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篇小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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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금씩 천천히.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LOYA-S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이튿날 아침, 통성명보다 고백을 더 먼저 받아버린 시연의 얼굴은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너무나도 무겁고 어두워 보였다. 어제 전학생에게 대뜸 고백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전학생한테 갑자기 고백을 받았다고 해서 얼굴이 저렇게나 어두울 리도 없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상처가 메마른 입술에 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는, 말랑 고양이라는 소문이 나 있는 그는 시연의 뒷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워 달려갔다. 그러나 왠지 힘 없이 축 쳐져있는 시연의 뒷모습에 그는 빠르게 달려가다 이내 속도를 죽였다.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내뿜는 시연에게 차마 다가갈 수가 없었던 그는 시연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드려 볼까 하다가 괜히 허공만 휘젓고는 제 손을 내렸다.


  “…무슨 일 있나?”


  그는 이번에도 저번처럼, 냅다 고백을 박아버렸던 저번처럼 시연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 - -


  그는 수업시간 내내 시연에 대한 생각들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칠판을 향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민윤기, 하며 완강하게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그는, 아니, 윤기는 당황스러워 하며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윤기를 보고 선생님께서는 한숨을 푹 내쉬셨고 반 아이들은 그런 윤기를 보며 하하, 웃어댔다.


  윤기는 선생님께 죄송하다 말하며 내가 왜 이러나, 생각했다. 아무리 그 누나가 좋다고 해도 수업시간에 누나 생각만 하다니, 내가 어지간히도 그 누나를 좋아하나 보구나, 라고 윤기는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볼을 발그레 붉혔다.


- - -


  수업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항상 점심 밥을 잘 챙겨 먹었던 윤기는 오늘따라 유난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입맛이 돌지 않았던 것이 맞는 것 같다. 윤기는 입맛이 없어 급식실로 가는 애들을 보며 그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급식실로 향하던 애들 중 몇몇은 윤기에게 다가와 밥 안 먹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들은 전학 오자마자 인기도 많고 잘생긴 윤기와 같이 먹고 싶어서, 같이 있으면 자기도 명성이 높아질까 봐, 그런 목적을 가지고 다가온 거였다. 윤기는 그런 것들을 많이 겪어 봤어서 단칼에 거절하며 그들을 제치고 복도로 나왔다.


  다들 급식실로 내려간 탓에 복도는 고요했다. 윤기는 고요하고 쭉 펴진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윤기 자신조차 제 발짝이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다. 그저 정처 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앞으로 쭉 뻗은 복도를 거닐다 교실에 남아있는 몇몇의 학생들이 윤기의 시야로 조금씩 들어왔다. 윤기 말고 밥을 먹지 않은 애들이 남아있던 것이었다. 윤기는 그들에게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오직 누나, 누나, 그 생각뿐이었다.


  “……어?”


  윤기의 발짝이 멈춘 곳은 2학년 교실. 복도 쪽 창가 너머로 윤기가 그토록이나 생각하고 있었던 그 누나, 이시연이 혼자 앉아 있었다. 윤기는 조심스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시연이 화들짝 놀라며 동그래진 눈으로 윤기를 쳐다봤다. 저번에 자신에게 대뜸 고백했던 말랑 고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시연은 안심했다.


  “2학년 교실에는 웬일이야?”


  “아… 그게…… 그러게요. 제가 여길 왜 왔을까요.”


  허 참. 시연은 윤기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윤기는 시연의 앞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시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시연의 상처가 나 있는 메마른 입술을 응시했다. 조금만 입을 벌리면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나올 것만 같았고 상처 탓에 그곳엔 피가 굳어 있었다. 윤기는 그 상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남의 사정을 괜히 먼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먼저 물어봤다가 기분만 상하게 할 것 같아 그저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흠, 누나가 보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여기로 옮겨졌나 봐요.”


  “…뭐래.”


  시연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윤기가 그녀를 붙잡듯 다급하게 말했다.


  “저번에 대뜸 고백해서 죄송했어요, 누나. 제가 첫눈에 반한 건 처음이라… 참, 제 이름은 민윤기예요. 누나 이름은 뭐예요?”


  “…”


  깊은 정적이 흘렀다. 시연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이시연.”


  “이시연… 이름도 예쁘시네요, 누나. 다음에 또 봬요.”


  윤기의 달콤한 목소리가 시연의 귀를, 가슴을 간질였지만 그녀는 구태여 외면하며 아무런 대답 없이 교실을 나왔다. 저의 욱씬거리는 입술을 떠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