毒
09 缓缓吹动的刀片(2)


***

불안할 정도로 평화롭고 무탈한 일상이 흘러간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원하는 것을 하고 가끔씩 산책도 나가고.

평소의 여주였으면 상상만 했을 일상이다.

점점 달라지는 게 있다면 여주가 잠자는 시간이 늘고 있다는 것.

어떤 날은 하루 내내 잠에 들어 하루를 통째로 날려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여주는 그저 그동안 불안해서 잠에 들지 못 했던 게 이제 편안해지니까 많은 잠을 자는 거겠거니 하며 심각하게 삼진 않는다.

잠만 많아진 것뿐 그 외는 평화로우니까.

{띵동- 띵동-}

앞으로도 계속 평화롭기를 바랐건만 그것을 비웃듯 불길한 느낌의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초인종 소리에 방에 있던 지수가 거실로 나와본다.


홍지수
여주 씨는 여기 계세요.


홍지수
제가 나갔다 올게요.

여주는 고개만 끄덕이곤 소파에 앉는다.

그러자 지수는 초인종 소리의 주인공을 쫓아내지 못 해 한탄하며 터덜터덜 거실로 온다.


홍지수
지금 그분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홍지수
당신도 자야 할 텐데 여기에 왜 오신 겁니까?


김민규
오늘은 형 만나러 온 거 아니야.


김민규
그리고 지금 못 자서 예민하니까 나 막지 마, 지수야.

지수는 민규를 제재하려다 멈칫하곤 아무런 말대꾸 없이 뒤로 물러난다.


김민규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민규는 사글사글하게 웃으며 악수하자고 손을 건넨다.


김민규
원래 통성명을 하면 그 다음엔 악수잖아요?


김민규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지수는 그를 말려 보려고 생각은 하지만 낮에 뱀파이어를, 잠에 들지 못 한 뱀파이어를 건들면 어떨지 잘 알고 있기에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안절부절한다.

이여주
…

이여주
악수를 되게 좋아하시네.

이여주
근데 전 악수를 별로 안 좋아해서.

여주는 어떻게 해서든 그와의 스킨십을 피하려 애쓴다.

그러나 민규는 그런 여주의 모습에 무언가 확신에 찬 듯 비릿하게 웃는다.


김민규
전원우 말이 정말이네?


김민규
그 누구랑도 닿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

***

3시간 전.

SVT 기업의 부회장실.

원우는 또 다시 뱀파이어인 민규를 해가 뜬 아침에 부른다.


김민규
또 뭐야.


전원우
저번에 레스토랑에서 윤정한이랑 만났었잖아.


김민규
그치. 너도 있었고.


전원우
거기에 그 여자도 있었고.


김민규
뒤에서 다 보고 있었구나?


전원우
그럴 수밖에 없지.


전원우
꽤 가까운 자리였으니까.


김민규
그래서 뭐, 왜 부른 건데.


전원우
그때 여자가 너랑 악수하려고 하니까 윤정한이 바로 막더라.


김민규
그게 뭐 이상한가.


전원우
스킨십에 뭔가 있는 거지.


전원우
물론 이건 내 추측일 뿐이긴 하지만.


전원우
아무튼 넌 거기 가서 그 여자랑 악수만 하고 와.


전원우
그리고 확인해.


전원우
스킨십에 뭐가 있는 건지.

***

***

다시 현재.

민규의 말에 여주는 정곡이 찔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달싹인다.

그러자 민규가 그녀의 손을 확 낚아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여주와 지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 한 채 너무 놀라 몸이 굳는다.


김민규
이런 거였구나.

민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김민규
피를 대신할 수가 있네?


김민규
피를 먹는 것보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홍지수
뭐 하시는 겁니까, 지금.

드디어 정신 차린 지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쪽 손의 손목을 붙잡는다.

떼어내려 하지만 지수의 힘으로는 택도 없다.


김민규
인간이었던 네가 감히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민규는 지수를 깔보듯 말한다.


홍지수
지금 당장 그 손 놓으세요.

지수가 그를 째려보듯 쳐다본다.

그러자 민규는 껄렁대며 웃더니 여주의 손을 놓아준다.


김민규
지수야.


김민규
윤정한한테 전해.


김민규
여주 씨에 대한 거 다른 뱀파이어들한테 퍼트리기 전에 우리한테 연락하라고.


김민규
우리는 그렇게 인내심이 좋지 않다고.

그 말을 남기고 민규는 유유히 그곳에서 떠난다.

거실에 둘만 남게 된 지금, 그저 어색하고 차가운 정적만이 흐른다.

이여주
…이제 어쩌죠.


홍지수
이따가 그분이 깨어나시면 생각해 봐야죠.


홍지수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지수는 여주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여주는 아까 민규가 했던 말을 곱씹는다.

“인간이었던 네가 감히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여주는 ‘인간이었던’ 이 부분이 걸리는 듯하다.

전부터 이상하긴 했다.

낮에는 잠자야 할 뱀파이어가 깨어 있는데도 예민하지도 않고, 그저 평소처럼 행동한다.

마치 인간처럼.

아니면……

뱀파이어가 된 인간처럼.

이여주
어떻게 된 거예요?

이여주
혹시 지수 씨는… 원래부터 뱀파이어가 아니라 인간이었어요?

서로에 대해 더 이상 알아가지 않으려던 그녀가 돌직구로 물어본다.

그에 머뭇거리던 지수는 드디어 입을 연다.


홍지수
맞아요.


홍지수
전 원래 인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