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80화. 훈지의 이사

sophie97
2026.10.04浏览数 54
미겔이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주말이었다.
나와 지성씨는 공항까지 미겔을 배웅하고
카페로 돌아왔다.
"지성 씨, 한동안 쓸쓸하겠어요..."
"저는 괜찮아요."
잠시 망설이던 지성 씨가 웃으며 말했다.
"매일 영상 통화도 하고
내년 여름방학 때는
제가 스페인으로 놀러 가려구요..."
지성 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께 감사드려요."
"왜요? 나 때문에 미겔을 알게 돼서요?"
지성 씨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그것도 있지만...
인정해 주셔서요. 저와 미겔 사이를..."
"내가 뭐라고...
지성 씨와 미겔 사이를 인정하고 안 하고 해요.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뿐이에요."
나는 지성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한 건 미겔과 지성 씨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라는 거에요."
나와 지성 씨는
차를 한 잔씩 마시고 헤어졌다.
오늘 미겔이 떠났으니
훈지 씨는 또 짐을 잔뜩 갖고
들어올 것이 틀림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게스트룸을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새로 갈았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훈지 씨 누님이 아시게 되면 뭐라 하실텐데...
하...나도 모르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나와 훈지 씨의 선택을 믿어 보기로 했다.
청소를 끝내고 나니 늦은 오후가 되어 있었다.
토스트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책 한 권을 펼쳐 소파에 앉았다.
가을 햇살이 창으로 스며들어
거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런 반짝이는 매일을
훈지 씨와 함께 보낼 수 있다 생각하니
행복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소파 등에 기대어 가을 햇살을 만끽하다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어?? 줄리앙??
어디 가요?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봐요..."
줄리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쫓아가도
줄리앙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줄리앙, 잠깐만 거기 서봐요!!"
다급하게 그를 쫓아가던 순간,
발이 엉켜 그대로 넘어졌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갑자기 줄리앙이 왜 꿈에...'
'그래도 웃고 있었으니
줄리앙이 좋은 곳에 있다는 뜻일 거야...'
나는 잠을 깨려고 세수를 하고
저녁으로 뭘 먹을까 주방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훈지 씨는 오늘 몇 시쯤 오는 거지?"
나는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훈지 씨.
오늘 나는 저녁을 혼자 먹어야 할까요?]
[오늘 촬영이 늦게 끝날 거 같아요.
집에 들려 짐까지 갖고 가려면 늦을 거에요.
혼자 있다고 저녁 대충 먹거나 거르지 말고요.
이따 봐요. 세모네모❤️]
[나의 여름, 훈지 씨!!
오늘 촬영이 늦게 끝나면
짐은 다음에 가져오는 게
어떨까요?]
[안 돼요. 세모네모!!
나는 오늘 꼭 갖고 갈거에요.]
"의지의 박훈지!!"
나는 훈지 씨의 굳은 결심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는 언니가 갖다 준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상을 차렸다.
밥을 먹다보니
어제 언니에게 너무 심하게 했던 게
마음에 걸려 미안해졌다.
먹다 말고 휴대폰을 들어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어제는 내가 너무 예민했어.
소리 지르고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용서해줘.]
잠시 후에 휴대폰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정아야. 나도 훈지 좋아.
그런데 혹시라도 네가 상처받을까봐
걱정되어서 그랬어.
그 후에 훈지가 나한테 연락했더라.
자기가 너 상처받지 않게 잘 할테니
믿어달라고...
그래서 나도 믿어 보기로 했어.]
나는 언니의 메시지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훈지 씨가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구나.'
내가 언니 번호를 알려 준 적은 없었다.
아마도 내 휴대폰에서
언니 번호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마냥 어린애 같고
미덥지 못하다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배려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줄리앙의 꿈이며,
언니의 이야기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산책을 나섰다.
제법 쌀쌀해진 밤공기에
환한 달빛 아래를 걷는 것도
기분은 제법 괜찮았다.
1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훈지 씨였다.
"훈지 씨?"
"세모네모!! 지금 어디에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집에 없어요?"
"훈지 씨, 집에 도착했어요?"
"자고 있는 줄 알고 조심히 집에 들어갔는데
침실에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어서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잠이 안 와서 산책 나왔어요."
"혼자서요?"
"그럼 혼자서 오지, 누구랑 와요?"
"원희 오빠랑 같이 있는 건 아니죠?"
"...훈지 씨!! 의처증 있어요?
웬 의심이 그렇게 많아요?"
"어? 의처증이면 세모네모가 내 처라는 말씀?
그렇게 되고 싶다는 얘기?"
"하여간 요새 너무 능글맞아졌다니까..ㅎ
지금 들어갈게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룸에 놓아둔 그의 짐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예 이사를 하는 거에요?"
이민 가방 두 개에
박스도 여럭 개였다.
"사계절 옷을 다 가져온 거에요?
대체 이게 다 뭐에요?"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아서
다 가져왔어요. 잘 했죠?"
"네... 잘 했네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왕 가져온 짐을 다시 돌려 보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술 더 떠
내 앞에 와서 배를 내밀었다.
나는 그의 엉덩이를 발로 차주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의 배를 쓰다듬었다.
"잘 했다고 해 줄 줄 알았어요.
나는 이제 씻으러 들어갑니다~"
나는 훈지 씨가 욕실에 들어 간 사이
짐을 풀다가 작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또 뭐야?"
상자를 열어 본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 사람... 뭐지...?" <81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