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篇小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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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篇


그에겐 언제나 산뜻한 풋사과 향이 났다.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자나깨나입조심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열여덟의 나, 수업을 들으며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봄바람을 느낀다. 그러곤 수업에 집중하는 척 턱을 괴고 칠판이 아닌 매번 향했던 곳으로 시선을 둔다. 우리 반 반장이자 선생님들께 모범생이라며 칭찬 받는 박지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말을 걸어 본 적이 없으며 마음속으로 몰래 좋아하는 중이다.


 이렇게 수업시간에라도 그를 내 눈에 담아 본다.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속눈썹. 그의 바로 옆자리가 아니라 참 다행인 것 같다. 바로 옆자리였으면 이렇게 바라보지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부끄러워 어버버거리다 사이만 멀어졌을 것이다.


 멀리 있음에도 은은하게 풍겨오는 그의 풋사과 향. 박지민은 항상 풋사과 향 향수만을 고집했다. 애들이 향수 얘기를 꺼낼 때 라벤더도 좋은데, 한 번 써 봐, 해도 박지민은 고개를 저으며 풋사과 향이 좋다고 대답했다. 옆에 스치듯 지나가기만 해도 풍겨오는 그의 풋사과 향. 봄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그의 풋사과 향. 오늘은 왠지 더 진하게 풍겨온다.


 “오늘 며칠이지?”


 공포의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며칠이냐는 질문에 다들 혹여 자신의 번호와 관련된 숫자가 들어있을지 몰라 달력을 확인한다. 여기서 저의 번호와 상관없는 날짜를 확인한 애들은 자신 있게 오늘은 며칠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저의 번호와 날짜가 조금이라도 관계 있는 애들은 선생님께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아주 조그맣게 탄식을 내뱉는다. 그러곤 선생님이 본인을 부르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시선을 피하며 딴짓을 해 본다. 여기서 나는 날짜와 내 번호가 관계 없는 쪽에 속하기에 시선을 피하는 애들을 보며 웃는다.


 “9번. 박지민.”


 박지민. 그의 이름이 선생님의 입에 담기자마자 나는 웃는 걸 멈추고는 그를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불려진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고 네, 하며 일어난다. 발표할 사람 없냐는 질문에 먼저 나서는 박지민. 랜덤으로 자신의 번호가 불리어도 불평 하나 늘어놓지 않고 탄식조차 없는 박지민. 그는 시를 읊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예쁘고 고운 목소리로 시를 읊는다.


 박지민. 그가 시를 읊을 때마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파동 속에 풋사과 향이 진하게 묻어있다. 그가 읊고 있는 시 또한 풋사과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제목은 풋사과. 그러나 내용에는 풋사과가 아닌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치 지금의 내 상황처럼. 박지민은 모르는 나만의 상황처럼. 시 속에 나오는 그녀도 짝사랑을 앓고 있다. 박지민, 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쁜 미소를 머금고는 읊고 있다. 그 모습이 야속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 낭송이 끝나자 애들은 모두 오, 거리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나는 감탄사를 연발할 틈도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쿵, 쿵, 쿵. 애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덕에 내 심장 소리는 파묻혀 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참, 지민아.”


 자리에 앉으려는 그를 선생님께서 불러 세우신다. 그는 선생님이 왜 그러시나, 하는 표정을 하고서 그대로 우뚝 선다. 선생님께서는 아, 이 말해도 되나, 하며 그의 눈치를 보신다. 그는 잠깐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하다 이내 선생님의 눈짓에 바로 알아차리며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그러곤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텐데요, 라고 덧붙인다. 그 말에 선생님은 내게는 아주 절망적인 말씀을 모두에게 하신다.


 “얘들아, 지민이가 전학을 가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