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前世是恶霸的妻子?


한 남자가 갓을 쓰고 궁으로 걸어간다.

푸른색 도포에 검은 낯가리개, 옥으로 된 호패.

태형이었다. 태형의 꿈이었다.

안개가 자욱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날씨에, 낯가리개까지 단단히 하고선 그녀에게 가는 것이었다.


태형
내 아직 연정을 고백하지도 못하였건만, 벌써 약혼이라 하니...


태형
추한 잡서만 읽으니 내게 혼인하려는 자도 드는 게 아닌가.

태형은 안개 사이를 헤치고 별장으로 달려가서, 앞을 쓸고 있는 무수리에게 물었다.


태형
이보시오, 내 실례지만 공주 마마가 이 안에 계시오?

무수리는 태형의 미모에 잠시 넋이 나간 듯 있다, 모르노라고 말했다.

태형이 다급하게 위로 뛰어가는 동안에도 그 무수리는 태형만 바라보았다.


태형
내 김 의관 댁 태형이라 하오, 지금 공주 마마가 안에 계시오?

상궁
잠시 기다려 보시오, 확인해줄 터이니.

상궁은 미심쩍은 눈으로 태형을 보다가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태형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고, 잠시 후 상궁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상궁
공주 마마는 주무시고 계시옵니다. 설마 하니 깨우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거짓말이다. 태형이 오는 시간에 잠들어있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 공주는 별관에서 단 한 번도 잔 적이 없다.

여간 토라진 것이 아니고서야...


태형
소인이 간청하니 한 번만 들여달라고 전해주시오, 이리 빌겠사오니.

상궁
...알겠으니 진정하시오.

상궁들은 주변에서 궁시렁거리다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태형에게 문을 열어준다.

상궁
들라 하시덥니다.

태형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에는 병풍 뒤로 사라져버린 000이 말한다.


000
내 오늘은 네 얼굴이 보고 싶지 않구나.


000
할 말만 썩 하고 돌아가거라.


태형
평민들의 잡서로 생긴 일이옵니다. 소인, 그런 일 없었다는 것에 무엇이든 걸겠습니다.


000
네 말은, 약혼이 잡서로 생긴 일이라는 것이냐!


000
여인이 연정을 품은 것이, 잡서 때문이라는 게냐!

000은 화와 질투에 휩싸여 소리를 지른다.


태형
저하, 소인은 다만 그저.


000
내 거짓말은 꼴도 보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지 않으냐!


000
이제는 듣기도 싫으니,


태형
저하는 소인 마음 하나도 알지 못하시면서 어찌 본 적 없는 여인의 마음은 그리도 잘 아십니까!

태형이 소리를 질렀다. 악과 억울이 잔뜩 묻어나오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태형
사모한다 말한 것도, 혼을 치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곁을 지키고 싶다 한 것도 벌써 몇 년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사옵니다!


태형
어른들의 뒷사정 때문입니다, 저하. 소인이 바람을 폈다고 정녕 그리 생각되시면, 죽여주시옵소서!

태형이 금방이라도 제 배를 찌를 듯, 허리춤에서 칼을 빼내어 공주의 자리 위에 놓는다.


태형
그 병풍 뒤에 가려진 저하의 손으로, 직접 제 목을 베어 죽이시라는 말입니다!


태형
소인은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하는 그게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000
태형...

000은 병풍을 걷고 부은 눈을 보이며 걸어나온다. 태형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태형
소인은, 김 의관 집 셋째 아들, 문관 태형은!

태형의 주먹 쥔 손이 떨렸다.


태형
저하 말고는 아무도 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