앉기 무섭게, 아까의 차갑던 무표정은 어디 가고 환하게 웃기 시작하는 윤기. 이게 누구신가. 시상식에서 넘어진 걸로 유명하신 분. 가라앉아있던 분위기에, 여주 이름 들리니까 어느정도 풀어지고. 곧이어 하나둘 시선이 향하는 여주의 다리. 그것도 깁스를 하고 있는.
"아······. 그날의 상처에요. 꽤 아팠습니다."
저 때문에 촬영날 미뤄진 거 죄송하게 생각해요. 진심입니다... 괜히 그 말 내뱉고는 민망해서 대본 표지만 만지작거리는 여주 보며 다들 웃음 터진다. 괜찮다면서, 여름에 한복 입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면서. 다들 고맙다고 막 그래.
그렇게··· 가을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이었지만···
여주의 회복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빨라서,
앞당겨서 7월부터 촬영 시작.
𝙨𝙪𝙢𝙢𝙚𝙧 𝙣𝙞𝙜𝙝𝙩
흔하지만, 그들에게는 결코 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다.
반복되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울릴 때 즈음,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뎌질 때 즈음,
그리고
마음을 톡톡 간질이는 느낌이 그리워질 때 즈음.
그대에게, 오롯이 그대를 위해 선물하는 글 몇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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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정말이지, 어느 때보다도 환한 밤입니다."
"······."
"일렁이는 물결 마저도, ···달과 잘 어울리는 군요."
"······."
"······이 모든 게 완벽한 밤인데, 어찌 여전히 그대는 아무 말이 없으신지."
"·········윤슬."
"·········."
"윤슬이 예쁜 밤이네."
내가 서툴게 전하는 감정이, 너에게만큼은 온전히 닿았기를.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물결
그냥 필 꽂혀서... 쓴.
#무슨글인지모르겠어요
#모르겠다
#될대로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