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의 모든 것들은 잇츠 마인.
도용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

04
:: 몰랐어요
"김여주 씨."
"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애까지 있는
남자한테 들러붙는 여자예요.
그것도 열한 살이나 어린 여자."
"······."
"그런 여자 어떻게 생각해요?"
아놔··· 왜 또 김태형이야. 내가 먼저 존댓말을 하자고 하긴 했지만 상대 태도 때문에 존댓말을 하기가 너무 싫어서 이제와서 다시 반말을 하자고 하긴 좀 그렇길래 속으로라도 맘껏 반말을 해댔다. 어제 한 30분 간 여진이를 놀아주고 난 다시 집으로 갔다. 다행히 덕분에 여진이는 삐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꾸 김태형 그놈이 아무 사이도 아닌 나와 대리님 사이를 은근슬쩍 엮으며 나를 자꾸 나쁜년으로 몰아가길래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아오 빡쳐. 일단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가기 위해 12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멈춰 타려고 했는데 안에 있는 상대에 잠시 멈칫했다. 김태형이었다. 생각보다 더 빡치네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딱 봐도 비아냥대며 눈치를 주는 행동에 상대해주기도 싫어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뒤 시선을 폰에 내리꽂았다. 절대 널 보지도 않을 거란 내 수법이 통했는지 이후로 김태형은 말을 걸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난 뒤도 안 돌아보고 쌩 달려나갔다. 쉬바 쫓아오기만 해봐. 뒤질 줄 알아. 김태형 손에도 음식물쓰레기 봉투가 들려있길래 버리면서 또 말 섞게 될까 봐 다른 동 음식물쓰레기장까지 갔다왔다.

"나 이제 남는 게 시간이야. 간섭할
남친도 없으니까 너네랑 하루종일 놀 거다!"
"그래 이 기지배야 잘 생각했어.
이제부터 눈치 보지 말고 다 놀러다녀."
주말이 되고, 취업 준비와 구남친인 박지민 때문에 미뤄왔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드디어 지키게 됐다. 이제 회사에도 붙었고 눈치 보여서 좀 꺼리게 되었던 술자리도 다 나갈 예정이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아도 되죠?"
헌팅포차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남자 세 명이 우리 자리에 착석했다. 나이 스물다섯 먹고 이런 데가 처음이라서 혼자 막 두근두근했는데 친구들 말에 헌팅포차에서 만난 남자들은 재회 같은 거 없고 일회용이라길래 한편으론 그저 그런 면도 있었다. 알 게 뭐야 내가 신난다는데.
"근데 이름이 여주랬나, 진짜 예쁘네."
"고마워요."
옆에 있던 남자가 시끄러운 틈을 타 나에게 말을 걸며 허리에 팔을 감아왔다. 살짝 놀랐지만 초짜인 걸 들키기 싫어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눈치 못 챘겠지. 점점 더 대담해지는 남자의 행동에 나도 빠져드는 순간이었을까,

"안 떨어지냐? 변태 새끼야?"
박지민이 남자와 내 얼굴 사이를 손으로 가로막았다. 잠깐만 박지민이 왜 여기서 나와···? 헌팅남이 대수롭지 않게 뭐야, 하며 가만히 있자 박지민은 상당히 빡친 표정을 띠더니 헌팅남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덕에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은 모두 다 놀라 우리쪽을 쳐다보았다. 내가 하지 말라고 말려봐도 박지민은 귀를 열 생각조차 하지 않고 헌팅남을 죽일 기세로 몰아붙였다.
"갑자기 왜 이러는데,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자꾸 질척거리잖아. 대갈빡에
든 게 있긴 한가, 씨발."
"야 너랑 나 아무 사이도 아니야. 작작 좀 해."
그래도 그렇지 3년을 만나왔는데 남자친구는 아니더라도 친구 간의 정은 있지 않냐며 무논리를 펼치는 박지민에 어이가 없어서 그놈 머리를 후려쳤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날 바라보길래 뭘 보냐고 눈깔을 찌르려다 참았다. 자기가 바람펴 놓고 갑자기 웬 남친 행세. 지금 안 가면 진짜 반죽음 시켜놓는다 해도 박지민은 얼얼한 머리를 붙잡고 싫다고 우겼다.
"네가 네 입으로 여자 생겼다며.
왜 난리야 자꾸."
"헤어졌어."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난 다
정리했으니까 좀 가, 제발."
"너한테 남자새끼들 붙는 꼴을
내가 어떻게 그냥 보고 지나쳐!"
"남이니까 개새끼야!"
박지민과 싸우는 도중 헌팅남은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 포차 안으로 들어오더니 헌팅남을 다시 자리에 앉혀놓고 날 그 남자에게 안기도록 밀었다. 그에 박지민은 더 열불이 나버렸다.

"뭘 봐."
이번엔 김태형이야···?
"··· 김태형 씨?"
"뭐야 아는 놈이야? 주변에
남자가 이렇게 많았어?!"
"보니까 전 남친인 것 같은데
간섭질은 그만하고 좀 가지."
"너 누구야, 누군데 김여주 도와줘!!"
"아마, 사랑의 큐피드?"
뭔 개소리야··· 급 표정이 썩은 박지민을 김태형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이후로 둘이 싸우는 걸 보면서 알게 된 점은, 박지민은 헌팅남이 자기 눈에 거슬려서 남친 행세를 하며 간섭하는 거고 그 반대로 김태형은 자꾸 내가 대리님께 흑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다. 그러니 대리님이랑 잘 되지 않게 이 헌팅남과 쭉쭉 밀어주려는··· 그런 속셈인 거고. 일단 박지민이든 김태형이든 다 제정신은 아닌 듯.
결국엔 김태형이 이겼다. 말빨이 상당히 딸리는 박지민은 씩씩거리다가 몸으로 상대하기 위해 김태형에게 들이받았지만 김태형이 상당히 힘이 좋은 탓에 결국 더 얻어맞았다.
박지민이 도망친 후 김태형은 아무 말 없이 헌팅남에게 힘내라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포차에서 나갔다. 박지민부터 시작해서 이미 포차 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일단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포차 밖에서 집으로 가고 있는 김태형을 불러세웠다.
"야!"

"뭐? 야?"
"아.. 아니 김태형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그쪽 때문에 다 망쳤잖아요."
"이건 내가 도와준 꼴 아닌가, 나 아니었으면
그 사람 계속 거기 있었을 텐데."
".. 그건 그렇지만."
다시 갈 길 가는 김태형에 달려가 뒤를 졸졸 쫓아갔다. 김태형은 아무 말 없이 걸을 뿐이었다. 난 어차피 처음부터 사이 틀어진 거 막 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왜 자꾸 내 연애사에 참견하냐고 따졌다. 대리님이랑 무슨 사이든 아니든 내가 전 남친한테 피해 받고 있는 게 김태형 씨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에 김태형은 말했다.
"그건 김여주 씨가 더 잘 알지 않나."
"그걸 모르니까 묻잖아요!"
"둘이 같은 회사 부서라며. 그럼 우리
형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는 게 정상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다니, 대리님한테?

김태형이 대답을 해주지 않은 탓에 궁금증에 못 이겨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퀭한 몰골로 출근을 하니 그 짧은 새에 친해진 여직원분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며 잠 설쳤냐고 에너지음료를 건넸다. 이런 건 또 언제 가져오셨대. 웃으며 감사하다고 음료를 받았다.
"근데, 최사원님은 입사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거의 1년 다 되어가죠?
시간 진짜 빠르다."
"와··· 그럼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
거의 다 알고 계시겠네요?"
"웬만한 건요. 근데 그건 왜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바로 대리님께 무슨 큰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아직 모르냐며 놀라는 최사원님에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았다. 최사원님은 대리님이 결혼하시고 둘째를 낳으실 때 아내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마음 좀 추스르고 나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 새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게 애 때문에 다 실패했다고 하셨다. 이제야 김태형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아마 나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김대리님한테는 아는 거
내색하지 마요, 아직 힘드실 거예요."
"당연하죠. 절대 말 안 해요."
수다가 끝나자 대리님이 도착하셨다. 밝게 인사를 하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찡했다. 최사원님이 말하시길 첫 째딸 어린이집 보내느라 항상 조금 늦게 도착하신단다. 떡을 돌리러 갔을 때와 회사에 처음 출근했을 때까지.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여주 씨, 뭘 그렇게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그래요. 민망하게."
"··· 아··· 아닙니다."
"오늘 하루 힘내요."
··· 대리님도요.
이제 태형이가 왜 그랬는지 아시겠죠?
그래서 니들 언데 사귈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