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뭐, 나쁘지 않았어.”
“...”
“... 나 잘게. 내일 일어나서 준우 어린이집은 내가 보내고 올거야. 넌 내일 촬영 있으면 나가고 없으면 베란다에 빨래 좀 널어줘.”
“알겠어.”
여주는 모를 것이다. 꺼진 불 아래에 누워있는 윤기의 표정이 얼마나 슬퍼보였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애써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올리고 여주를 외면하려고 벽쪽을 향해 몸을 트는 윤기가 어찌 그리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고요하고 적망하던 좁은 방에서는 곧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여주는 아무 말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주는 평소 아무 신경 쓰지 않았던 침대 아래에 놓여진 윤기와의 커플 슬리퍼가 오늘따라 눈에 들어왔고,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뿌렸다.
슬리퍼를 기분 나쁜듯이 소리나게 신었고 준우의 방에 갔다.
“준우, 일어나.”
“...”
“준우야 일어나야지.”
처음엔 왠지 꿀꿀한 기분에 짜증내는 투로 말했지만 아차싶어 부드럽게 말을하자 병아리 같이 도톰한 입술이 움찔 거렸다.
여주는 그런 준우를 보고 볼따구에 입을 맞추고 간지럼을 피우자 준우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은 침대에서 등을 땠다.
“민준우, 아침먹자.”
아, 윤기가 지금 일어난 것 같다. 준우를 안고 거실로 향하자 고소한 국 냄새가 퍼졌고 준우는 윤기의 바짓자락을 잡고 물었다.
“압빠.”
“응.”
“이게 뭐야?”
“된장국.”
“된장이... 흐미... 냄새 별로야!”
여주는 뒤에서 웃다가 윤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고 금세 표정을 굳혔다. 윤기는 준우를 보며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은 뒤 말했다.
“민준우 그럼 아침 없어.”
“안니야. 울 압빠 최고.”
아침을 먹고 여주는 준우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갔다. 준우는 노란색 모자와 옷을 입고 어린이집을 뽈뽈 뛰어다녔다. 여주는 투명하게 웃으며 그런 준우를 유리창 너머로 계속 찍었다. 그러자 준우는 그런 여주를 보고 유리창을 향해 크게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
그 날 여주는 준우의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했다.
-
설거지까지 마친 윤기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밖에는 한 여자가 서있었고, 윤기는 예상했다는 듯이 표정을 굳혀 물었다.
“... 왜 온건데요.”
“알잖아요. 내가 왜 왔는지.”
“나 이렇게 여주 놓치기 싫어요.”
“나도 태형이 놓치기 싫어요. 그리고 우린 이미 그이들 놓쳤어요.”
“... 용건이 뭔데요.”
“나랑 연애해요.”
“... 지금 장난하는겁니까?”
“뭐, 사적인 감정이 담긴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요. 그냥 일종의... 질투유발 작전?”
“그런 유치한 어린 애들 장난을 하자고요?”
“못할 건 없죠.”
“배연우씨.”
“안 한다면 여주씨 그냥 저희 아버지께 말씀 드리죠 뭐.”
“...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여태껏과는 다르게 맑은 미소가 아닌 알 수 없는 의미들이 가득 담긴 듯 한 웃음을 지으며 윤기와 말을 이어나간 연우였고, 그런 연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윤기다.
하지만 연우의 회사 영향력 정도는 알아 자신의 와이프를 대형 회사 회장 외동아들 내연녀로 알리긴 싫어 어쩔 수 없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