被俘

(25)噩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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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히다 (25) 악몽


사냥제 전 마지막 포인트 만남. 
오늘은 정국이가 왠지 장난기가 쏙 빠지고 진지해보였다.



"김남준 소장 직속 연구실에 대해 알아낸 것들이랑, 
 호석이에 대한 거, 그 안에 있으니까 한번 읽어봐..

 서장님께도 전달해드리고.."


"그래, 알았어. 그래서.. 너의 심증은 맞는 것 같아..?"


"어... 거의..직속 연구실에서 만들어지는 약이 사냥제랑 연관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 일단 시기가 너무 잘 맞아. 

그리고 재료가 되는 약물도 그떄 구매한 이후 더이상 매입한 내역이 없어. 아마 이번 주문 이외에 더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사실 지호 선배한테 어디서 주문받은 거길래 이렇게 급하게 바쁘게 만드냐고 살짝 떠봤는데, 잘 모른다고 선배가 딱 잘라 이야기했다. 소장이 직접 거래하는 곳이라서 자신들도 모른다나... 규칙적으로 납품하는 약물이 아니라고 했다. 김남준 소장이 직접 거래한다라... 그래도 협박을 받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인물이 끼어있을 지도 모르지... 생각이 복잡해져서 나는 더이상 더 꼬치꼬치 캐묻지 못했다.

약물의 성분도 문제였다.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도 있었고, 신체 기능을 마비시키는 성분도 있었다. 학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조금만 얘기하다가 들어갈까? 
 할 얘기도 있고.. 그리고 너, 엄청 심란해보여.."



정국이는 나의 복잡한 마음이 느껴지나보다. 하긴 내가 거울을 들여다봐도 턱끝까지  다크써클이 내려와있고, 머리는 푸석푸석했다. 



"그럴까...? 니 말대로 마음이 편치 않기는 해..."



정국이와 공원을 걸었다. 비단 김남준 떄문만은 아니었다.
견고한 경계가 있었던 스파이 활동과 연구실에서의 근무의 벽이 뒤섞이면서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스파이인가, 연구원인가.. 모두가 집에 돌아간 연구실에서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낮에 만나는 지호씨와 웃고 떠드는 것도... 두 가지 생활이 겹치면서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저녁에는 불면증이 점점 심해지고,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 멍해지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사냥이 시작 직전에 현장을 급습할 예정이야.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되도록 많은 증거를 얻어야하니까.. 
너도 최대한 급습 전에 현장을 빠져나오면 좋고.. 혹시 잡히더라도 우리가 보호할 꺼니까 너무 걱정하지않아도 되. 

그리고 이거 신호기를 줄께...
 
근거리용이라서 수신 가능한 거리는 짧은 대신에
gps나 전화신호가 안 터지는 곳에서도 잘 터지니까 가지고 있어. 

너가 장소 알려주면 근처에 잠복해 있을 예정이니까 가지고 있다가 우리에게 언제 급습하면 될 것 같은지 신호를 줘. 

혹시라도 위험할 때는 이 버튼을 누르고...  "


"..."



정국이는 작은 신호기를 건네주면서 사냥제 때 어떻게 현장을 덮칠 것인지 설명해주었다. 아직 장소가 분명하게 나오지 않아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긴 어려웠지만, 경찰이 오긴 할 꺼라는 얘기였다. 마음이 복잡해서 인가..나는 이야기가 왠지 잘 집중이 되질 않았다. 



"좀, 안아줄까...?"



공원 구석에서 정국이가 말했다. 내가 거절의 표현을 하지 않자 정국이는 다가와서 어께를 감싸안았다. 조금씩 시원해지는 가을날의 새벽이라서인지, 포근한 그의 품이 싫지 않았다. 



"힘들면 얘기해.. 나에게 기대도 되...
 혹시라도 사냥제에 가고 싶지 않다면 가지 않아도 되..

 내가 서에는 잘 둘러댈께. 지난번보다는 더 기다렸다가 급습한다면, 이번엔 핵심 인물들도 잡을 수 있겠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아니야.. 잠깐만.. 그냥.. 잠깐만 이렇게 있을 꼐"



정국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있었다. 

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불쑥 나타나서 자꾸 자신에게 기대도 된다고 한다. 그래, 솔직히 마음은 그렇다. 정국이에게 기대고 싶다. 그런데 뭐랄까.. 나의 천성이랄까..? 누군가를 믿고 기댄다는 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어느순간 혼자가 되었고, 이후로는 늘 혼자 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오소리는 아무도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인정 없는 분들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오소리들에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에도 나혼자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에 친구들 사귀는데 별로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애들에게는 내가 그냥 공부에 미쳐있는 아이같았겠지만, 나에게 공부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해야하는 전투였고, 장학금이나 경진대회 우승 상금 등, 모두 나에게 너무 절실한 것들이었다. 어설프게 놀다가 하나라도 놓치느니 독한 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이 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혼자라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자꾸 전정국이 알짱거린다. 뭘 안다고 자꾸 힘드냐고 묻고.. 그런 말들이 당장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곱십다보면 자꾸 전정국에게 나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별로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이 녀석이 나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인정은 해야겠다..

이렇다가 이 일이 끝나버리면 언젠간 이 아이와 다시 멀어지게 되러냐... 

역시 얘랑 정 두는 것은 나답지 않다.
그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갈께.. 밖에서 오래 만나는 건 부담스러워.. 
작전에 대해서는 바뀌는 게 있으면 다시 알려줘   "



정국은 스르륵 나를 놓아주었다.



"너의 감정에서 회피하지마, 너 약간 불안해보여. 
 그냥 인정해야하는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해..

그 편이 훨씬 편하니까.."


"전정국, 오바하지마, 니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는 정국이를 어이없어하면서 쳐다보았다. 



"너, 아니 경찰도 내 도움 받고 있는 거잖아.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댓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기로 결정한 일이야. 

자꾸 그런 말 할 꺼면 담당자 바꿔달라고 할꺼야. 그만해."


 
정국은 더이상 말이 없었다. 기껏 날 생각해서 해준 말인 것 같은데, 솔직히 인정할수도 없었다. 인정하는 것 조차 피하고 싶으니까... 


정국이의 따듯한 품은 좋지만, 아직 온전히 받아줄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   .   .


"헉.."


오랜만의 악몽이었다. 

잠시 출근 전 누워서 잔다는게, 오랫동안 꾸지 않던 꿈을 꾸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릴 때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면을 보았던 그 때의 일이 꿈으로 나타난다.


그 사건이 있던 그날 나는 같이 저녁을 먹기로 부모님이 오질 않자, 집에 혼자 있던 나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부모님의 사무실로 향했었다. 연구소에서 일하시던 부모님은 무슨 일이 생겨 연구원 일을 정리하시면서 그동안 모은 특허들을 가지고 벤처기업을 만들려고 했었다. 여기저기 투자를 받아 새롭게 꾸민 부모님의 사무실은 분명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착해보니 모든 집기들이 깨져있고, 폴리스라인이 처져있었다. 어지럽고 시끄러웠던 사무실 건물 앞 느껴지던 비릿하고 끈적끈적한 향, 그것은 피냄새였다.


사무실 앞 수풀에서 시선을 느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뒤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검은 그림자가 있었던 것 같다. 

사건을 수습했던 경찰들은 비상벨이 울려 출동한 경비업체들로부터 사건현장을 인계받은 상태였다. 경비업체는 도망치는 오소리를 보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오소리는 검거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아침에 혼자가 되었었다. 투자금들은 빚이 되어 돌아왔고 경찰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상속을 포기했다. 이후 왠지 모르겠지만 경찰들만이 도와주었다. 부모님과 친했던 오소리들은 어디로 다 사라진 걸까..? 피해자 구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내가 이후 잘 지내는지 확인해준 것도 모두 경찰들이었다.

 



"미안하구나..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수사할 꺼야.. 
 꼭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께.."


꿈에서 경찰이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꿈속에서는 사방이 검은 암흑.. 그 때의 시선과 그 끈적끈적한 공기와 비릿한 느낌이 날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혼자고 암흑 속에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아무 것도 손에 닿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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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작가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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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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