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무슨 글인지 작가도 모릅니다.
- 왜 썼는지 작가도 모릅니다.
-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 가볍게 읽어주세요... 어차피 개연성 개나 준 엉망진창인 글입니다...
-TRIGGER WARNING! 2010년대 초에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욕설 다수
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 어느 날 소설 속 엑스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W. 그쁨
패배자들 4
김석진
야 1
무슨 매점 갔다가 똥통에 빠져 죽었나 1
왜 이렇게 안 와? 1
똥통은 아닌데, 똥 밟은 것 같긴 하다. 일반적으로 말이다, 인적이 드문 곳에, 누가 봐도 '난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듯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금방이라도 근처의 누군가를 향해 주먹을 내지를 수 있을 법한 포즈를 취한 사람 여럿에게 들러쌓인다면, 암만 심성이 곱고 착한 사람이더라도 '어? 뭔가 위험한데?' 하는 의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게 당연했다! 응당 주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살필 수 있고, '위험하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연주야, 여긴 무슨 일이야?"
그런데, 그 무지막지한 17세 여고생들 사이에서 예쁘장한 얼굴을 뿅! 하며 내밀곤 태연하게 '무슨 일이야~?' 따위의 말을 내뱉는 김여주는 그런 것 하나도 못 느낀 것 같았다. 한마디로 '어디 음침하고 인적 드문 곳에서 이야기 좀 하자'라는 말을 말 그대로 하하 호호 '이야기'나 나누자는 뜻으로 이해한 듯한 얼굴이란 뜻이었다.
"……."
오죽하면 김여주를 이 으슥한 소각장으로 끌고 온 본인, 오해지마저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하는 듯한 표정을 짓겠냐고.
아무튼 그래, 김여주는 지금 이 상황이 위험한 건지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를 구하러 온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럼, 이 소설의 '엑스트라'인 김연주는 이 답도 없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이냐. 내가 이 소각장으로 온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은 즉, 이 장면이 '소설'에 서술되어 있는 장면이란 뜻이었다. 일전에 김석진이 했던 말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설에 있는 장면이라면 좋던 싫던 소설에 적혀있는 대로 행동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난 기다렸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하는 …음, 꽤 찌질한 발언을 한 뒤의 김연주의 행동이 심히 궁금한 탓도 있었고, 어차피 이게 소설 내용이면 내가 뭘 하려 해봤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거 내 몸뚱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행동일지라도!
"…?"
그런데, 대충 한 2분 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설마, 소설 장면이 여기서 끝이라거나…? 끔찍한 생각과 함께 나는 내 몸뚱이를 삐걱이며 움직여보았다. 양 팔? 어…, 아주 잘 움직이고. 머리는? 음, 잘 돌아가고. 그럼 다리는? 방금까지 바닥에 딱 붙어있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발이 잘만 떨어진다.
네다섯 명쯤 되는 험상궂은 여학생들 앞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게 심히 쪽팔리긴 했지만, 나한텐 나름 중요한 과정이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내 몸이 자유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완벽하게 확인함으로써, 김여주를 위해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내 역할이 거기서 끝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중요한 행동이니까. 아무튼, 아까와 같은 자세로 바로 선 채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은 나는 생각했다.
…좆됐네.
"아 씨…, 장난하냐? 너 뭐냐고-,"
"…어, 나?"
"그럼 여기 너 말고 내가 누구한테 그러겠냐 병신아. 진짜 아까부터 존나 짜증나게 구네?"
"어디 모자란 애 아냐?"
좋아! 마지막으로 내 주둥이까지 아주 자유분방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머리에 새겨 넣으며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웃어? 그런 내 표정이 심히 거슬린다는 듯 인정사정없이 얼굴을 구기는 탓에 빠르게 내리긴 했지만.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절대 쫄아서 입꼬리 내린 거 아니다. 일 더 키울까 봐 그런 거야. 응, 진짜로.
아무튼 개 같은 소설, 얌전히 교실로 가려던 날 이쪽으로 끌고 왔으면 무슨 해결책이라도 내주던가. 이미 오해지와 그 무리들에게 얼굴도장을 단단히 찍었음은 물론이고 김여주마저도 저기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마당에 이대로 '미안! 길을 잘못 들었나 봐!' 따위의 변명을 내뱉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남주들한테 연락이라도 해볼까? 괜히 자켓 주머니 근처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뭐야, 핸드폰? 설마 녹음 중이냐?"
내 생각을 귀신같이 알아챈 여학생이 자켓 주머니에서 핸드폰만 쏙 빼갔다. 녹음 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별 볼일 없다는 듯 핸드폰 화면을 바로 꺼버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내 핸드폰이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야, 벌써 세 번째 묻는다. 니 뭐냐고, 여기 볼일 있어?"
"어…, 아니…, 난 지나가다가…."
"지나가다가 뭐?"
"…너희가 여주를 데려가는 걸 봐서?"
"그게 뭐?"
내 핸드폰을 허공으로 휙-, 던졌다 탁-, 잡아내며 험상궂은 여학생, 그러니까 권민지가 말했다. 저러다 깨지면…, 난 엄마한테 죽겠지….
"우린 그냥-, 여주랑 조용한 데서 이야기나 좀 하려고 데려온 건데? 그치 해지야?"
"응 그렇지-, 민지! 그거 줘 봐."
벽에 기대서서는 제 친구들이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오해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와, 은하별고 공주님이라더니 진짜 얼굴 하나는 끝장나게 예쁘더라. 미묘하게 김여주보다 못한 감은 있지만…. 슬슬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체감하는 듯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는 김여주를 보며 생각했다. 어, 그러고 보니 이것도 소설 내용 중 하나라면, 김태형이 김여주를 구하러 올 거 아니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안녕, 이름이 뭐야?"
"…나?"
상황과 맞지 않는 조곤조곤한 오해지의 목소리에 내가 되물었다. 응, 너. 하며 살풋 웃는데, 와, 여기가 소각장만 아니었더라면 사람을 홀리고도 남을 얼굴이었다. 아무튼, 오해지의 질문에 침묵이 길어지자 그 뒤에 있던 다른 여학생들의 표정이 살벌해지는 탓에 나는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김연주, 하는 내 대답에 오해지가 내 이름을 몇 번 곱씹었다.
"그래 연주야-, 아무것도 아닌 거 확인했지? 종 쳤는데 보내줄 때 빨리 교실 가자-, 응-?"
목소리는 조곤조곤 한데 눈빛은 아니었다. 빨리 꺼져, 그렇게 말하는 듯한 살벌한 눈빛으로 날 매섭게 노려보았다. 보내줄 때 가! 무슨 영화 속 조폭들이나 내뱉을법한 대사를 치며 오해지가 방긋 웃었다.
"으응…, 근데 저기야, 내 핸드폰…."
"아아, 이거?" 에이-, 연주야-,"
"으응…?"
"이 정도는 우리가 너 조용히 보내주는 값으로 해야지-!"
그치-? 몸을 붙여오며 말꼬리를 늘리는 오해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니, 수지 타산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거 아닌가? 딱 봐도 삥 뜯는 행동에 그럴듯한 구실을 붙이려는 심산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열일곱 여고생들에게 둘러싸여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하는 것보단-,
"어…, 미안.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뭐?"
"아무튼 내 폰이니까 돌려주라."
핸드폰을 잃어버렸단 말을 꺼냈을 때 야차처럼 일그러질 우리 엄마의 모습이 더 무서운 스물네 살의 성인이었다. 그거 없으면 나 진짜 엄마한테 죽을지도…, 하는 뒷말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쟨 뭐야, 지금 분위기 파악이 안 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오해지 무리들의 눈빛에도 난 굴하지 않고 오해지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황당하다는 시선을 받으며 나는 느리면서도 빠르게, 김여주가 있는 곳으로 가 그 손목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로 순순히 손목을 내주곤 내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는 김여주를 확인하곤 난 다시 오해지의 앞에 섰다. 예쁜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져있는 것이 여간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닌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 애의 눈앞에 내 손을 펼쳐 보였다.
돌려주라! 황당한 표정이 꽤 가관이었다. 어차피 곱게 돌려줄 것 같진 않았기에 나는 부러 더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지금 여기서 시간을 좀 많이 끌다 보면…, 남주들 중 하나쯤은 김여주 구하러 오겠지. 그럼 그때 슬쩍 묻어가면…, 따위의 생각을 하며 나는 오해지의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반짝, 켜진 화면이 시간을 알려주었다. 수업 종이 치는 때로부터 시간이 꽤 오래 지나있었다. 어차피 시간 끌기니까, 굳이 몸싸움까지 번지게 할 필욘 없겠지, 너무 열받게 만들진 말고 살살 말로 건드려서…,
"이 씨발련이 미쳤나!!"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에 머리채를 잡혔다. 우악스러운 힘은 내 앞에 서있던 오해지의 것이 아니었다. 그 뒤에 있던 다른 여학생의 손이 내 머리채를 꽉 틀어쥐고 있었다. 뭐야, 시발! 왜 급발진 하고 난리…! 말로만 살살 건드려 내게 시선을 집중시켜 남주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보려 했던 내 계획은 깔끔하게 망했다. 내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한 관심이었다. 아파 씨발!!! 여학생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악스런 손아귀 힘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나는 내 머리채를 단단히 잡은 그 손을 어떻게 떼어내기라도 하려고 팔을 버둥거렸다.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 연, 연주야…!!"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존나 끝을 모르고 깝치네, 야, 니 진짜 제정신이냐?"
뚜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하 씨, 내 머리카락. 안 그래도 숱도 적은 편인데…! 김여주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넌 친구가 머리채 잡힌 걸 봤으면 선생님이라도 불러오던가…! 가서 누굴 좀 불러올 생각을 하라고…!
"야아아…! 연주 머리카락 놔…!!"
"악!! 이건 또 뭐야?!"
"야야, 빨리 떼내, 얘들!!"
"아악!!! 씨발!! 이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김여주가 정상적인 사고를 할 거란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였다. 냅다 여학생 무리에 몸을 던지는 김여주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하하, 진짜 개판이네.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손길이 아주 억세기 그지없었다. 존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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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지 무리 중 하나,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여학생, 권민지가 기어이 양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그런 권민지의 머리카락을 김여주가 잡아채고, 또 그런 김여주를 떼어내보겠다고 다른 여학생 두 명이 김여주의 팔과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그 격한 몸싸움에 떠밀려 바닥에 꼴사납게 넘어진 오해지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달군 채 소리만 꽥꽥 지르고 있고…. 개판이라는 표현을 고상한 표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행동들이 끝이 난 건 누군가의 등장 하나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너네 뭐야."
그 '누군가'가 이 소설의 남주인공인 김태형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물론, 김태형의 뒤를 졸졸 쫓아온 나머지 남주 후보 세명도 포함해서. 포스 넘치게 등장해 표정을 싹 굳히곤 목소리를 내리깐 채 내뱉는 김태형의 말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더랬다.
"연주야! 괜찮아?!"
딱 한 사람 빼고.
김태형의 등장으로 손에 힘이 풀린 오해지와 권민지를 비롯한 아이들을 제치고 내 핸드폰까지 야무지게 뺏어든 김여주가 날 일으켰다. 얼떨떨하게 핸드폰을 받아들곤 몸을 일으켰다. 두피가 욱신거려 저절로 인상이 찌푸러졌다. 안 봐도 지금 내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뻗치고 쥐어뜯겨 엉망진창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고서야 김태형의 뒤에 있던 세 명이 입꼬리와 광대를 씰룩거리며 웃음 참기 챌린지를 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쥐어뜯긴 머리카락이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탓에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온몸이 아파 일그러진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니 세상에, 개판도 이런 개판이 따로 없었다. 가관이다, 가관이야.
"헉! 연주야…! 너 피…!"
하지만 단언컨대 그 가관속에서도 내 꼬락서니가 가장 가관이었을 것이라 장담한다. 어쩐지 콧속이 뜨끈뜨끈하더라, 어쩐지! 주르륵,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덩이를 얼빠진 눈으로 보고 있자니 김여주가 재빨리 제 손으로 내 코를 틀어쥐었다. 아파….
"어떡해! 어떡해! 보건실…, 아니, 병원!"
"아니…, 여쥬야…, 나 갱차나…"
코가 꽉 틀어막혀 코맹맹이 소리로 열심히 괜찮다는 것을 어필해 보았지만, 이미 패닉 상태에 가까운 김여주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내 코를 꽉 틀어막은 채 보건실로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김여주에 나는 저기서 '태형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응? 나도, 나도 넘어져 있었잖아, 이렇게…!' 따위의 대사를 내뱉는 오해지와 그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는 김태형을 한번 쳐다보았다. 아니, 지금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구해주는, 딱! 그런 타이밍 아니야? 근데 이렇게 가도 돼?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김여주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지난 체육대회 날 mvp에 가까운 활약을 했던 우리의 여주인공 김여주는 힘이 셌다. 나 같은 근력 부족 의지 부족 인간이 뭐 어떻게 해볼 생각은 하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어떡해…, 많이 아파?"
소설 속 보건 선생님들은 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 걸까. 덜렁 열린 보건실 안, 텅 빈 채 방치되다시피 한 보건 선생님의 책상을 보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마저도 우악스레 내 콧구멍에 솜을 집어넣으려는 김여주 덕에 거기서 그치긴 했지만. 잠, 잠깐만…, 하는 내 말에 김여주가 솜을 집어넣던 손을 멈추고 울망울망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와, 존나 예쁘다…. 그 상태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게…."
"…미안."
"네 탓이 아닌데 왜 사과를 해."
나름 격렬한 몸싸움이었으니, 누군가에게 콧잔등을 얻어맞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억울한 일은 아니었다. 몸싸움이 일어난 원인도, 어떻게 보면 말로 해결하려 했던 오해지 무리의 심기를 살살 긁어댄 쪽은 나였으니 얻어맞은 것도 내 탓일 테고, 그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아보자면 김여주를 괴롭힐 목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소각장까지 멋대로 끌고 간 그 애들이 나빴다. 어떻게 보던 김여주는 피해자였다. 그러니 이게 김여주의 탓은 아니었다. 당연한 사실이다.
"…미안해애애애!!"
흐어엉, 울음을 터트리는 김여주에 몸이 그대로 굳었다. …울어? 아니 왜?! 아직까지 뜨끈뜨끈한 피를 질질 흘려대는 콧구멍을 막다가 퍽 황당한 얼굴로 김여주를 쳐다보니, 뭐가 그렇게 서러웠던 건지 큰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쏟아졌다.
"왜, 왜, 왜 울어?!"
당황한 탓에 커진 내 목소리에 김여주가 질세라 울음소리를 더 키웠다. 허어엉!! 참 서럽게도 울어대는 김여주를 보며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려만 갔다. 이유인 즉, 혹시라도 김태형이 이 장면을 본다면? 하는 끔찍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절대 안 돼! 어떻게든 김여주의 눈물을 그치게 만들어야 한다. 여주인공을 울려서 남주인공에게 미운털 박히기? 그것만큼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 없다!
문제는 그거였다. 애당초 내 또래 애들이 어린아이마냥 크게 엉엉 울어댈 이유도 없을뿐더러, 나는 누군가를 달래는 데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전에 바쁜 일이 생겼다며 사촌 동생을 내게 맡겼던 이모가 그날 이후 아무리 바빠도 내게 사촌동생을 맡기는 일이 없는 것만 봐도 그랬고, 한때 성적에 맞춰 유아교육과나 가볼까…, 하는 고민을 하던 내게 '넌… 아냐…, 그 길은 정말 아니야….'하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던 친구만 봐도 그랬다. 아-, 어떡하냐. 이제는 콧물까지 삐죽 튀어나온 채 서럽게 울어젖히는 김여주를 보며 진땀을 흘렸다.
"아휴, 무슨…, 울지 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길거리에서 우는 아이에게 그 아이의 엄마가 어떻게 했더라-, 하며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몸짓으로 김여주를 어설프게 끌어안았다. 끌어안긴 했는데, 그다음은? 뭐 어째저째 기억을 살려 김여주의 등에 살포시 내 손을 올렸다. 토닥토닥, 하며 서럽게 들썩이는 등을 두드려주기도 하고, 살살, 그 등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이게 효과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지만, 놀랍게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젖히던 김여주의 호흡이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그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김여주를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새 킁-, 하는 소리를 내며 김여주가 완전히 울음을 그치고 내 눈치만 슬쩍슬쩍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천천히 김여주를 내 품에서 떼어냈다. 많이도 울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흥건히 젖은 얼굴이 보였다. 그 꼴이 꼭-,
'사고 치고 눈치 보는 강아지…,'
아무튼, 꼴사납게 보일 정도로 엉엉 우는데도 그 모습이 밉지가 않았다. 탁상에 놓여있던 티슈를 뽑아 조심스레 얼굴을 닦아주었다. 눈물에 금세 흐물흐물해진 티슈를 냅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새 티슈를 뽑을 때 즈음,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던 김여주가 입을 열었다.
"나, 나 안, 미워…?"
"네가 왜 미워?"
"그, 그거야…,"
나 때문에 네가 다쳤고, 또 안 겪어도 됐을 일을 겪었고, 어 또…, 걱정돼서 따라와 줬는데 내가 또 눈치 없이 굴어서 네가 더 힘들었고…, 하나하나 이유를 나열해가는 김여주의 고개가 점점 떨어졌다. 표정이 점점 울상으로 변해갔다. 나한테 독심술이란 초능력은 없다지만, 지금 김여주의 심정은 절대 틀리지 않고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김여주는, 자기의 행동 때문에 내가 자기를 싫어하게 될 거란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표정은 꼭 시무룩한 강아지 같아서는.
김여주를 미워한다느니, 뭐 그런 감정은 당연히 없었다. 아까도 말했듯 내 코가 푸르뎅뎅하게 물들어 코피나 뚝뚝 흘리게 된 건 김여주의 탓이 아니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일 뿐…. 그리고 애초에 그런 이유로 같은 반 친구를 미워할 만큼 속이 좁은 편은 아니었다. 겉가죽이 열일곱 일뿐, 진짜 살아온 시간은 스물네 해가 훌쩍 넘어가고 있는 나로서는 설령 내 코피를 터트린 게 김여주의 주먹이었더래도 김여주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좀 짜증은 났으려나….
말주변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나는 부러 이상한 비유나 표현들을 덧붙이는 대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그대로 내뱉었다. 물론 내가 원래 스물네 살이었다는 사실은 제외하고. 어쨌든 그 말들의 결론은 나는 네가 밉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걸로 김여주가 마음을 좀 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 그거면 됐다.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 말을 들은 김여주의 눈은 다시 울망울망해졌고…, 또 울음을 터트렸다. 팔자에도 없는 애 보는 일을 오늘 얘 덕분에 실컷 한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김여주의 얼굴을 내 어깨에 처박았다.
한번 해봤다고 김여주의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같았다.
📘 📗 📕
'거기까진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나는 생각했다. 턱을 괸 채 여태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느라 복잡해진 머릿속엔 옆에서 여느 때처럼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이유진의 말소리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평소라면 영혼을 5g 정도 담은 리액션이라도 해줬을 텐데, 그러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짜야?! 유진이 너도 이 밴드 좋아하는구나…!"
나 말고도 이유진의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유진의 말에 열심히 대꾸해 주는 그 사람이-,
"여주 너도?!"
"응응! 나도 그 밴드 좋아해! 밴드 노래 중에 이 노래…, 혹시 알아?"
"…대-박! 나 이 노래 진짜 진짜 좋아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여주라는 사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모를 생각을 하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만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밴드 이야기로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김여주와 이유진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연주야…! 이거, 이거 마실래액?!"
삑사리까지 내 가며 내게 바나나우유를 건네주던 김여주의 행동이 그냥 죄책감에서 비롯된, 잠깐 하고 끝낼 행동인 줄 알았다. 코피 났던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나? 하는 생각에 떨떠름하게 바나나우유를 받았던 이유도 그랬다. 뭐, 이런 걸로 죄책감 좀 덜어줄 수 있으면 좋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김여주만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그 편이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이게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 나흘이 지나도 끊길 생각을 않을 줄은 나도 몰랐지…! 그러니까 김여주가 거의 매일을 나에게 바나나우유와 딸기 우유, 그리고 초코우유를 번갈아가며 사다 바칠 줄은 나도 몰랐단 소리다.
"글러먹었어."
"뭐가?"
"내 엑스트라 인생이…."
내 조용한 나날들이…, 소파에 흐느적거리며 쓰러지듯 눕는 나를 보며 박지민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김여주 때문에? 하는 김석진의 물음에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공이면 너네한테 붙어있던가, 왜 나한테…!"
그래도 교실에서는 항상 김석진을 비롯한 남주인공들과 붙어있는가 싶더니, 코피 사건이 있은 후로 내게 말을 붙이지 못해 안달이던 김여주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언가가 심히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던 차였다.

"뭘 그렇게까지 열을 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김석진이 말했다. 그게 됐으면 나도 그냥 넘겼겠지, 하지만 그 대상이 무려 여주인공이라고? 그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거였어?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안 돼…, 너무 귀찮아…,"
김여주의 활기를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낡고 지쳤다. 싫어, 피곤해. 난 이유진만으로도 족해.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을 내뱉는 나를 김석진이 한심하게 쳐다봤다.
"소설엔 분명 이런 내용 없었다며…."
소파에 축 늘어져선 입을 비죽이며 중얼거렸다.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던 박지민이 멈칫하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질세라 마주 쳐다보자 고운 미간에 금이 갔다. 그러곤 하는 말이 이랬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박지민의 말을 좀 다르게 해석해 보자면 이런 것 아닌가. '소설이 어떻게 흘러가던 관심이라곤 1도 없어서 여태까지 소설 전개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뭐 이런. 얼척없는 표정으로 박지민을 쳐다보고 있자니 김석진이 말을 이었다.
"그러게…, 근데 넌 소각장으로 갈 생각 없었다며?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하지 않았어?"
"엉, 너네를 불렀으면 불렀지, 내가 뭣하러 거길 따라가."
"…그럼 네가 김여주를 따라 소각장으로 간 건 소설 장면 중 하나라는 소리잖아?"
"……."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넌…, 그 소설에 나온 적 없단 말이야. 그래, 이 거지 같은 소설이 김석진을 비롯한 네 명의 남주인공과 관련된 팬픽 그 비스무리한 성질을 띄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아낸 날, 나는 이 세명을 탈탈 털고 털어서 소설의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야 이딴 걸 왜 보나-, 싶을 정도로 읽기 싫은 소설임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셋 다 읽다 말아서 소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았다. 그래도 이 세 명의 입에서 나온 공통적인 말이 딱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에 대한 것이었다. '네 이름은 소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소설이 바뀌는 건가…?"
"이미 완결까지 나서 텍본도 있는 소설을 무슨 수로,"
"뭐…, 현실 세계에서 작가가 소설을 뜯어고치고 있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 치곤 꽤 그럴듯한 말이었다. 근데, 그러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기껏 알아낸 소설 줄거리들이 전부 다 쓸모없게 될 텐데…. 게다가, 분량이 0에 수렴하던 엑스트라인 내가 분량이 꽤 많은 엑스트라로 전향할 수도…. 생각만 해도 끔찍한 가정들에 얼굴을 와락 구겼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한심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전정국이 말했다.

"기회일지도 모르지."
거실 바닥에 모로 누워 과자를 입에 넣으며 내뱉은 그 말에 김석진이 되물었다. 무슨 기회? 하나 남은 과자를 마저 입에 털어 넣은 전정국이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소설을 바꿀 수 있는 기회.
"만약 정말로 소설을 뜯어고치는 중이라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설정이 충돌하거나 붕괴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소설에 묶여 행동해야 되지만, 그런 걸 이용하면 지금보단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소설 내용을 좀 비틀어 볼 수도 있는 거지,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우리한테 유리한 게 뭔데?"
"…김태형이랑 김여주를 좀 더 빨리 이어지게 만들어서 소설 완결을 앞당긴다던가."
"결말은 둘이 결혼하는 걸로 끝난다며."
"모르지, 꼭 결말을 봐야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잖아."
둘이 이어지는 걸로 우리가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 누가 알아. 꽤 그럴듯한 논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치, 그럴지도 모르지….
김여주와 김태형을 더 빨리 이어지게 만든다- 라. …가능하긴 할까? 어쨌든 문제는 김여주였다. 김태형이야 뭐,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김여주에게 호감이 있는 게 보였으니까. 그럼 김여주가 김태형을 좋아하도록 만들면 되는 건가? …이왕 친구 그 엇비스무리하게 되어가는 마당에 옆에서 슬쩍슬쩍 찔러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그럼 너네가 남주인공이 돼도 괜찮은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 소설이 한창 뜯어고쳐지는 중이라면 말이다(물론 어설픈 가정일 뿐이지만), 우리가 이 소설에 존재하는 목표가 '김여주와 누군가를 이어주기!'에 불과하다면, 굳이 남주인공이 김태형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아닐까? 왜, 김석진이 남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박지민이 될 수도 있고, 전정국이 남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가능성도 일단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가능성'들을 가진 세 명은 심드렁했다. 심드렁하다 못해 별로 달갑지 않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반응들이 죄다-,
"뭐 하러,"
"귀찮아…."
"음…, 나도 딱히…."
차례대로 김석진, 박지민, 전정국의 대답이 그랬다. 김이 팍 샌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조연 급인 여주인공의 친구조차 되기 싫어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다들 왜 그렇게 욕심이 없어서는….'
왜 싫은데?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여기서까지 연애로 머리 복잡하게 만들기 싫어…,' 하는 김석진의 말은 뭐, 현실에서 했던 연애가 꽤 더럽게 끝났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고, 그 말에 냉큼 '나도-,'하는 대답을 하는 전정국도 그래 뭐…, 하며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는 걸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김여주가 너무 내 취향이 아니야."
하는 박지민의 말에는 도끼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쩌고 저째?!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내 모습에 박지민이 말했다. 왜 네가 화를 내?!
"친구하기 싫다고 뻗댈 땐 언제고…,"
"야!! 지금 그거랑 이거랑 같아?!"
그새 정이라도 들었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남주인공 후보인 박지민이 김여주가 취향이 아니라는 말을 하니까 내가 다 울컥한다. 아, 그새 정이 들었나 봐. 정이 들다 못해 이제는 아예 김여주의 편에 가까웠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급발진을 서슴지 않는 나와, 그런 나를 잔뜩 비아냥대는 박지민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싸움을 말린 건 전정국의 질문 하나였다. 그럼 네 취향은 뭔데?
"뭐…,"
"……."

"글쎄?"
그것만큼 애매한 대답이 없다. 박지민이 뜻 모를 웃음을 짓고, 김석진이 얼굴을 굳히고, 전정국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는 걸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뭐, 그랬던 적이 있었지…,
아무튼 결론은 그랬다. 남주 후보로 빙의한 세 명은 김태형을 대신해 남주인공 자리를 꿰찰 생각이 단 1g도 없다. 그냥 김태형과 김여주를 빠르게 이어주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란 말이었다. 그러려면 친해지는 게 우선이긴 한데 말이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이유진과 신나게 떠들어대는 김여주를 보며 생각했다. 얘를 어쩐다?
"연주도 이 영화 알아?"
아, 어느새 대화 주제가 영화로 넘어갔나 보다. 김여주가 핸드폰으로 보여준 영화의 포스터를 슬쩍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는 내가 현실에 있을 적 재밌게 봤던 영화 중 하나였다. 보러 가자 하려나?
"앗…! 그럼, 그럼 오늘 학교 끝나고 같이 보러 갈래…?"
무슨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는 것 마냥 얼굴에 수줍은 홍조를 띠고 하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까짓꺼, 그냥 엑스트라 생활 청산하고 친구 해버리지 뭐…! 하는 다짐을 하기 무섭게 뒤통수에 싸늘한 시선이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남의 시선에 죽도록 예민하게 구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는 그런 살기 어린 시선에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주야? 하는 김여주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슬쩍, 곁눈질로 시선이 시작되는 곳을 쳐다봤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그러니까, 날 죽어라 쳐다보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권연희였다.
"…아니! 나 오늘은 볼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네!"
사람의 감은 때론 소름 돋으리만치 정확하다. 이따금 들어맞는 내 감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온몸의 감각들이 있는 힘껏 말하고 있었다. 지금 김여주의 제안을 수락해선 안 된다고. 적어도 권연희가 보고 있는 지금은 안 돼…! 격한 내 반응에 김여주가 시무룩해지는 것이 보이고, 이유진이 당황하는 것이 보여도 나는 내 대답을 번복하지 않았다. 아니, 번복하지 못했다. 내 뒤에서 서늘하게 닿아오는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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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