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연 단편 모음

낙서로 적어낸 고백

칠판에 부딪혀 넓고 텅 빈 강의실에 웅웅 울려 퍼지는 교수님의 목소리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온 캠퍼스가 나른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듯한, 딱 그런 따스한 오후였다. 강의실 앞쪽 화면에는 역사적인 날짜와 복잡한 텍스트로 가득한 슬라이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찬연 오빠랑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우리는 강의실 맨 뒷줄의 나무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앞자리 학생들의 높은 어깨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찬연 오빠는 책상 위에 빈 노트를 펴놓고 열심히 필기하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몇 초마다 한 번씩 나를 향해 엉성하게 그린 작은 캐리커처나 장난스러운 낙서를 슬쩍 밀어 보냈다.나는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만해," 내가 속삭였다. 억누른 웃음 때문에 어깨가 잘게 떨렸다. 나는 오빠의 팔을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우리 이러다 쫓겨나겠어."

오빠는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오빠의 가슴 속에서 낮고 조용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짙은 눈꼬리가 예쁘게 접히며, 그 잘생긴 얼굴 가득 특유의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오빠는 내 어깨에 자기 어깨를 기대며 내 귓가에 정말 말도 안 되게 웃긴 장난을 속삭였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둘만의 비밀스러운 장난을 나누는 그 강렬한 즐거움에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우리는 남은 40분의 강의 시간 동안 완전히 둘만의 작은 세상에 갇힌 채, 눈빛과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만으로 대화를 나눴다.

마침내 수업 종료 벨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 답답한 건물 밖으로 거의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신선한 오후 공기가 간절했다. 캠퍼스 뜰은 따스한 황금빛 햇살로 가득했고, 잔디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거대하고 오래된 떡갈나무 잎사귀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였다.

"안에서 내 뇌가 완전히 녹아내린 것 같아." 찬연 오빠는 길쭉한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으며 웃었다. 우리는 번잡한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그늘진 언덕으로 걸어갔다.

"오빠가 자초한 거잖아. 나 진짜 웃음 참다가 사레들릴 뻔했다고." 내가 투정 부리듯 말하며 신발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차갑고 부드러운 잔디 위로 주저앉았다.

찬연 오빠는 낮게 웃으며 내 바로 옆에 앉아, 거친 나무 기둥에 등을 편하게 기대었다. 그리고 배낭에서 작은 스케치북과 목탄 연필을 꺼냈다. 예술가답게 집중력이 좋은 오빠는 스케치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멀리 보이는 캠퍼스 건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능숙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종이 위를 사각사각 스치는 고요한 연필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 그리고 우리 머리 위에서 부드럽게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와 어우러졌다. 차분하고 집중한 오빠의 옆모습—진지하게 다문 턱선과 편안하게 오르내리는 숨결—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편안하고도 벅차오르는 애정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나는 잔디 위에서 몸을 움직여 오빠의 청자켓이 주는 온기가 내 팔에 닿을 때까지 바짝 다가앉았다. 오빠는 스케치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멀리 보이는 캠퍼스의 벽돌 건물에 음영을 넣으며 능숙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이어갔다. 하지만 내 존재가 익숙하다는 듯, 내가 자신의 그림 근처에 맴돌 수 있도록 미세하게 몸을 움직여 자리를 내어주며 입꼬리에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띠었다.

만족스러운 숨을 나지막이 내쉬며 나는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옆에서 오빠의 넓은 품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내 온 무게를 기댔고, 오빠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든든한 어깨에 뺨을 착 밀착시켰다.

"편해?" 찬연 오빠가 속삭이듯 물었다. 언덕의 고요한 평화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낮고 다정한 목소리였고, 연필은 규칙적인 리듬을 잃지 않은 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완벽해." 나도 속삭이듯 대답했다. 살랑이는 바람의 최면 같은 리듬과, 그림을 그리는 오빠의 어깨가 일정하게 들썩이는 움직임에 벌써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오빠는 스케치를 이어갔지만 그 손길은 놀라울 정도로 신중하고 다정해졌다. 내가 미끄러지지 않고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곧게 유지하며 온몸으로 지탱해 주었고, 종이 위에 목탄 연필로 캠퍼스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동안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인간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오빠의 품에 아늑하게 안겨 은은하고 깨끗한 세제 냄새와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맡고 있자니, 하루 동안 쌓였던 잔잔한 스트레스가 완전히 눈 녹듯 사라졌다.

스르륵 눈꺼풀이 감겼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오빠의 어깨에 기대어 깊고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다. 내 숨소리가 한결 차분해진 것을 느꼈는지 찬연 오빠는 다정하게 손을 멈추고 잔디 위에 연필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남은 한쪽 팔로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으며, 자신이 지켜주는 품 안으로 나를 아주 조금 더 끌어당겼다. 오빠는 스케치북을 덮어둔 채, 해가 지평선 너머로 저물 때까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를 가만히 지켜보며 그 시간을 채워갔다.

해가 서서히 내려앉으면서 황금빛 오후 햇살의 각도가 바뀌었고, 잔디밭 위로 따스하고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파르르 눈꺼풀이 열렸고, 머리 위 떡갈나무 나뭇잎들의 평화로운 사각거림이 나를 서서히 현실로 깨웠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내 뺨 아래로 닿아오는 찬연 오빠의 단단하고 한결같은 어깨의 온기,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가슴의 규칙적인 오르내림이었다.

나는 오빠의 곁에 온전히 안긴 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깼어?" 고요한 오후 공기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들려오는 찬연 오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가슴을 타고 고스란히 울렸다. 나는 눈을 비비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오빠는 스케치북을 잔디 위에 내려놓은 상태였지만, 한쪽 팔은 여전히 내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오빠는 한쪽 팔로 여전히 내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은 채 나를 가까이 두고 있었다.
"응. 나 얼마나 잔 거야?"

찬연 오빠는 낮게 웅얼거리며 웃음을 터뜨렸고, 짙은 눈꼬리가 다시 한번 예쁘게 접혔다. 오빠는 남은 한 손을 뻗어 길쭉한 손가락으로 내 귀 뒤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넘겨주었다.

"한 시간 넘게 잤어. 깨우기 미안해서 그냥 이러고 있었지." 내 심장을 매번 미친 듯이 뛰게 만드는, 그 달콤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오빠가 대답했다.

"어깨 안 아파? 나 깨우라니까 그러네." 나는 오빠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입술을 내밀었다. 눈앞에 비치는 진짜 햇살 속에서 오빠는 말문이 막힐 정도로 완벽해 보였고, 순간 문자 그대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도 안 아파," 찬연 오빠가 속삭였다. 완전한 애정이 담긴 부드러운 눈빛을 한 채, 입꼬리에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위험할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빠는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사실 매일이라도 이 어깨 빌려줄 수 있으니까, 언제든 원할 때 기대."

오빠의 능청스럽고 다정한 말에 내 얼굴은 순식간에 터질 듯이 붉어졌고, 나는 수줍음을 감추려 황급히 잔디밭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나는 수줍음을 감추려 황급히 잔디밭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찬연 오빠는 내 반응이 엄청 귀엽다는 듯 나지막이 웃으며 잔디밭에서 스케치북을 집어 들었다.
"자, 다 그렸어. 한번 봐봐."

나는 오빠의 팔 너머로 고개를 숙여 펼쳐진 페이지를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저 멀리 보이는 캠퍼스 건물이나 넓게 펼쳐진 나무들이 예쁘게 스케치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숨을 턱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질감이 느껴지는 종이 위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진 목탄화 속 내 모습이 있었다. 오빠는 내가 완전히 잠든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빠의 어깨에 안전하게 기대어 있는 내 머리, 나뭇잎 그늘 아래에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풀어진 나의 표정까지. 속눈썹의 부드러운 곡선부터 오빠의 자켓 자락을 살포시 쥐고 있는 내 손의 다정한 모양새까지—모든 디테일 하나하나가 엄청나고 섬세한 애정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거... 나야?" 내가 속삭였다. 심장이 갈비뼈를 마구 두드리는 것처럼 격하게 뛰었다.

"응," 찬연 오빠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빠는 내 어깨에 있던 손을 매끄럽게 쓸어내려 잔디밭 위에서 내 손을 감싸 쥐었고, 긴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항상 내 앞에 있거든. 그러니까 다른 걸 그릴 이유가 없지."

오빠는 고개를 돌렸고, 두 눈이 완벽한 초승달 모양으로 완전히 사라질 만큼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오직 따스한 바람만이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을 뿐, 오빠가 말하는 그 달콤하고도 편안한 리듬은 우리를 우리만의 아름다운 캠퍼스 현실 속에 가두어 버렸다.

숨이 멎을 듯 정교한 목탄화 속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 위 오래된 떡갈나무 나뭇잎들의 부드러운 사각거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게 느껴졌다. 찬연 오빠의 길쭉한 손가락은 차가운 잔디 위에서 내 손과 단단히 맞물려 있었고, 오빠의 손길은 따스하면서도 온전히 안도감을 주었다.

"진짜 너무 예쁘다..." 나는 목이 메어 속삭이며 스케치북에서 시선을 옮겨 오빠의 크고 짙은 눈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오빠. 나를 이렇게 예쁘게 그려줘서."

찬연 오빠의 두 뺨이 은은하고 사랑스러운 핑크빛으로 물들었고, 그 잘생긴 얼굴 가득 찬란한 미소가 번졌다. 오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그 눈빛에 담긴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애정은 내 폐부의 숨을 완전히 멎게 만들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찬연 오빠가 속삭였다. 오빠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가라앉으며 내 심장을 마구 요동치게 만들었다.

오빠는 내 손을 부드럽게 꽉 쥐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등 위에 편안한 원을 그리듯 쓸어내렸다. "왜냐하면 난 종이 위에 내가 보는 걸 있는 그대로 담아낼 뿐이거든.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내가 느끼는 모든 행복이 이 그림에 전부 담겨 있어."

심장이 갈비뼈를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고, 생긋 웃는 오빠의 달콤한 어조에 담긴 순수한 진심에 내 얼굴은 새빨갛게 타올랐다. 나는 떨리는 숨을 깊이 몰아쉬며, 이제는 편안하고 장난스러운 방어벽 뒤로 숨는 걸 그만둘 때라고 마음먹었다.

"사실, 나도 오빠랑 매일매일 이렇게 함께하고 싶어." 오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가 나지막이 고백했다. "그냥 귀엽고 편한 동생 말고... 오빠한테 가장 특별한 여자가 되고 싶어."

찬연 오빠의 두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이 멎은 충격으로 커졌다. 찰나의 순간 동안 오빠는 방금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오빠의 가슴 속에서 아름답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안도감이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미처 다른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찬연 오빠는 몸을 앞으로 숙였고, 남은 한 손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나를 자신의 공간으로 이끌었다.

우리의 입술이 부드럽고 가슴 설레게 맞닿았다.

넓게 펼쳐진 떡갈나무 그늘 아래에서 우리의 입술이 부드럽고 가슴 설레게 맞닿았다. 우리의 첫 입술 맞춤이었다. 달콤하고도 온전한 여운이 남는 입맞춤이었으며, 우리가 몇 달 동안 가슴 속에 품어왔던 소리 없는 맹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따스한 캠퍼스의 바람이 우리의 어깨 위를 스쳐 지나갔고, 우리를 우리만의 완벽하고 황금빛 가득한 현실 속에 가두어 버렸다.

오빠가 마침내 입술을 뗐을 때, 찬연 오빠의 이마가 찰나의 순간 동안 내 이마에 부드럽게 맞닿았다. 오빠 특유의 나른한 눈웃음은 두 눈이 완벽한 초승달 모양으로 완전히 사라질 만큼 활짝 번져 있었고, 얼굴은 여전히 행복하고 찬란한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 나한테 완전히 반했구나, 그치?" 찬연 오빠가 낮고 깊은 목소리에 장난 가득한 승리감과 기쁨을 담아 나지막이 놀려댔다. 오빠는 내 손을 한 번 꽉 쥐어 짜듯 붙잡았다가, 이내 손을 놓고 미술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약속을 지켰으니까, 이제 네 남은 인생은 내가 책임질게."

"와, 형. 맨 뒤에서 그림 그리는 척하더니 결국 선수 치신 거네?"

그때 언덕 아래에서 나른한 오후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날카롭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둘 다 깜짝 놀라 캠퍼스 인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현진이가 가죽 메신저 백을 어깨에 느슨하게 걸친 채 서 있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미대생 비주얼 그 자체였고, 입꼬리에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묘한 승부욕이 느껴지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현진이는 잔디 언덕을 걸어 올라와 우리가 앉아 있는 나무 그늘 가장자리에 멈춰 서며 가슴 위로 팔짱을 꼈다.

"겨우 오후 강의 한 번 같이 안 들었다고 그새 내 최애를 홀라당 가로채 가 버리냐?" 현진이는 날카롭고 아름다운 눈매를 내게로 똑바로 향하며 능청스럽게 울상을 지었다. "자기야, 원래는 내가 제일 좋다고 했잖아. 어떻게 저 여우 같은 복학생 오빠한테 홀라당 갈 수가 있어? 나 진짜 상처받았어."

찬연 오빠는 웅장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 터질 듯한 빨간 얼굴을 현진이가 보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내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긴 손가락을 단단히 얽어매더니, 우리가 잡은 손을 현진이가 보란 듯이 위로 들어 올렸다.

"게임 끝났다, 박현진." 찬연 오빠는 듬직하고도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기분 좋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얘 오늘 공식적으로 자기 최애 골랐어. 네가 진 거야."

현진이는 세상 다 잃은 듯 드라마틱한 한숨을 깊게 내쉬었지만, 이내 눈 속의 장난기 어린 승부욕을 거두고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흔들었다.

현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오늘은 형이 이겼어. 하지만 이번 학기 아직 안 끝났거든? 형이 저녁 사주고 나면 내가 데리고 나가서 아이스크림 사줄 거야."

지쳐가는 햇살 아래에서 장난스러운 라이벌 구도가 순수한 즐거움으로 녹아내리며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캠퍼스에서 가장 잘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가득 찬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최애 전쟁이 마침내 완벽하고 로맨틱한 결말을 맺은 것이다.

우리 셋은 나란히 대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갔고, 머리 위로 펼쳐진 저녁 하늘은 깊고 아름다운 보랏빛 땅거미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찬연 오빠는 긴 손가락으로 내 손을 단단히 움켜쥔 채, 반대편에서 현진이가 유유히 걸어가고 있음에도 단단하고 따스한 손길을 풀지 않으며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현진이는 두 손을 자켓 주머니 깊숙이 찌른 채 콘크리트 길 위의 작은 돌멩이를 툭툭 차며 걸었다. 오빠와 내가 꽉 맞잡은 손을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며, 현진이는 작게 드라마틱한 콧방귀를 뀌었다.

"형도 참 너무하네," 현진이가 투덜거렸지만, 볼에 쏙 들어간 보조개 미소가 장난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얘가 나보고 귀엽다고 먼저 입덕해 놓고선 결국 형한테 가다니, 솔직히 아직도 안 믿겨. 내 비주얼이 어디 봐서 밀리냐고?"

찬연 오빠는 눈이 완벽한 초승달 모양이 되도록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자신의 넓은 어깨 쪽으로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비주얼의 문제가 아니야, 현진아." 찬연 오빠는 특유의 달콤하고 정중한 어조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고개를 살짝 숙여 내 붉어진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더니, 길 건너편에 선 동생을 향해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진짜 진심의 문제지. 왜냐하면 난 이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기로 마음먹었거든."

"와, 멘트 던지는 것 좀 봐. 역시 복학생 짬바는 도저히 못 이기겠네," 현진이는 완전히 완패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날카롭고 아름다운 눈매를 내게로 똑바로 향하며, 한결 따스하고 다정한 음색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자기야, 형이 조금이라도 차갑게 굴거나 슬프게 만들면 바로 나한테 말해. 내 품은 언제나 너한테 활짝 열려 있으니까."

"야, 박현진. 선 넘지 마라," 찬연 오빠가 경고하듯 낮게 웃었지만, 잡은 내 손을 보호하듯 꽉 쥐는 오빠의 두 뺨 역시 온전한 행복감으로 찬란한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캠퍼스 정문을 넘어, 대학가의 활기차고 따스한 조명이 가득한 거리로 발을 디뎠다. 늘어선 식당들 사이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냄새와 뜨끈하고 깊은 국물 요리의 아늑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와, 우리 세 사람의 배꼽시계가 동시에 요란하게 울려댔다.

현진이는 길모퉁이에 멈춰 서더니, 길 건너편 활기찬 네온사인 조명이 켜진 떡볶이와 치킨을 같이 파는 가게를 싱긋 웃으며 가리켰다. "형이 쏜다고 했으니까, 오늘 무조건 제일 비싼 세트 메뉴로 다 시키는 거다. 치즈볼도 무조건 추가해 달라고 하자."

"너희 먹고 싶은 거 당연히 다 사줘야지," 찬연 오빠가 내 가슴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는 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깊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했다. 오빠는 가로등의 은은한 호박색 불빛 아래에 멈춰 서서 내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러고는 비어 있는 한쪽 손을 가만히 뻗어 내 배낭 끈을 조심스럽게 고쳐 매주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는 이미 나를 온전히 사로잡아 버린, 오빠 특유의 배려와 보호 본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오빠는 저녁 조명 아래에서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 시그니처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마음껏 골라," 찬연 오빠는 내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네 모든 저녁은 내가 책임질 거니까."

나는 새어 나오려는 커다란 미소를 참으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이 행복해졌다. 매력적이고 장난기 넘치는 박현진,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아껴주는 다정한 이찬연 사이에 폭 안겨 있으니 캠퍼스의 차가운 겨울 한기마저 완전히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챕터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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