被俘

(35)关系定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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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히다 (35) 관계 정의 


탁, 문이 닫히자 갑자기 비어버린 병실은 어색함이 흘렀다. 김석진 서장은 민망한듯 뒷통수를 한번 쓸더니 말했다.



"뭐... 민윤기가 전정국을 죽이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말아..."


"아 네..."



뭐, 어련하시겠습니까..? 정국이가 형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거 첫 눈에 알고 있었다고.. ㅎㅎㅎ 그래도 애 너무 기죽는 건 별로인데... 서장님, 그 윤기형이라는 분 적당히... 잘 하시겠죠..?

서장님이 걱정말라고 하지만, 나는 살짝은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해주야.. 

 네 덕분에  이 사건이 드디어 마무리 되겠구나..  
 
보고서는 잘 받았어. 
병실에서 작성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수고했다."


"에~ 뭘요 ㅎㅎ 
 
 저 김태형에게 억한 거 엄청 많이 쌓였거든요.. 
 하나도 빼먹지말고 기록 해야죠..! 

정국이가 도청장치를 달아준 덕에 김태형이 자백한 내용들도 빠짐없이 잘 적을 수 있었어요. 요번 보고서는 저도 좀 만족스럽네요... ㅎㅎ"



여기 앉으세요, 서장님을 소파에 앉힌 나는 아무래도 민팀장과 전정국이 나가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음료라도 꺼내드릴 요량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전정국 얘는 뭘 이렇게 꽉꽉 채워놨는지... 
음료가 이것저것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뭘 드려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고심해서 음료를 골라서 꺼냈다. 김석진 서장은 내가 캔음료를 건네자 목이 말랐는지 바로 뜯어서 한 모금 마셨다.



"저... 김태형은 어떻게 되었어요..?"



오늘이 사건이 터진지 1주일 째, 솔직히 김태형이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사가 제대로 진행될까 걱정되는 것도 있었다. 


김석진 서장은 나의 질문에 잠시 머뭇하더니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태형은 구속을 취소해달라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언론이 난리가 난 덕분에 구속이 풀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서장의 설명이었다. 거기에 연구소를 털자 국가 연구비 관련 비리 등 다른 잘못도 많아서 사소한 혐의들도 계속 추가 되는 모양이었다.



"사건이 파도파도 끝이 없네.. ㅎㅎ"



김석진은 창밖의 먼산을 보고 한숨을 픽 내쉬더니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사냥제 말고도 다른 잘못도 많이 있었구나.. 하긴 어린 시절에 다정한 조수였던 김태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겠지. 기분은 씁쓸했지만, 지난 주의 섬뜩했던 표정이 생각나나자 다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일단 해주야 너는 스파이로서의 임무는 잘 완수했고,
 이 이후의 네 치료에 대해서는 경찰에서 책임지려고 해..

 행여라도 심적으로 힘들다면 심리치료도 병행하고..."


"그냥.. 일단 지금은 사실이 잘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것도, 사냥제에 대한 것도요... "



사실이 낱낱히 밝혀져서 그가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악몽에서 느껴지던 시선의 주인이 김태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정말 무섭긴 했지만, 그는 감옥에 갖혀있고, 그 점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정국이가 옆에 있는 것도 든든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경찰의 명예를 걸고,
 내가 최선을 다해 밝힐께. 너무 걱정하지마.."



서장님이 말하는데 왠지 마음 한켠에 응어리진게 풀리는 것 같았다. 오소리 모임이 깨부신 것도 나름 성공인 것 같고, 부모님께 일어난 일도 알게 된 이상, 모든 게 다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덮어놓고 지냈다. 기억을 뒤덮은 케케 묶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지금이라도 바로 잡는 것이 내가 열심히 생각해 낸 해피엔딩이었다. 



"사실 너에게 주어진 임무가 쉬운 임무는 아니어서 걱정도 많이 됬었어. 전정국 형사가 옆에서 잘 보조하는 것 같긴 했는데, 그 녀석 너에게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더라고... 

전정국 형사와는 그동안 어땠어?"



김석진 서장이 갑자기 전정국에 대해 물어왔다. 아... 이 부분은 왠지 마음에 캥기는데 어떻게 대답해야하지...?



"정국이랑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좀 어린아이같은 구석이 있긴 한데.. 
 이외로 걔가 이것 저것 잘 챙겨줘서 좋았어요. 

 솔직히 첫인상은 좀 별로여서 그닥 기대가 되진 않았었거든요...ㅎㅎㅎ"



그동안 잘해준 정국이라.. 정국이가 생각나자 나는 볼이 살짝 상기되는 게 느껴졌다. 서장이 이걸 눈치 채면 어쩌지.. 살짝 당황스러웠다. 슬쩍 본 서장님의 눈매가 매서웠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피곤한 척 괜히 두 볼을 손으로 감쌌다.

정국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 괜히 나 때문에 곤란해질 것 같아서 아직은 사실대로 밝힐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이제 스파이로서의 임무도 조사 마무리되면 끝이네~"


"네 그렇네요... ㅎㅎ"


"이제 곧 특수요원의 신분도 해제될 꺼야..  
 너도 이제는 니 마음대로 해도 되.. 

너도 정국이 받아줄지 말지.. 그동안 고민 많았을 거 아니야"



서장의 말에 나는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떨궜다.



"저.. 서장님 뭐라구요...?"


"사적인 부분이니까
 내가 이런 거 궁금해 하면 안될 것 같긴 한데, 

둘다 내 아랫사람이라서 신경이 쓰이긴 하더라고...하하"



아 맙소사... 젠장.. 티를 안냈다고 생각했는데... 망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저 서장님은 언제 부터 알고 계셨어요?"


"니가 담당자가 전정국으로 바뀌고 나한테 연락이 뜸해질 때부터 조짐이 있었지, 아마?"


"아... 진짜요...?"



여하튼.. 이 인간은 늑대가 아니라 여우인가.. 
눈치 백단이다... ㅜㅠ 



.   .   .



한편, 병실에서 정국을 끌고나온 윤기는 조용히 병원 옥상으로 데리고 나갔다. 한적한 옥상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윤기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정국에게 쥐어준 뒤 벤치에 앉혔다. 윤기는 근처에 흡연 구역이라고 써져있는 팻말을 확인한 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솔직히 말해봐~ 여기에 몇 번이나 찾아왔어??"


"응...? 뭐가?"



정국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너네 둘, 보통 사이는 아니잖아.

 언제부터야? 
 해주요원이랑 이렇게 가까이 지낸 거..."



언제부터냐니... 이게 참 시점이 너무 애매하잖아...? 
정국은 웅얼거릴 뿐 선뜻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새꺄, 너 나한테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생겼어? 
 그냥 솔직히 말해봐.. "


"형 그게 말이야... 언제부터인지... 말하기가 좀 불명확해서..."


"얼씨구?? 둘이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구나?"



윤기 말에 정국의 동그란 눈이 뭐라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는 듯 도르르 굴러갔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는 사이 윤기는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희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윤기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게 말이지,
 나는 사귄다고 생각하는데 해주는 아닌 것 같아."



정국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앝은 한숨을 쉬었다. 윤기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며,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정국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주 담당자도 자처하더니, 사건 전날 해주요원 집에 찾아갔었다고도 하고... 이 새끼.. 임자 만났네...? 

원래 자유연애주의자였던 정국은 딱히 누군가를 정해놓고 만나는 타입이 아니었다. 되면 되는데로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던 쪽이라 윤기는 정국이 해주에게 공을 들이는 이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너 지금 행색이 완전 해주씨 보호자구만.. 
 
가만보니까 병실에 니 물건도 꽤 많은 것 같던데, 우리 전정국씨는 틈틈히 여기와서 해주씨 돌보면서, 혼자만 사귀는 것 같다고 섭섭해하고... 우리 정국이가 왠일이래..?

코가 꿰였나.... 뭐 잘못한 게 있나..

천하의 우리 정국이가 이렇게 쉽게 약점잡힐 사람이었나..? 

하여간 희안해 희안해.."



잿덜이에 담배를 비벼 끈 윤기는 정국의 옆에 앉았다. 윤기가 가까이 앉자, 정국은 약간 긴장한 듯 허리를 꼿꼿이 펴고 바른 자세로 다시 고쳐 앉았다.



"야, 전정국.. 그동안 몰래 해주씨 만난 거 넘어가줄테니까
 어떻게 된거야? 빨리 불어봐.

 아직도 작업거는 상태야?
 아니면 해주씨랑 일부터 치뤄서 관계를 정의할 새가 없었어?"



윤기는 정국을 몰아새웠다. 정국은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윤기가 하는 말이 맞았다. 



"너, 혹시 해주씨랑 잤냐...?"


"아, 어. 아니, 그, 그게 형...음.."



정곡이 찔린 정국은 말을 더듬었다.



"니가 일방적으로 들이대거나 덮친 건 아니지..?"


"형,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절대로 아니거든?!! 

 그, 그리고 해주가 나한테 같이 살고 싶다고도 했어!
 걔도 나 좋아한다고..!"


"호오 그러셔...?"


정국이 발끈하자 윤기는 흥미롭게 정국을 쳐다보았다. 
정국의 변명하는 모습은 약간 애처롭다고나 할까... 잠시 생각을 하던 윤기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정국은 미간을 찌푸리고 짐시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냥, 지켜주고 싶었어. 걔가 사는 것도 외롭고, 스파이 활동하는 것도 위험해 보이고.... 그래서 지켜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리고...?"


"좋았지, 아니 지금도 좋아해.. 
 근데 해주가 잘 받아주질 않아서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아. 괜찮아. 옆에 있어줄 수 있잖아"



말을 마치고 앝은 한숨을 쉬는 정국이가 윤기는 안 되보였다. 그래서 윤기는 다그치듯 말을 내뱉었다. 이런 일은 빨리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이니까, 닥달을 해야지. 그치..? 



"야 이 새꺄, 너 처신 똑바로 해. 일치지 말고...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관계 정리해. 

 해주씨도 그동안은 니 마음 받아주긴 힘들었겠지만,
 이제 특수요원 직분도 해제되면 조금 달라지겠지."


"그럴까...?"


"그래 야, 빨리 액션을 취하란 말이야.

 너 유야무야 있다가 해주씨 놓친다..?
 이제 연결고리도 없어지잖아. 
 
 해주씨 잘라낼 땐 또 되게 냉정할 것 같은데,
 너 이렇다 해주씨 못 잡으면 어떻게 할꺼야?"



윤기 말에 정국은 낯빛이 어두어졌다. 에효... 그동안 진지한 관계를 가져본적이 없어서 그런가...이 녀석을 어떻게 하지...? 윤기는 길게 얘기하기보단 얼른 대화를 마무리 하는 쪽을 택했다.  



"서장님이랑 해주씨 기다리겠다. 얼른 들어가자. 

 그리고 나는 너네 헤어지라는 거 아니다..?
 응원하니까, 잘 해보라고...! 응? 자, 전정국 화이팅!!"


"그래 형, 고마워.."



정국은 윤기의 말에 겨우 살짝 웃었다. 짜샤 힘내! 윤기는 정국이 어께를 토닥여주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앞장 서는 윤기를 정국은 어께를 축 늘어뜨린 채 털레털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