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제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세찬 비가 쏟아졌던 어느 여름날의 아스테룸.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가 우산을 접고
바람에 살짝 젖은 소매를 털어내다 고개를 들었을 때,
뿌옇게 흐린 빗줄기 사이로
길 건너 저편에서 누군가를 보았다.
선명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우산도 없이 아플 만큼 굵은 비를 다 맞으며
슬픈 얼굴로 나를 보고 있던 사람.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디뎠으나,
은호 형의 부름에 잠깐 돌아본 사이 사라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아스테룸에 우리 외에 누군가 있을 리가 없지.
비안개에 빛이 비쳐 잘못 봤나 봐.
곧바로 해야 하는 촬영이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그렇게 쉽게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