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月

__1942년 3월 28일
수빈은 신문지를 펼쳐보았다. 이번에는 확실히 촉이 왔다. 수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신문지를 한장 한장 넘겼다. 그 옆에는 동기들이 숨을 죽이며 신문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 및 시’에 다다르자 수빈은 신문지를 바로 옆에 앉은 동기에게 넘겼다.


“또 못 읽겠냐?”


한숨을 내쉰 동기는 신문지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곧 수빈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들 여기서 뭐해?”


남준이 물었다. 악! 깜짝아. 동기들이 소리쳤다. 수빈 또한 놀라 남준의 쪽을 바라보았다. 여긴 무슨 일이세요? 수빈이 보러 왔지. 신문사에 시 냈다며? 어서 펼쳐봐. 남준이 들뜬 목소리로 재촉하였다. 아까 신문지를 받아든 동기는 수빈의 눈치를 살피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수빈에게 다시 신문지를 내밀었다.


“신문사가 편지를 못 받았나봐.”


수빈은 애써 웃으며 신문지를 다시 받아들었다. 동기들은 모두 수빈을 둘러싸고 위로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위로도 신물이 났다. 수빈은 몰래 신문지를 구겨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신문지를 버리나?”
“형…?”


남준이 구겨진 신문지를 집어 들어 구겨진 자국을 좍좍 폈다. 수빈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움이 수빈을 덮쳤다. 남준은 마치 지구 반대편의 어느 더운 나라에서 숭배할 법한 태양신처럼 웃으며 수빈에게 신문을 내밀었다. 수빈은 빨개진 얼굴로 그것을 다시 받았다. 남준이 수빈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함께 걸어갔다. 수빈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온화한 형의 얼굴이 미치도록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수빈아.”
“……”
“있지, 등단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더라. 물론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계속 쓰라는거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등단이 되지 않아도.”
“……”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런 거잖아?”


남준은 다시 활짝 웃었다. 수빈은 잠시 태양을 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수빈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그러나 당연히 해야하는 일. 그것이 ‘독립운동’이라 하는 일이 아니던가. 수빈이 살짝 웃었다. 남준은 잠시 수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앳된 청년의 출생을 더듬어 생각해보면서. 남준에게 있어서 수빈은 벼락같은 존재였다. 남들은 다 있는 형제자매가 없어 마음이 적적했던 어린 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산파의 말을 남준은 장성한 오늘날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__1918년 12월 5일
“아들이에요, 아들!”


숙모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가까이 살고 있음에도 워낙 왕래가 적었던 탓에 숙모가 아이를 밴지도 몰랐던 남준은 어른들보다도 빨리 숙모 댁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남준아! 넘어진다! 어머니의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남준은 조심스럽게 숙모네 댁에 들어섰다. 다행히 기운을 차린 숙모는 조용히 웃으며 들어오라 손짓했다. 그제야 남준은 아기를 보았다. 무명 포대기에 싸여 큰 눈 한가득 이 세상을 담고 있는 그것은 참으로 작디작았다. 어린 남준은 매일같이 숙모 댁에 가서 몇 시간씩 아기를 보고 오곤 했는데 어른들이 네가 낳았냐며 놀릴 정도였다. 그런 아이가 드디어 자라 남준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할 수 있을 무렵, 남준의 집은 고향을 떠나야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어 북간도를 떠나 경성에서 살기로 한 것이었다. 그 후로는 일제가 나라를 집어삼킨 탓에 좀처럼 북간도에 가기가 어려웠다. 남준이 북간도를 미치도록 그리워할 적엔 세월은 이미 야속하게 흘러 있었고, 남준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 연희전문학교(옛날의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__1937년 12월 31일
“신춘문예 동아리라고?”
“그래, 남준이 너는 글도 잘 쓰니까 이런 거 해볼 만 하지 않냐?”


학교에 들어와 얼마쯤 지났을까, 그때 가입한 신춘문예 동아리에서, 남준은 드디어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북간도와 그를 이어주는 어쩌면 유일한 사람. 상경한 줄도 모르고 무작정 그리워만 하던 사람. 수빈이었다.


“너 혹시 최수빈 맞아?”
“네…맞는데요……?”
“맞구나! 나 김남준. 우리 바로 옆에 살았잖아, 기억해?”


무료한 대학 생활에서 수빈의 존재는 그에게 큰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수빈도 어릴 적의 기억이 남아 있는지 남준을 유달리 따랐다. 남준은 졸업반 학생이었고 수빈은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수빈은 시를 사랑하였고, 본인 또한 시를 즐겨 썼다. 이로써 북간도 말고도 서로를 이어줄 것이 생겼다. 가끔씩 수빈은 수줍은 얼굴로 직접 쓴 시를 보여주곤 했는데, 남준이 보기에는 그 모양이 썩 훌륭하였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등단할 생각 없냐?”


남준이 진심으로 권했지만 수빈은 계속하여 떨어졌고,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수빈에 남준도 더는 등단을 권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수빈이 등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에 대한 애정을 잃는 것이었으므로.




__1937년 2월 27일
“너 요즘에는 시를 안 쓴다? 왜 안 쓰니?”


하숙집에서 공부 중인 수빈의 등에게 남준이 무심히 툭 물었다.


“시 써서, 발표도 하고 그래야지.”
“등단을 못했는데 어떻게 발표를 해요.”


감기 기운 때문에 콱 잠긴 수빈의 목소리에 남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 무렵, 수빈과 함께 시 분야 등단에 꾸준히 도전하던 남준은 등단 소식을 전달 받았다. 그러나 수빈의 모습이 꽤 서글퍼보여 남준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동아리 부원 모두가 남준의 등단을 축하하며 파티를 열 적에, 남준은 차가운 하숙집에서 수빈과 원고지 가득 시를 썼다.


“고요히 침전(沈澱)된 어둠
만지울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 깊구나
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멀-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그건 무슨 시에요?”


수빈이 묻자 남준이 씩 웃었다. 동그란 안경에 별빛이 가득 담겨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며 맞추었다는 양장은 썩 그럴듯하게 그에게 맞았다. 수빈이 가장 동경하는 사람의 모습을, 남준은 꼭 닮아 있었다. 한글로 시를 쓰는 대담함도, 독립을 부르짖으며 어디든 달려가는 그 생기도.


“방금 쓴 시.”


제목은 ‘밤’이라 할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야, 수빈아.”
“네?”
“너 독립운동할 생각 없냐?”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나라가 삼켜진지도 27년. 남준의 친구들은 벌써 뜻을 세워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있었다. 온 겨레가 백방으로 노력하는 중에도 일제의 탄압은 그보다 더 거세어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속으로만 울분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장 남준만 하더라도 일제치하에서 나고 자랐지 않은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몰래 사람들을 모아 연설을 하고 친일 하는 건물에 ‘대한 독립 만세’ 라고 쓰고서 도망가기도 했다. 그러나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위안부’ 라는 이름을 달고 어디론가 끌려갔고 남자들은 일본의 광산으로, 전쟁터로 끌려갔다. 언제 저와 수빈도 징집 영장이 날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어쩌면 더 조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독립운동…이요?”


수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안다, 위험한거. 그냥 해본 말이야.”
“……우리가 독립을 할 수 있을까요?”


뭐? 남준이 수빈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부끄럽지만……이런 제가 참으로 부끄럽지만서도……희망이 보이지 않아 두렵습니다.”
“…….”


남준은 대답 대신 수빈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왜소한 그의 어깨가 만져졌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다른 나라는 몇백년씩 식민지라 하더라.”


남준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고자 먼저 일어섰다.


“나 먼저 갈게.”


아 그리고, 내가 한 말은 조금 생각해봐라? 그리고 1941년 9월 23일, 남준과 수빈은 대한청년회에 가입했다.




__1942년 3월 31일
인쇄기가 힘겹게 돌아갔다. 깜깜한 밤이었기에 태현은 신문사에 작은 전등을 켰다. 겉옷은 벗어 던지고서 셔츠와 바지만 걸친 차림새였다. 얼룩 한 점 없던 새하얀 셔츠는 인쇄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잉크 자국이 늘어났다. 지하에 위치한 신문사의 공기는 바깥과 마주하는 법이 없어 매우 탁했다. 전등은 미친 듯이 깜빡이기를 반복하였다. 태현은 멍하니 전등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곧 전구를 갈아야 할 터다. 인쇄기에서 찍어낸 신문을 보자 태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자식인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하였다. 태현은 잠시 그 신문을 집어들어 제 1면을 읽어보았다.


“올해는 연해주의 우리 조선의 동포들이 큰 변을 당한지로 2년이 되어가는 해이다. 그들의 넋을 기리며 여기, 그들을 위해 술 한잔과 글 한 줄을 바치노라. 우리 이천만 동포들이여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들을 새기고 또 새기자. 대한독립 만세.”


그의 신문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조선인이 한글로 된 신문을 보지 않는다면 달리 어떠한 신문을 보겠는가. 인쇄를 마친 신문지를 커다란 상자에 나누어 담은 후 태현은 지하에서 올라갔다. 책방으로 위장한 일층의 문은 여즉 열려 있었다. 경성은 이제 사경(四更: 조선시대 시간 단위로, 새벽 1시-3시를 말한다)을 지나려 하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나누어 담은 상자들을 들고 태현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전깃불이 가득 늘어선 경성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태현은 상자를 열고 신문을 바깥으로 던졌다. 고래의 별, 경성에 그의 신문들이, 그의 한글들이 춤을 추며 떨어졌다. 난데없이 나타난 종이에 거리를 걷던 몇몇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하며 신문을 집어 들었다.

[대한매일신보]

인쇄기로 정갈하게 찍어낸 활자들이 용틀임하며 새벽을 불러왔다. 태현은 신문을 담았던 상자를 들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상자들을 태우려던 찰나, 누군가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 야심한 시각에 방문할 사람은 단체의 일원이거나 그것의 정반대일 터. 태현은 서랍에서 장총을 꺼내 겨누었다. 창백한 낯빛을 한 암살자가 힘겹게 두 손을 들었다.


“최 동지…?”
“신세를 지고…싶진 않았어. 생각나는 곳이…여기라서 말이야.”


연준이 말했다. 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태현은 침착하려 노력하면서 항시 보관해두던 붕대를 꺼내 감았다. 치료를 하는 동안 연준은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태현은 붕대를 감으면서도 그런 연준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김태형이란 사내, 누군지 알았습니다.”


태현이 붕대를 꽉 묶었다. 연준이 낮게 신음했다. 치료는 다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만. 일본인 의사가 없는 병원이 있어야 말이죠. 내가 언제부터 병원을 갔다고 그래.


“익숙하다 하였더니, 어느 암살단 소속이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종적을 감추고 있지만.”
“그대는 계몽운동 한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발이 넓은가? 암살단 쪽 일도 다 알고.”


연준이 피 묻은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를 힘겹게 들이마시는 그였다.


“신문사니까요. 경성에서 제가 모르는 일은 없습니다.”
“맹랑하네.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이려나.”
“이참에 이런 총 쏘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가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러자 연준이 가쁘게 숨을 내쉬며 간신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퍽이나 안쓰러워 보였다. 본디 평범한 짐승보다 상처 입은 맹수가 더 가여워 보이는 법이었다.


“미안하지만 귀한 셔츠에 잉크 묻혀가며 신문 만드는 건 내 적성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게 만들어진 신문이 대한의 독립을 가져온다면 그까짓 셔츠 쯤은 버릴 수 있겠지요.”
“셔츠는 그렇다 쳐도, 총도 못 쏘는 사내를 어디에 쓰나?”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직 더 있으시지… 태현의 말을 뒤로하고 그는 태현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두어 번 치고는 말했다.


“총은 그렇게 잡는게 아니야.”


나 간다.
태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분명 저의 어설픈 자세를 보고 말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났을까.


“오늘은 뜻하지 않은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군요.”
““すぐに捜索しろ!(당장 수색해라!)”


두세 명 정도 되는 헌병들은 책장을 뒤엎고 책들을 마구잡이로 내팽개쳤다. 낡은 마호가니 책장이 넘어가며 커다란 소리가 났다. 태현은 움직이지 않는 척하며 신문을 담았던 상자들을 으슥한 복도로 밀어 넣었다. 그 사이 헌병들은 수색을 끝냈는지 밖으로 다시 나갔다. 그들 중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자가 태현에게 걸어왔다.


“えらい。(대단하군.)”
“過賞です。(과찬이십니다.)”
“大日本帝国の神民なら、神民らしく行動しなさい。(대일본제국의 신민이라면, 신민답게 굴어.)”
“それ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な?(그게 무슨 말씀이실까?)”


태현이 헌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손의 진동이 그것을 감추고자 여유롭게 웃은 입술에까지 가 닿았다.


“大韓毎日申報。(대한매일신보.)”
“……”
“一で偶然、二で運。そして三は疑いと言った。(하나면 우연, 둘이면 운. 그리고 셋이면 의심이라 하였다.)”


자네는 방금 우연을 범했어. 헌병이 태현의 가슴팍에 대한매일신보를 던지고 맨 마지막으로 신문사를 나갔다. 태현 홀로 오래도록 그들이 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사를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