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꿈
pt.9 134340

柳
2021.05.09浏览数 31
민윤기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지 3주가 지나갔다.
난 조금 바쁘게 살았다. 하지도 않던 알바를 했고. 미뤄뒀던 집 정리를 하기도 했다.
공허를 잊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난 더 이상 창고 교실에 가지 않았다. 민윤기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나서 초반에는 몇몇 애들이 찾아왔지만 그 뿐이었고, 지나가다 정국이가 보이면 인사를 짧게 나누는 것 뿐이었다.
알바를 했다. 집 근처의 카페에서 번화가를 조금 지나 한 골목 뒤로 들어와야지 있는 곳.
담쟁이가 자라 덮어버린 흰 벽과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과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아카시아 향이 골목을 휘감고 있었다.
내가 초반에 들어왔을 때에는 정말 한 두명의 단골손님만이 있었는데 이젠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카페가 되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은 항상 치마가 잘 어울리시는 분이었다.
"연호야, 많이 바쁘지?"
"아, 사장님"
"항상 힘내느라 고생이 많아"
"사장님도 늘 바쁘시잖아요"
"어이구 그래도 난 경력자기라도 하지 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 잘하고 내가 다 자랑스럽다."
등을 토닥이며 하는 그 말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제야 좀 어른을 만난 것 같았다.
"저기 간식있으니까 그것도 먹고,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난 크게 기지개를 피고서는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다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네, 뭐 주문하시겠어요?"
"카페 라떼 하나랑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둘 다 따뜻하게 드릴까요?"
"아니요, 아메리카노만 아이스로요"
"네 알겠습니다. 진동벨로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연호야, 너가 아메라카노 해, 내가 라떼 할게."
"아, 네"
난 금세 아메리카노를 만들었고 또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한 오후 5시쯤 되었을 무렵 몇 단골손님밖에 남지 않았고 그제야 사장님과 나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수고했어 연호야."
"에이 뭘요."
"너 덕에 손님들도 많이 오고"
사장님은 이렇게 말하셨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장님이 이 가게에 큰 정을 두고 계셨기에 유명해졌다고 난 생각했다.
사람들이 하도 사진을 찍어대는 탓에 내 얼굴이 팔렸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렇게 신경쓰진 않으니까.
잠시 쉬고 있던 와중에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나는 카운터로 나섰다.
"네 어서오세요"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와서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하나 주세요."
낮은 목소리가 들렸고 난 그 순간 한 익숙한 목소리와 겹쳐들리는 듯 했다.
"민윤기?"
내 말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눈이 마주쳤다. 민윤기였다. 왠지 더 피곤해보이는 모습을 하곤 내 앞에 서 있었다.
"너가 왜 여기.."
"내가 오히려 묻고 싶은...."
그 어색한 분위기를 가로지르는 사장님의 목소리에 난 좀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어라 윤기 왔어? 오랜만이다 야"
"아 사장님 안녕하셨어요?"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자리에 앉아 있어, 항상 먹던걸로 가져다줄게."
"네"
"연호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하나 추가하고 물은 일반 아메리카노보다 살짝 적게. 알았지?"
"아..네!"
잠시 넋이 나갔다가 훅 돌아오는 듯 했다.
"새로 알바를 들이셨나 보네요."
"어, 연호라고, 착하고 일도 잘해 좋은 친구야."
"연호요..?"
아마 민윤기는 내 이름에 의문점을 갖고 있을것이다.
내가 민윤기에게 알려준 이름은 남호연이었으니 말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나왔습니다."
내 말에 민윤기는 커피를 받으러 나왔다.
"오랜만이네."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가 평소 민윤기를 대했던 것처럼 답했다.
"어 오랜만이네."
"어라 둘이 알아?"
사장님이 다가와 물었다
"학교 친구에요."
"아아 그랬구나, 그럼 오늘은 일찍 퇴근해!"
"..예?"
"친구도 만난 김에 ,하루 잘 보내야지 놀다가 좀 쉬어."
사장님..약간 우리 사이를 오해하신 듯 싶었다. 싱글벙글 웃는 그 모습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일찍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그래 저녁 잘 챙겨먹고! 알았지?"
"예..예"
마지막 말은 대충 건성으로 대답하고 앞치마를 정리 한 뒤 밖으로 나섰다.
이 앞에는 민윤기가 서 있었다.
카페 밖을 나서니 해 질 녘의 맑은 하늘이 파랗게 빛났다. 공기를 가르는 바람에 풍경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살짝 돌리니 [134340]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않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사장님의 가게가.
이름 없는 행성이며 태양의 주위를 돌던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 왜소행성 134340. 명왕성을 의미했다.
"잘 지냈어?"
"어 그럭저럭, 바빴어서. 너는?"
"나도. 매번 작업실에만 있어서."
"아아,"
나는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근데 왜 여기서 일하고 있어?"
"가깝기도 했고, 원래 일하고 싶기도 했고."
뭐 후자는 변명에 가깝지만.
"야 3주 안봤다고 어색해하냐"
나는 머쓱대는 민윤기의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아니..뭐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기계처럼 어색해하는 민윤기가 웃겼기에 내 어색함은 금방 풀렸다
뭐 재밌는 것을 본 마냥 웃는 날 보며 민윤기는 왜 웃냐며 물었다.
"아니 너가ㅋ 너무 웃겨서"
"..도대체"
해가 어둑어둑 져 가고 있었다.
"작업실 들렸다 갈래?"
묻는 질문에 난 자연스럽게 답했다.
"그러지 뭐, 남는게 시간인데."
우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작업실을 향하며 거리를 거닐었다.
왠지 저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송주를 떠나는 기차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려는 가족들의 목소리와 밤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터벅터벅 걸었다. 도착한 작업실은 전보다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 좀 했나 보네."
"아, 짐들이 너무 많으니까 발 디딜 틈이 없더라고"
민윤기는 자연스레 작업실 의자에 앉더니 피아노를 켜놓고서는 하나 둘 코드를 잡기 시작했다.
난 뒤 소파에 앉아 멍때리며 민윤기가 적어내려가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정말 민윤기는 음악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째깍째깍거리는 시계 초침과 함께 시간은 흘러갔다. 내가 다시 시계를 쳐다보았을 때는 9시 반에 가까웠던 시간이었다.
민윤기는 하던 작업을 멈추더니 짐을 정리해놓고서는 말했다.
"이제 슬 가야겠다."
"아, 어."
민윤기는 시간을 보더니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왜 집 가는거 아니었어?"
"..알잖아, 난 내 집 별로 안좋아해"
민윤기는 내 질문에 쓰게 대답했다. 아 맞다 그랬지.
"언젠가, 너 이야기도 해줘"
"어?"
내 질문에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는 듯 다시 묻는 그 목소리
"전에 다른 애들 이야기밖에 안했잖아. 시간 나면, 언젠가 너 이야기도 해달라고."
민윤기는 피식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잠깐의 만남이었고 앞으로 민윤기를 언제 만날지 서로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다시 만날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넓지 않기에
우린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나는 해가 지는 쪽으로 민윤기는 해가 뜨는 쪽으로
명왕성이 밝게 빛나는 듯 했다.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민윤기가 잠시 가다가 날 불렀다.
"남호연"
"어 왜?"
"근데 사장님이 너 왜 연호라고 불러?"
"나도 몰라, 매번 헷갈려 하시던데"
"아아ㅋㅋ"
민윤기는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내 차가운 심장은 영하 248도 니가 날 지운 그날 멈췄어.
ps.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이제야 9화를 올리네요
항상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