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세 번째 이야기
고깃 씀.
“또 왔네.”
유성은 정국을 반갑게 맞이해 주며 웃는다. 이젠 웃는 모습이 완전히 자연스러워졌다. 웃는 모습만 자연스러워진 게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도 자연스러워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목소리가 뒤섞여 불안정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두 세 개 정도의 목소리만이 섞여 들린다. 전에보다는 덜 소름이 끼친다. 목소리의 수가 왜 더 줄어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국은 왠지 뿌듯하다.
정국은 유성을 지긋이 바라보다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쓰다듬는다.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라 잠시 멈칫하며 유성이 혹여 싫어할까 봐 눈치를 살핀다. 그러나 유성은 놀라기는 커녕 기분이 좋다며 정국에게 더 쓰다듬어 달라 한다. 그리곤 정국의 어깨에 기댄다. 정국은 쿵쿵 뛰는 심장을 최대한 숨기려 애써 본다. 전혀 숨겨지지 않자 터질 듯한 심장을 그냥 냅두며 유성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유성은 정국의 손길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일도 쓰다듬어 줄래?”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내일도 쓰다듬어 달라는 그녀의 말속에는 내일도 꼭 오라는 뜻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도 꼭 오라고. 내일도 보고 싶을 거라고.
-
그렇게 시간이 흘러 토요일이 다가왔다.
“귀찮은데…”
정국은 귀찮다며 중얼거리면서도 분주히 움직이며 준비했다. 요즘 유성과 만나느라고 계속 집에 있었었는데,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조금은 들떴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시원한 향을 내는 향수를 뿌렸다. 깔끔하게 보이고 싶었던 걸까 매번 달달한 향을 골랐던 그는 웬일로 시원한 향을 골랐다. 준비 끝. 혼자 중얼거리며 신발장으로 향했다. 신발장 바로 옆에 있는 거울을 통해 마지막 점검을 한 뒤에 집밖을 나섰다.
-
“어서와, 정국아.”
서경이 정국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안녕하세요, 누나. 정국은 예의를 차리며 인사한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본다.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난다. 전에는 정말 감성적이었는데 지금은 심플하기도 하고 어딘가 쓸쓸하기도 한 분위기가 난다. 사장님이 바뀌시면서 카페 분위기도 바뀌었나 보다. 전에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은데… 정국은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구태여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어서와요. 그쪽이 정국 씨군요.”
어디선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때는 숭배했었던, 한때는 접할 수 없는 존재라 여겼었던…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 존재.
바로 신이다.
“당신은……”
정국은 신을 보며 놀란다. 대체 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신은 정국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혹시 저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나요? 혹여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지만 도저히 연기라고 할 수 없는 진심이 보인다. 정국은 생각한다. 그냥 신이랑 닮은 사람인 건가…?
“죄송해요. 제가 아는 사람이랑 너무 닮으셔서 착각했나 봐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저는 이 카페의 사장인 김석진이라고 해요.”
“아, 저는 전정국입니다.”
둘은 가볍게 악수를 한다.
“얘는 오늘 알바 보러 온 애 아니에요, 사장님.”
혹여 사장님이 오해할까 봐 옆에서 태형이 말한다. 석진 사장님은 그럼 알지라며 웃어 보인다.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 좀 따라올래요?”
석진 사장님이 정국을 보며 말한다. 무슨 일이지. 정국은 알겠다 말하며 석진 사장님을 따라간다.
카페 옆 골목길.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이다. 정국은 무슨 일이냐며 물어본다. 그러자 석진 사장님은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다른 듯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뭔가 순수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 정도로 그의 미소가 소름이 끼친다.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니, 좀 감동인데.”
신이구나. 그의 말투, 표정, 분위기를 보고서 정국은 금방 눈치챘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저 협박하려구요?”
“그 정도까지는 안 해~ 그저 널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어서 내려온 거야.”
정국은 인상을 찌푸린다. 유성을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신이 무슨 말을 하든 전부 불쾌하기만 하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또 보자, 정국아.”
“다신 안 올 거예요.”
석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넌 여기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될 거야.”
“…”
“그게 너의 필연적 운명이거든.”
•
•
•
다음 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