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 빙의글/나페스] 김부장

김부장 2화

"김부장님, 광고주 쪽에서 수정안 전달됐습니다."

"회의실로 가져오세요."

김여주는 서류를 넘기며 짧게 답했다.

출근한 지 세 시간.

커피 한 잔도 못 마셨다.

오늘도 일정은 빼곡했다.

오전 회의.

광고 대행사 미팅.

촬영본 컨펌.

점심은 또 건너뛸 게 뻔했다.

"부장님."

후배 사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모델분이 오신다고 하셨는데..."

"압니다."

"이번에는 피팅만 잠깐..."

"일정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감정 없는 대답.

그때였다.

사무실 입구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목소리.

해찬이었다.

직원들이 하나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해찬은 사람들과 밝게 인사를 나누다 김여주를 발견했다.

"김부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회사입니다."

"당연히 일찍 와야죠."

담담한 대답.

해찬은 피식 웃었다.

"맞네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

김여주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저 사람은.'

'매번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지.'

 

 

---

 

 

피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의상 한 벌.

두 벌.

세 벌.

"죄송한데 소매 조금만 더 줄일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이 신발 말고 다른 색도 있을까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디테일했다.

김여주는 회의 자료를 보다가도 무심코 시선이 갔다.

'생각보다 꼼꼼하네.'

스타일리스트와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도 진지했다.

잠시 후.

"김부장님."

스타일리스트가 다가왔다.

"의상 하나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김여주는 피팅룸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커튼이 열렸다.

"이건 어떠세요?"

해찬이 새 재킷을 입고 나왔다.

김여주는 위아래를 천천히 훑어봤다.

"어깨 핏은 좋습니다."

"다만 소매가 조금 깁니다."

"바지 길이도 2센티 줄여주세요."

짧고 정확했다.

"알겠습니다."

다들 메모를 시작했다.

해찬은 살짝 놀랐다.

'엄청 빠르네.'

보통은 한참 고민하는데.

김여주는 단 몇 초 만에 결론을 내렸다.

 

 

---

 

 

점심시간.

직원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김여주의 자리는 그대로였다.

서류.

노트북.

회의 자료.

그뿐이었다.

"부장님."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식사 안 하세요?"

"나중에."

"또요?"

"먼저 가세요."

후배는 한숨을 쉬며 나갔다.

그 모습을 문밖에서 해찬이 우연히 보게 됐다.

"..."

혼자 남은 사무실.

모니터만 바라보는 김여주.

잠시 고민하던 해찬은 휴대폰을 꺼냈다.

십여 분 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해찬이었다.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거."

책상 위에 봉투를 올려놓는다.

김여주는 내려다봤다.

샌드위치와 두유.

"왜..."

"밥 안 드시잖아요."

"..."

"계속 안 드시는 것 같아서."

김여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버릴까요?"

"..."

"원래 제 거였는데 두 개 샀거든요."

해찬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혼자 두 개 먹으면 살쪄요."

"..."

"그러니까 하나만 도와주세요."

김여주는 결국 봉투를 집어 들었다.

"...이번만 받겠습니다."

"네."

해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맛없으면 말씀하세요."

"다음엔 더 맛있는 걸로 사올게요."

"...다음은 없습니다."

"음."

해찬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건 제가 정하는 거 아닌가?"

"..."

"농담입니다."

그러곤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김여주는 봉투를 바라봤다.

'참 이상한 사람이네.'

싫다고 하면 물러나면서.

또 어느새 선을 넘지 않는 거리에서 다가온다.

부담스럽지 않게.

딱 그만큼만.

 

 

---

 

 

퇴근 무렵.

촬영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찬 씨 진짜 성격 좋더라."

"그러니까."

"오늘도 스태프 이름 다 외워서 부르던데."

"부장님한테도 엄청 친근하게 하잖아."

그 말을 듣던 김여주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류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그때.

엘리베이터 앞.

"김부장님."

또다.

"퇴근하세요?"

"네."

"저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늘 샌드위치."

해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드셨어요?"

"...네."

"다행이다."

"안 드실까 봐 걱정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둘만 올라탔다.

고요한 공간.

해찬은 벽에 기대더니 웃으며 말했다.

"김부장님."

"...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원래 다들 무서워하세요?"

김여주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해찬을 봤다.

"...무슨 뜻입니까."

"직원분들이 김부장님 지나가시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더라고요."

"..."

"저도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그런데요?"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

해찬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씩 웃었다.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 같은데."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김여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찬은 먼저 걸어 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혼자 남은 엘리베이터 안.

김여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착하다고...?'

회사에서.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李東赫粉丝常读作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