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赛] 雨夜

‘이상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처음보는 여주씨인데

볼때마다 가슴 한 편이 아려서.

안 웃는 얼굴이 마음에 걸려서.

항상 우울해 보이는 그 얼굴에 괜히 막 화가나서..’

뭔가 약간 찝찝한 느낌에... 신경을 안쓸수가 없는 시선.

어제 술을 마신 후 어떤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여주지만 팀장님의 뜨거운 시선으로 보아 분명 무슨 일이 있긴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여주의 책상 위에 비를 맞아 주름진 다니엘의 명함과 새것이 나란히 올려져있다.

‘꿈은 아니라는 건데... 그럼 도대체 어떻게 그런일이 일어난 거야...’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일이 많은 여주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쿵-

큰 소리를 내며 내 책상이 진동함과 동시에 엄청난 두께의 서류들이 올려졌다.

“오늘까지. 다 처리해서 제출하고 퇴근하세요.”

“...이걸 다...요..??”

“네.”

“아... 알겠습니다..”

이런. 서류의 두께를 보아하니 오늘은 틀림없는 야근이다. 술을 많이 마신탓에 속도 아픈데 이렇게 쌓아주다니. 분명 의도한 게 틀림없다.

어제의 기억속에서 어렴풋이 팀장님의 얼굴이 보인다.

분명 무슨 잘못을 한 게 틀림없다.

시계 바늘이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며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게 결국은 팀장님과 나, 둘만 남게되었다.

팀장님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다. 긴장 속에 시계의 초침소리만 유독 크게 귓가를 울리고, 일은 끝이 보였다.

“저.. 팀..”

“여주씨.”

“...네..?”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요.”

“일단 미안해요. 사람들 다 가고나서 얘기하고 싶어서 늦게까지 잡아뒀네요.”

“아.. 괜찮습니다. 하실 말씀이...”

“어제 일... 기억 안나시죠?”

“...네...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며칠 전에 있었던 일.. 알고 있는거 말해줘요.

또 의건이라는 사람은 누군지. 그 사람, 여주씨가 아는 사람. 맞죠?”

“...의건이는... 재 남자친구에요. 2년 전에 죽은...”

의건이라는 이름은 그저 말로 꺼내는 것 만으로도 여주의 눈시울은 붉어져갔다. 이제 좀 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머지 일은 저도 몰라요. 그날 그냥 팀장님께서 갑자기 저희집 문을 두드리셨고, 자기가 의건이라고... 했어요.”

“그치만 난 기억이 없어요. 여주씨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저... 죄송한데요... 저도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서... 저도 팀장님이랑 같은 입장이에요. 더는 안물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여주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걸 다니엘도 눈치챘다.

“그럼 질문을 좀 바꿔보죠. 그날, 우리. 아무일도 없었죠?”

“... 네.”

아까까지는 진실이 알고싶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뭐라도 알고싶어서 언성을 높여가며 여주에게 묻던 다니엘이, 자신이 여주에게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미안해요. 너무 흥분해서..”

고개를 숙인채 들지 못하는 여주씨에게 사과를 건냈다.

다니엘은 자신이 여주씨 집을 찾아가 자신이 죽은 남자친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난 후 오히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일보다 눈앞에 있는 여주가 먼저였다.

“괜찮아요? 난... 모르고..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

사람들은 저마다 아픈 기억이있다. 그곳을 스치는 일이라도 결코 가볍지 않은 잘못이라는 걸.. 잘 알고있는 다니엘이다.

“울지마요...”

여주는 다니엘이 자신에게 얼굴을 가까이하자 급하게 가방을 챙겨 가겠다고 해버렸다.

“저.. 하실말씀 끝나셨으면 가보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자신의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않아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다니엘을 한번 쳐다보지도 못한 여주다.

“하아....”

혼자 남은 다니엘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일도 없었다고 하고.

더 이상 얘기를 꺼낼 수도 없으니까.”

그렇게 꿈같던 그날의 일은 두 사람에게서 지워져갔다.

한달이 지나가는 동안, 두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날일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천둥번개가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밤이었다.

띵동-

“누구세요?”

“나야 여주야. 나 의건이야..

잘.. 지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