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okV同人小说] 贾克杜

第四集:名字的印记

 

정국은 한참 동안 손목만 바라봤다. 붉은 선 아래에 희미하게 남은 이름. 태형. 누가 펜으로 쓴 것도 아니고, 상처처럼 새겨진 것도 아닌데 분명히 그렇게 보였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정국은 손목을 문질러 봤고, 물로 씻어도 봤다. 그런데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닦아낼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휴대폰 화면에 태형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정국은 답장을 쓰려다 멈췄다.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지도 않았다. 손목에 남은 태형의 이름을 보는 순간, 두려움보다 먼저 올라온 건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었다.

정국은 결국 짧게 답장을 보냈다.

 

이거 뭐예요.

 

답장은 금방 왔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정국은 화면을 보다가 숨을 멈췄다. 대답이 질문이랑 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마치 정국이 손목의 이름을 본 게 아니라, 오랫동안 묻어둔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장난하지 말고요.

 

장난이면 좋겠어요.

근데 아니에요.

 

 

정국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방 안에 혼자 있는데도, 어딘가에서 방울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다음 날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태형은 이미 와 있었다. 검은 셔츠에 긴 코트를 걸친 채 거울 앞에 서 있었고, 정국이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정국은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감쌌다. 태형의 눈이 그 움직임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아주 잠깐, 표정이 흐려졌다.

 

 

 

 

“많이 아파요?” 태형이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아픈 건 아닌데요.” 정국은 낮게 대답했다. “기분이 이상해요.”

태형은 정국의 손목을 보려다 멈췄다. 어제처럼 먼저 허락을 구하는 얼굴이었다. 정국은 그게 더 이상했다. 태형은 정국이 모르는 걸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정국에게 닿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정국이 먼저 소매를 걷었다. 손목의 이름을 본 태형의 눈이 흔들렸다. “이거 태형 씨가 한 거예요?” “아니요.” “그럼 누가요.” 태형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낮게 말했다. “예전의 정국이가요.” 정국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제가요?”

“네가 잊지 않으려고 남긴 거예요.”

 

 

태형은 손을 뻗어 손목 근처에 닿을 듯 말 듯 멈췄다. 정국은 피하지 않았다. 그걸 본 태형이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이름 자국 옆을 쓸었다. 순간, 정국의 머릿속에 짧은 장면이 스쳤다.

 

 

비 오는 밤이었다. 낡은 처마 아래에서 태형이 정국을 보고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얼굴이었다. 정국은 태형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손목 안쪽에 무언가를 새기듯 손끝으로 몇 번이고 이름을 썼다. “잊어도 돼.” 태형이 말했다. “나는 기억할게.” 꿈속의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도 기억할 거예요. 형 이름은 절대 안 잊을 거야.”

 

 

장면은 거기서 끊겼다. 정국은 숨을 들이켜며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는 태형이 있었다. 태형은 정국의 반응을 보고 모든 걸 알아차린 사람처럼 조용히 손을 거뒀다. “봤죠.” 정국은 이번엔 부정하지 못했다. “우리 진짜… 아는 사이였어요?” 태형은 정국을 바라봤다. 오래 기다렸던 질문을 드디어 들은 사람처럼, 눈빛이 천천히 무너졌다. “응.” “그냥 아는 사이요?”

정국이 묻자 태형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대답처럼 느껴져서, 정국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태형은 아주 천천히 말했다. “네가 나를 좋아했고.” 정국은 숨을 멈췄다. “나도 너를 좋아했어.” 연습실은 분명 밝았고, 사람들도 곧 들어올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정국은 둘만 다른 공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태형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끝이 조금 떨렸다.

 

 

 

 

“근데 왜 나는 기억을 못 해요?” “내가 빌었으니까.” “뭘요.” “네가 나를 잊게 해달라고.” 정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이 안 됐다. 서로 좋아했다면서, 왜 잊게 해달라고 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태형의 얼굴을 보면 쉽게 따질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은 변명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벌을 받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때 연습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태형은 한 걸음 물러났다. 방금까지 정국의 손목을 보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다. 멤버들이 들어오고 연습이 시작됐다. 정국은 몸을 움직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태형의 말뿐이었다. 네가 나를 좋아했고, 나도 너를 좋아했어. 그 말이 박자보다 선명하게 반복됐다.

 

 

연습 중간, 정국은 거울을 통해 태형을 봤다. 태형도 정국을 보고 있었다. 이번엔 정국이 먼저 피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이 멈춘 뒤, 태형이 정국 쪽으로 걸어왔다. “정국 씨.” “네.” “오늘은 여기서 끝나고 바로 들어가요.” “왜요.” 태형은 잠깐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정국에게만 들릴 만큼 낮게 말했다. “오늘 밤에 또 부를 거예요.” “누가요.”

 

 

“작두가.”

 

 

정국은 손목을 감쌌다. 이름 자국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럼 형은요?” 이번에도 정국은 자신이 뭐라고 불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엔 고치지 않았다. 태형도 그걸 알아차린 듯했다. 입가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태형은 정국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갈 거예요.” “작두 위에요?” 태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다.

 

 

정국은 순간적으로 태형의 손목을 잡았다. 태형이 놀란 듯 정국을 봤다. 처음으로 정국이 먼저 붙잡은 거였다. “가지 마요.”

말이 먼저 나왔다. 이유는 몰랐다. 기억도 다 돌아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말만큼은 너무 익숙했다. 예전에도 수없이 했던 말처럼. 태형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정국의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정국아.” 태형이 낮게 불렀다. “이번엔 네가 나를 막아야 해.” 정국은 태형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았다. “어떻게요.” “기억해.”

태형이 말했다. “네가 나를 왜 사랑했는지.”

 

 

그날 밤, 정국은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도망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눈을 감자마자 방울 소리가 들렸다.

 

 

딸랑.

정국은 다시 붉은 방에 서 있었다. 작두는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태형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이 흐릿하지 않았다. 너무 선명해서, 정국은 숨이 막혔다. 태형은 정국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슬픈 얼굴로. “왔네.” 정국은 작두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이번엔 안 늦었어요.” 태형의 눈이 젖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국은 처음으로 기억했다.

 

 

자신이 아주 오래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말을 했었다는 걸.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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