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지묘
(魔女之猫)
-마녀의 고양이-
W. 설하
Trigger Warning,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존재하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황궁이 소란했다. 그 소란이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그곳에 모여있는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일것이라, 그 '마녀'라는 요괴가 실로 존재하는 것이냐 수군거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수도의 반절을 집어삼켰던 불길 속을 유유히 걷던 여인을 실제로 본 이들은, 하나같이 그 여인이 마녀가 아니면 무엇이겠냐 하며 입을 모았으며, 흑단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이나, 그 붉은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 것이 꼭 맹수의 눈빛과 똑 닮았다는 것 까지, 그 여인이 마녀가 아닐리 없노라-, 그리 말하였다.
마녀의 처분을 결정하기 위한 귀족들의 모임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니, 그 치들이 한데 모인 호두각(虎頭閣) 안이 소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역 죄인의 처분을 굳이 번거롭게 모여 정할 것이 무어가 있냐는 불평불만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왔으나, 한껏 찌푸려진 얼굴의 황제가 등장함으로 인해 그 불평을 입에 담고 있던 이들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검은 곤룡포를 걸친 채, 금빛의 상투를 틀어맨 황제가 느릿한 발걸음으로 호두각 안으로 들어서자, 몇몇이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도 선명히 들릴 정도로 주변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위엄있는 자태로, 호두각의 상석을 차지한 황제가 느릿하니 턱을 괴었다. 맹수와도 같은 자태에 사방에서 모자란 숨을 들이켰다.
"죄인을 들여라."
물로 씻어내었음에도 여전히 호두각의 돌바닥엔 붉디 붉은 선혈의 자국이 남아있었으니, 황제의 시선이 말라붙은 바닥을 향하다 마녀에게로 옮겨졌다. 끌려오다시피 호두각 안으로 들어서는 마녀의 모습이 실로 흉측한지라, 숨죽이며 그 '마녀'의 존재를 지켜보던 귀족들에게서 웅성거림이 터져나왔다. 저것이, 사람의 꼴이라 할 수 있는가, 대충 보아도 멀쩡한 꼴은 아닐 터, 원체 하얗기 그지없던 소복은 핏물로 절여진 옷은 더 이상 하얀 부분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손가락은 물론이며, 팔 한짝이 잘린 고통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인데도 고통에 몸부림치기는 커녕, 되려 빳빳히 치켜든 고개에 독하기 그지없다며 혀를 내두르는 이 또한 있었다. 손가락이 죄 잘리고, 팔 한쪽마저도 황제에게 잃어놓고는, 참으로 태연자약한 것이 실로 요괴의 정점에 서있는 이 답다 할 것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황제가 그 끌려들어오는 꼴을 구경하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마녀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공허한 눈빛은 줄곧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목적 없는 방황이오, 시선 끝이 향하는 곳은 마녀의 고개가 자리한 곳으로부터 정면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히 황제의 물음에 대꾸하는 시늉조차 내보이질 않으니, 무엄하다며 사방에서 귀족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소리가 호두각에 울려퍼졌다.
"내 분명, 네년의 팔을 자른 기억은 있어도, 혀를 벤 기억은 없다만은, 어찌하여 대답이 없느냐?"
질책임이 분명한 제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는 마녀의 시선에 황제가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험악해진 황제의 면(面)에 호두각의 분위기는 실로 살벌해졌으니, 마녀를 붙잡고 있던 하인 중 하나가 그녀의 머리를 거세게 가격했다. 폐하의 앞에서 예를 갖추어 답해라! 그 외침과 함꼐, 마녀의 시선이 느릿하게 돌아갔다. 아주, 아주, 느릿하게. 아주 짧은 순간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리 느꼈다. 그 붉은 눈과 마주한 황제가 저도 모르게 탄식하는 새, 마녀의 붉디 붉은. 노을을 닮은 입술이 열렸다.
"곧 죽어 사라질 이의 이름을 들어 무엇 하시겠습니까."
고저없는 목소리가 청아하니 울려퍼졌다. 마녀가 얻어맞은 탓에 잠시간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듬에 따라 흘러내렸던 머리카락이 제자리를 찾자, 몇몇이들은 허어-, 하는 탄식을 내뱉기도 하였으니, 이는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얼굴이 너무나도 앳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음이 첫 번째 이유요, 그 곱디 고운 입술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맑고 청아하기 그지없었음이 두 번째 이유여라,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녀가 마녀일리 없다-, 하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가까스로 멍해졌던 정신을 추스른 황제가 말했다. 호국 백성들의 아버지로써, 그 기강을 수십년간 흐트러뜨린 죄인의 이름을 알아두는 것 쯤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곧 죽어 사라질 목숨, 내 직접 네 숨을 거두어 네 이름만은 호국의 대대역죄인으로 선례를 남겨주마. 멀뚱히 그를 바라보던 마녀가 황제의 눈을 마주한 것은 찰나요, 푸흡-, 하는 웃음소리가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잠시 뒤의 일이었다. 팔 한짝이 떨어져 나간 탓에 외팔로 눈물까지 닦아내며 웃음을 터트리니 황제의 기분이 몹시 저조한지라, 호두각의 분위기가 금방이라도 깨어져버릴듯한 살얼음판으로 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녀가 그 잘난 입을 다시금 놀리기 전까지는, 개중 감히 얼어붙은 입을 열 용기를 가진 이는 없었으니,
"폐하께서 직접, 저를 죽이시겠다 하셨습니까? 허면 어찌 죽이시겠습니까? 그 허리춤의 칼로 제 목을 베실 겁니까, 아니면 어제와 같이 날이 죄 빠진 도끼로 이번에는 제 팔이 아닌, 제 목을 치실것입니까? 아, 제게 독을 먹여 목숨을 앗아가실수도 있겠습니다. 생명을 꺼트리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지요, 헌데, 폐하, 그리 하면 제가 죽을 것 같습니까?"
"...."
"모순이지요. 분명한 모순입니다. 제가 사람이 아닌 마녀라 사람들이 그리도 떠들고 다니는데, 그깟 대역 죄 좀 지은 사람을 죽이던 방법으로 제가 그리 쉽게도, 죽을 것 같습니까?"
"...."
"아니오, 아닙니다. 잘나신 호국의 폐하께서는,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제 목숨을 가져가진 못하실테니-,"
그 눈빛을 닮은 검붉은 기운들이 마녀를 감싸니, 사방에서 금수들이 울부짖고, 푸르던 하늘이 다시금 붉어지더라. 천지가 변화함에 겁을 집어먹은 이들은 온 몸이 굳은 채로 눈동자만을 데굴데굴 굴릴 뿐이니, 마녀의 어깨에서 다시금 뼈가 자라나고, 살이 붙어, 그 위를 첫눈마냥 새하얀 피부가 덮으니, 잘려 호두각의 돌바닥에 나뒹굴었던 마녀의 팔이 다시금 돌아왔더랬다. 마녀의 길고 긴 호흡을 따라 기운들이 그녀를 감싸면, 온 몸에 나있던 상처들은 씻은듯이 사라지니, 피가 멎고 뼈가 자라, 새 살이 돋음에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그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기함할 만한 일이었으니, 감히 저 여인이 마녀일리 없다 확신을 가졌던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어라. 저 여인이 마녀가 아니면, 대체 누가 '마녀'란 이름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황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놀라 홉뜬 눈은 마녀에게 고정되어있었으며, 그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 것 마저도 눈에 담았다.
마녀가 가볍게 도약했다. 그 재빠른 뜀박질 또한 가히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이들이 뒤늦게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황제의 목에 칼이 들이밀어져 있는지라, 황제의 호위들이 기겁하여 마녀를 떼어내려 하였으나, 마녀가 쥔 칼날을 따라 황제의 옥체에 기나긴 붉은 줄이 생겨나니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즐거움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호두각을 채우니, 몇몇은 굳어버린 채로 실금을 해버리더라. 황제의 목에 겨누어졌던 칼이 거두어지니, 굳어있던 황제의 손에 잡힌 것은 검의 손잡이요, 마녀의 손에 붙잡힌 것은 검의 칼날이라. 흉흉하게도 날선 칼날을 제 목에 가져다대며 마녀가 말했다.
"어디 한 번 죽여보십시오."
"...."
"내 기꺼이 목숨을 내어드리리다."
예의 그 방긋 웃는 얼굴이 악의 없이 순수한지라, 그 모습이 얄밉기 짝이없었다. 칼을 쥔 황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뻣뻣하니 굳어있던 미간이 점차 좁혀지니, 아드득-, 하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라. 황제가 검을 빼들었다.
마녀의 목이 잘렸다.
* * *
"자네 그 소문 들었는가?"
지게에 쌀 포대를 지고는 걸음을 옮기던 사내가 말했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라도 돌고 도는감-, 하며 묻는 제 친우에 커흠, 헛기침을 한 사내가 운을 띄웠다. 그 요새, 황궁의 분위기가 흉흉하잖은가! 하는 그 말에 사내의 친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니, 황궁의 분위기가 흉흉한게 예삿일이며, 그 흑안의 황제가 폭군이라 불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더라니, 사내가 예끼! 하며 호통을 치는 탓에 곁을 지나치던 곱상한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고놈의 황제 말고, 마녀말이여 마녀!"
"마녀? 마녀라 함은... 에라, 구전 속에나 나오는 요괴 아닌가, 이사람아."
"에헤이, 자넨 그 소문도 못 들었는감? 마녀가 진짜 존재한단 말일세! 이 수도 바닥에 그 마녀를 직접 봤다는 사람만 한 포대여! 붉은 눈이 참말로 존재한다 하더라니까!"
운이 지지리도 없구나, 누군가의 고성에 따가워진 귀를 대충 후비다, 붉은 노을을 연상케하는 동물의 깃으로 장식된 부채를 펼쳐든 청안의 청년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저잣거리에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싶을 때 즈음 들려오는 대홧소리에 '마녀'가 섞여있었으니, 청년이 날카로운 청안을 빛내며 지게를 맨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허, 허면, 마녀가 참말로 존재한단 말인가?"
"그렇대도-, 지금 수도에 도는 소문도 그 마녀에 대한 것 아니겠나!"
"대체 무슨 소문이길래..."
"말하자면 긴데 말이야,"
그들을 지나치려던 청년이 걸음을 되돌렸다. 기척을 죽인 채 그들의 뒤를 살금살금, 밟는 것이 한 두번 해본 쏨씨가 아닌지라, 종일 저잣거리를 쏘다닌 탓에 퉁퉁 부어버린 발이 쓰라렸음에도 청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예민한 코에 스치는 고약한 냄새 또한 한 둘이 아니었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지게를 진 사내와, 그 옆의 사내의 대화를 들으려 청년이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니까, 얼마 전 수도에 큰 불이 난 것은 자네도 알지?"
"알다마다, 집이고 가게고 죄다 홀라당 태워먹은 탓에 우리 안사람도 난리를 치지 않았는감,"
"그려! 수도의 반절을 홀랑 집어삼킨 그 불이, 그 마녀라는 여인이 질렀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혼자 무슨 수로?"
"이보게, 마녀 아닌가, 마녀. 분명 도술이나 괴상하나 주술을 써서 그리 만든 것이겠지. 아무튼간에, 그 여인이 저가 지른 불 속에서 걸어나오는데..."
"...걸어나오는데?"
"글쎼, 그을음 하나 묻지 않고 깨끗한 상태였다지 않은가, 머리카락 한 올조차 상하지 않은데다가, 그 눈은 맹수의 핏물마냥 새빨갰다고 하는데, 그 여인이 마녀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아무튼, 그리 불을 지르고도 순순히 황궁의 관군들에게 끌려간것이 참 이상해..."
"황궁의 관군들이 나섰어?"
"그러엄-, 마녀를 달리 누가 붙잡겠나! 불이 나자마자 황제폐하께서 관군들을 시켜 그 범인을 잡아오라 시켰는데, 글쎼 마녀가 떡 걸린 것 아니겠어."
"하이고, 괴상하다 괴상해, 마녀가 실제 존재하는줄은 전혀..."
청년이 그들의 어깨를 휘어잡았다. 놀라 자빠진 채 저를 올려다보는 이들에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청년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 '마녀'는 어찌되었지?"
"아이고, 나으리! 왜 이러십니까요!"
"세번은 없다. '마녀'가 어찌 되었는지 내 물었어."
그 흉흉한 살기에 잔뜩 긴장한 사내가 가까스로 입을 여니, 형편없이 덜덜덜, 떨려오는 목소리로 청년에게 일렀다.
"그, 그것이, 마녀가 어찌 되었는지는, 저, 저도 잘..."
"죽었나?
"예에? 저희같은 천한 소일꾼이, 감, 감히 황궁의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요..."
"허면,"
"소인이 아는 것은, 마녀가 황궁으로 끌려갔다는 것이 다입니다요... 소인이 아는 것이라곤, 그저, 참수를 당하였으니, 살아있을 리는 없다는 것 밖에..."
"참 나,"
쯧-, 하며 혀를 차는 소리에 나자빠진 사내가 히익-, 하는 볼썽사나운 소리를 내었다. 되었다. 가보거라. 하는 제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망치는 사내들을 보던 청년이 실소를 흘렸다.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꼴이 참으로 우습구나.
원하던 바를 이루었으니, 더 이상 이 시끄럽고 지저분한 저잣거리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끌벅적하던 시장통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저를 괴롭히던 소음들이 서서히 멀어졌다. 부채를 펄럭여 겨우 내쫓았던 괴상한 냄새들도 사라졌다. 청년은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찾는 사람은 참으로 신출귀몰하기도 하지, 닷새 전에는 사화국(蛇花國/동대륙의 삼국 중 하나)에 있다 하여 그리 걸음하니, 그 다음날에는 경국(鯨國/동대륙의 삼국 중 하나)에 있다하여 그리 걸음하였더니 호국(虎國)으로 떠났다 하질 않나, 기어이 찾아온 호국에서 들린 제 친우의 소식은, 수도의 반절을 집어삼킬만한 커다란 불을 질러, 그에 노한 황제에게 잡혀들어갔다질 않나. 청년이 실소를 흘렸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구나.
그래도 이번에 그 아이를 찾으면, 필히 얼굴을 마주할 수는 있으리. 제 발로 호국의 황제에게 잡혀놓고, 다시금 개고생 해가며 제 발로 도망칠 리는 없으니, 사화국과 경국, 호국의 외곽과 수도를 바쁘게도 건넌 그의 발걸음이 향할 다음 목적지는 너무나도 뚜렷했다. 참수를 당했으니 필히 죽었을 것이라 말하던 지게를 멘 사내의 말을 떠올린 청년이 가볍게 코웃음을 흘렸다. 그리 쉽게 죽겠나, 마녀가. 중얼거리던 청년이 한껏 나아진 기분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도시의 외곽으로 향할수록 빛이 잦아들었으며,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어두컴컴한 밤하늘과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 밖에 없었으니, 밤하늘마냥 새카맣게 빛나던 사내의 눈이, 푸르른 청색으로 일렁였으며, 그 등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아홉 개의 꼬리였으니,
"그 아이가 죽었을 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이 요괴를 구미호(九尾狐)라 부른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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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