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在田柾国家。

[1]

나는 내내 연습실이 아니면 윤기한테 불려 다니고 있다. 정국이의 홈마로 활동하던 전과는 많이 다른 생활이었다.

"좀 더 깔끔하게 부를게. 끝 흐리지 말고."

"네."

"다시 간다."

윤기를 대하는 건 차라리 연습생이 되기 전이 훨씬 편했다. 윤기가 내 프로듀서로 행동할 때는 절대 빈틈이 없었다. 잘못된 부분은 칼같이 지적했고 아예 녹음을 다시 하는 경우도 많았다.

 '꾸꾸 : 햄아, 오늘도 녹음 중?'

'햄 : 응, 윤기랑 녹음실에 있어.'

'꾸꾸 : 윤기 형이 많이 혼내?'

'햄 : 다 나 잘 되라고 해주는 말인데. 뭐.'

'꾸꾸 : 윤기형이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내가 혼구녕을 내줄게.'

가끔 빡센 녹음 스케줄에 지치기도 했지만 정국이와 연락을 하고 나면 피로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내가 연습생이 된 것 뿐, 정국이가 나의 요정같은 존재라는 건 변함없다.

"햄아."

"네?"

"이제 녹음실 나왔잖아. 말 놔도 괜찮아."

"응."

"바로 팬싸 갈 거야?"

"그럴 생각인데."

"그럼 같이 타고 가. 중간에 내려 줄게."

윤기는 녹음실 안과 밖이 많이 달랐다. 녹음실 안에서는 정말 가차 없는데 녹음실 밖에 나오면 금세 친절해진 달까. 나랑 동갑내기라는 걸 가끔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도 돼?"

"안 될 건 없지. 우리 홈마님이신데."

"히히."

나는 윤기의 뒤를 졸졸 따라 방탄소년단의 벤에 탔다. 다른 멤버들은 먼저 팬싸장소에 가있고 윤기만 뒤늦게 합류했다. 내내 내 녹음을 봐주느라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넌 연습생이 되도 홈마가 계속하고 싶어?"

"당연하지. 나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홈마를 한 건 아니니까. 오로지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거거든."

"아쉽네."

"응?"

네 최애가 나였으면 좋았을 텐데. 윤기의 목소리는 담담해보였지만 그랬기에 장난같이 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윤기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연습생 생활은 어때? 할만 한 것 같아?"

"응. 많이 즐거워. 그래서 윤기한테 고마워."

"..."

"이런 생활 나한테는 그저 꿈같았는데. 꿈에서도 꿈같은 일을 윤기가 이뤄줬으니까."

"거기에는 네 재능도 있었지만. 그렇게 고맙다면 이제는 렌즈를 좀 돌려보는 게 어때?"

전정국만 찍는 거 지겹지 않아? 조금은 눈을 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윤기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나는 애꿎은 카메라 렌즈만 만지작거렸다.

"절대 눈 돌리겠다고는 안 하네."

"정국이만 찍겠다고 약속했는 걸!"

"전정국. 하여간 성가셔."

윤기는 나를 팬싸인회 장소 근처에 내려다 줬다. 좋아. 오늘은 정국이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정국이 사진도 마음껏 찍을 수 있다고. 이 날을 위해 밤을 새며 연습한 날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정국이의 레전드 샷을 찍어오겠다 이거야.

'꾸꾸: 햄아. 어디야?'

'햄 : 나 팬싸인회장 근처야! 가고 있어!'

'꾸꾸 : 햄이 볼 수 있는 거야? 마음이 정국정국해!'

뭐야. 마음이 정국정국한 건 뭐야. 너무 귀엽잖아. 정말 정국이를 낳아주신 정국이의 부모님께 백팔 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햄 : 정국정국한 건 뭐야?'

'꾸꾸 : 마음이 햄이햄이 한 거야!'

'햄 : 햄이햄이? 그건 또 뭐야!'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정국정국하다의 정의를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팬사인회장에 입성했다. 이번에도 맨 앞자리에서 정국이를 볼 수 있다. 정국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건 찍어야 해.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정국이는 사인회 틈틈히 내 카메라 렌즈를 향해 애교를 마구 던져줬다. 덕분에 이번 팬사인회는 레전드사진의 밭이랄까. 물론 정국이는 언제든 레전드를 갱신하지만.

'꾸꾸 : 햄아. 정국정국한 꾸꾸 보러 와.'

'햄: 어디 있어?'

'꾸꾸 : 우리가 처음 만난 그곳으로?'

처음 만난 그곳이라면. 그러고 보니까 이번 팬사인회 장소가 정국이를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본 날 장소랑 같구나. 나는 다급하게 정국이가 있을 지도 모르는 백화점 로비로 들어갔다. 어디 있지? 높은 힐을 신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의 중심이 뒤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나를 감싸 안아 나를 지탱해준다.

"어? 정국아."

"조심해야지. 오랜만에 보는데 이렇게 만나자 마자 마음을 정국정국하게 만들어도 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나 정국이한테 안겨 있는 건가. 나는 화들짝 놀라며 정국이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정국정국이 대체 뭐야. 모르겠어."

"그러니까."

정국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나에게로 몸을 낮추며 내 눈을 마주봤다.

"이렇게 햄이 마주봤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 나오는 기분."

나는 정국이어를 획득함과 동시에 마음이 정국정국해져 버렸다.

그렇구나. 정국정국하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다만 내가 정국정국하다고 느끼는 게 정국이가 정국정국하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더 깊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더 뜨거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정국이에게는 이제 겨우 팬에서 연습생으로 올라온 친구정도일 테니까.

"잘 전해졌어?"

"응?"

"정국정국하고 햄이햄이한 느낌."

"아직 잘 모르겠어."

아니, 어쩌면 더 모르게 되어 버렸다. 정국이가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이 단지 친한 친구에게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되면 난 분명 실망하고 말 거야. 정국정국하다거나 햄이햄이하다는 말의 정의를 내 마음대로 정하고 싶은 걸지도 몰라. 만약에. 혹시라도 정국이가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싶은 걸지도 몰라.

"좀 더 정확하게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건 조금 망설이게 되네."

"왜?"

"그냥 햄이랑 멀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국이는 뭔가 신중해보였다. 혹시 정국이가 내 마음을 눈치 챈 게 아닐까. 그래서 멀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대체 정국정국하다의 정의는 뭐 길래. 나를 이렇게 심란하게 하는 걸까.

"몰라도 될 것 같아. 정국정국이라는 거."

"나는 햄이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멀어질 것 같다며."

"그럴 위험이 있지만 나는 햄이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으니까."

아주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정국이의 얼굴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정국이의 눈을 마주보는 순간 나는 숨이 턱하니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지금은 나한테 햄이가 너무 소중해."

"..."

"잃는 게 무서워."

어째서 일까. 나와 눈을 맞추는 정국이가 어딘가 모르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잃는 게 무서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지금처럼 애매한 사이로 너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