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 금지.

23
:: 과분한 사람
여주는 차에 탈 때도, 석진이 안전벨트를 매줄 때도, 시동을 걸어 차가 출발해 달리기 시작할 때도 쉴 새 없이 말을 주저리 주저리 해댔다. 그런 여주에 석진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주사가 계속 얘기하는 거구나.
"오빠는 되게 멋있고··· 또 멋있고···
또 또 멋있고··· 또 또 또 멋있고···."

"······."
"엄청 많이 멋있는 사람이거든요···?
나한테는 과분한 사람···."
"······."
"다시는 이런 사람 못 만날 것 같아서···
더 놓치고 싶지가 않아요···."
김여주라는 사람에게 김석진이라는 사람은 분명 과분하고 더 빛나는 사람인데, 오빠랑 헤어지면 두 번 다시 이런 사람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누가 뭐래도 오빠 절대 안 놓으려고요. 오빠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는 오빠 진짜 좋아하니까··· 저는요, 오빠랑 하고 싶은 것도 엄청 많아요. 좋은 데는 같이 가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먹고 싶고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거 다 이룰 때까지는··· 저 놓지 말아주세요.
내가, 너를 어떻게 놔요. 석진은 마음 속으로만 답했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어쩌면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 걸까. 신호가 잠깐 멈춘 타이밍에 석진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조잘조잘 말하는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그의 손길에 여주는 옅게 웃으며 석진의 팔에 더 기댔다. 오빠 냄새 난다, 우리 오빠 냄새.

"그만 말하고 이제 좀 자요.
피곤하잖아."
사실 석진은 여주가 친구들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서 많이 신이 나 있을 텐데 괜히 연락했다가 밉 보이면 어떡하지 하고 전화를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메신저로 연락을 하기로 한 석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전송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녀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 언젠간 보겠지 싶은 심정으로 휴대폰을 반대로 눕혀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증은 걱정으로 바뀌어갔고 결국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고서 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 안 받네."
본래 전화를 걸면 바로 받는 여주였기에 계속 되는 통화 연결음에 석진은 당황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연결이 되지 않자 재밌게 노는구나 싶어 종료 버튼을 누르려 했을 그때, 바로 여주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주야 지금 통화 가능해요? 여보세요, 여주야. 여주야? 하지만 희미하게 말소리만 들릴 뿐 그녀는 석진의 물음에 답을 일절 하지 않았다. 설마 잘못 눌러진 건가?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일단 친구로 추정되는 목소리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 ··· 그런 아저씨랑 만난다고?
애까지 있는 건 좀 오버지.

"······."
- 그래, 네가 아까워. 서른여섯이면
곧 너한테 결혼하자고 달려들걸?
뚝.
그녀들의 말로 인해 석진은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충격에 바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서른여섯에 애가 둘이나 딸린 싱글대디. 여주를 만나기 전 한창 듣고 살았던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석진은 아직 과거 아내를 잃은 아픔을 잊지 못한 모자란 게 많은 '싱글대디'였다. 여주가 자신에게 과분한 사람이라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옆에 놓여져있는 작은 거울에 비친 석진은 무척 초라했다.
왜, 현실을 자각하지 않았을까. 나로 인해 아무 죄 없는 여주가 저런 소리나 듣고 있으리라는 걸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도, 내가 이기적인 거 아는데···."
널 놓아주기엔 내가 너를 너무 많이 좋아하고 있어.
여주를 봐야 했다. 당장 그 친구라는 여자들에게서 그녀를 빼내와야 했다. 어딘지로 모르는 곳으로 가는 거지만, 여주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까지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될 것 같았다. 급하게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여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저 좀 데리러 와주면 안 돼요?

"··· 갈게요."
- ······.
"금방 갈 테니까 나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요."
이건, 우리가 만나면서 감수해야 할 문제니까.

그렇게 금세 도착한 아파트 주차장. 여주는 반쯤 눈을 감은 채로 여전히 조잘대고 있었다. 발음 하나 꼬아지 않고 말해대는 여주에 석진은 순간 픽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는요 오빠가 제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정말 행복하고요··· 십 년, 백 년이 지나도 오빠 쭈우욱 좋아할 거예요··· 아니지 사랑해야지. 히히···.
결국 석진은 술에 찌들어 흐물흐물해진 여주를 업고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밖에서 술 먹고 올 때는 항상 데리러 와야지. 생각을 마쳤을 즈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아 졸려··· 오빠 세상이 왜
이렇게 빙빙 돌까요?"

"세상이 도는 게 아니라
여주가 도는 거예요."
"지인짜요? 그럼 오빠도 저랑
같이 빙글뱅글 할래요?"
아니요, 졸리다면서요. 얼른 자요. 여주의 집안에 들어와 그녀를 침대에 눕혀준 뒤 묵묵히 겉옷과 양말을 벗겨준 석진은 이제 가겠다며 내일 아침 일찍 해장국 끓여줄 테니까 아침밥은 올라와서 먹으라는 말을 전해준 후 뒤를 돌았다.
"아, 오빠···."
발걸음도 떼지 않았는데 제 옷깃을 잡아오는 여주에 석진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왜 뽀뽀 안 해주고 가요? 풀리다 못해 야한 눈, (뽀뽀 안 해줘서 삐진 바람에 그런 거지만) 작게 깨문 입술. 그런 여주에 잠시 멍해진 석진은 정신을 겨우 붙잡고 가볍게 뽀뽀를 해주려 고개를 숙였다.
"··· 아니 잠깐만!"
"으응."
으, 읍! 얼굴을 가까이 하자마자 두 팔로 목 뒤를 세게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오는 여주. 여주의 힘에 이끌려 그녀에게 올라탄 자세가 되어버린 석진은 머릿속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행동은 전혀 여주를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주고 있었다.
그 이후로 키스가 계속해 이어졌다. 오늘, 집에 들어갈 수는 있으려나. 결국 석진은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러다 점점 여주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더니, 갑자기 가만히 누워만 있는 여주에 석진은 뭔가 싶어 입술을 떼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

"··· 엥."
하다 말고 잔다고···? 아무리 술을 마셨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사람 애타게 만들어놓고 잠들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근새근 자기 시작하는 여주. 석진은 아쉬운 듯 몸을 일으켜 짧게 여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잘 자요. 그렇게 방 전등을 끄고 나오니 그제서야 현실 직시 타임이 찾아왔다. 나 지금 뭐 하고 온 거지.
"··· 술 마신 애한테 뭘 하려고.
미쳤나 진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속이 니글거려서 자동적으로 화장실 변기로 향했다. 우욱. 뒤늦은 오바이트를 하고 나니 속이 더욱 메스꺼워져서 물조차 잘 마실 수 없었다. 술을 진짜 끊어야 하나···. 아침밥은 패스하기로 하고 씻으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한 그때, 누군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빠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끊긴 필름 사이에 어렴풋이 오빠가 날 데리러 온 게 기억이 나는데 설마 술주정 부린 거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오빠 옷에 토라도 했으면 어쩌지? 가뜩이나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이름 부르면서 반말했으면 어쩌지? 떨리는 마음으로 일단 대충 씻고서 12층으로 향했다.
"어우 술 냄새 미쳤나."
"··· 심해요?"

"살짝. 일단 들어와요."
문은 김태형이 열어주었다. 쫄래쫄래 김태형을 따라 들어가니 반찬을 접시에 담고 있는 오빠와 비몽사몽 밥을 오물거리고 있는 여진이, 그리고 아직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현진이가 보였다. 여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번쩍 뜨더니 언니! 하고 달려왔다.
"안 돼 오지 마···!"
"왜요?"
"언니 어제 술 마셔서 냄새 나, 안 돼."
여진이는 내 말에 깜짝 놀라더니 술은 아빠만 마실 줄 아는 거 아니었냐면서 신기해했다. 물론 내가 미성년자일 때 여진이 네가 태어나긴 했어도 난 성인이니까 ^^ 뒷말은 꾹 삼키고 어른이니까 마실 수 있는 거라며 호기심에라도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일러줬다.
"둘 다 그만 놀고 이리 와."
네~ 여진이는 거의 밥을 다 먹은 상태라 빠르게 해치우고는 어린이집에 갈 시간까지 많이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자려고 침대로 뛰어갔다. (가만 보면 현진이랑 비슷한 면 있다) 그렇게 부엌에는 오빠와 김태형, 나만 남게 되었으니 여진이 눈치 볼 것도 없이 바로 오빠를 부둥켜안고 고개만 들어올려 어제 이상한 짓 하지 않은 거 맞냐며 물어보았다.

"안 했으니까 걱정 말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겁했어요···
다행이다."
오빠는 내가 해장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몰라서 일단 무난하게 콩나물국을 끓였다고 했다. 맨날 술 마시면 라면으로만 간단하게 해장했었는데 제대로 된 밥을 먹으니 뒤집어졌던 속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는 요리마다 맛있는 거냐며 엄지를 들어올려 쌍따봉을 날리자 오빠는 고맙다고 짧게 뽀뽀를 하고 떨어졌다. 김태형은 그런 우리를 바로 앞에서 직관했다 보니 입맛 뚝 떨어졌다며 밥을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근데 어제 형 늦게 들어오던데.
둘이 밤에 뭐 했어?"
"필름 끊겨서 기억 안 나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 아무 짓도 안 했어."
오빠는 귀가 붉어진 채로 아무 짓도 안 했다며 고개를 푹 숙이고 애꿎은 국을 뒤적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지? 김태형은 남녀가 한 명 술 먹고 같이 있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겠냐고 안 봐도 뻔한 비디오라며 킥킥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어제 우리 뭐 했었어요?"

"··· 안 했어요."
"진짜 안 알려줄 거예요? 진짜?
진짜로? 완전 궁금한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고 뽀뽀나 해요."
"갑자기 뽀뽀? 뽀뽀 좋지···."
늦게 올려서 제송함요 ㅎㅁㅎ
팬플 1위 자주 하시는 분께... 순위권 안에 잘 드는 방법을 전수받았습니다 나도 라이징스타 할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