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ㅣ보고싶지 않은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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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순탄치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익숙한 이름이 환자로 들어왔다.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는데, 왜 하필 내 환자인 걸까.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합리화를 한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 병원 특성상 예약을 하고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에 바쁜 일상 속 내 머릿속에서 그 익숙한 이름이 떠나 있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난 후, 그 이름이 내 환자로 진료를 보는 날이었다.
“김도정 씨 들어오세요.”
고개를 모니터로 향하게 해 환자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볼 수밖에 없었고, 고개를 돌리자 내가 생각하던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 엄마.”
“딸 오랜만에 보네, 의사 가운 잘 어울린다.”
“네가 여기 있다고 해서 여기로 왔어, 대학 병원이라 그런가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 무슨 일로 찾아왔어요? 아파서 온 거죠?”
“응, 그렇지.”
“내 딸을 의사로 보니 좋네,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더니.”
“…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말씀해 주세요.”
“요새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와서 말이야.”
“언제부터요?”
“예약 하기 며칠 전부터 그랬어.”
“폭이 조금 넓은데… 고혈압이나 흡연 같은 거 하세요?”
“고혈압은 있어.”
“… 심근경색증일 수도 있겠네요.”
*심근경색증: 심장 혈관이 혈전, 연축 등의 원인에 의해 갑자기 막혀서 심장 근육이 손상되는 질환
“심전도 검사랑 혈액 검사부터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가능 하실까요?”
“어어, 가능해.”
“… 우선 이거 가지고 심전도실로 가주세요.”
학생 시절, 엄격한 엄마 때문에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만 한 기억이 있어 엄마를 보기 싫었다. 의사가 된 후에도 엄마에게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는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건지.
하필 내 환자로 들어왔다는 게 불쾌했다. 의사라면 무슨 환자든 책임감을 가지고 진료를 봐 살려야 한다. 하지만 그게 연을 끊은 부모님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하지만 의사로서 불쾌한 티를 낼 수 없었다. 아무리 연 끊은 엄마라고 해도 아프다며 나를 찾아왔는데, 머릿속에서 엄마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심각한 내 표정 때문인지 교수 님도 내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다.
“서아, 무슨 일 있어?”
“… 엄마가 내 환자로 왔어요, 교수 님.”
“근데… 수능 끝난 이후로 나는 엄마랑 연 끊었어요, 지긋지긋해서.”
“검사 해봤더니 ST절 상승 심근경색증… 그래서 일단 입원 시켰어요, 시술 시간 잡고.”
*ST절 상승 심근경색증: 관동맥이 100% 막혀서 응급으로 혈관 재개통이 필요한 심근경색증
“… 잘했네, 어쨌든 환자니까 할 일은 해야지.”
“근데 나는 엄마 볼 자신 없어요, 엄마 지시 아래에 기계처럼 움직이던 학생 때가 생각나서.”
“그래도 가족이잖아,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일단 환자로 들어오셨으니 건강하게 보내드려, 그 후로는… 안 봐도 되잖아.”
“계속 찾아오면 어떡해요? 엄마는 내가 의사 되는 걸 원했어요, 근데 내가 엄마 꿈 이뤘잖아요.”
“그때는 네가 하고 싶은 말 다 해, 근데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순간적인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널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이니까, 너도 한 편으로는 걱정될 거야.”
“일단 생각 많이 해보고 결정해, 아직 시간 많으니까.”
“… 네, 감사해요 교수 님.”
“맨날 교수 님께 도움만 받는 것 같네.”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