毒
11 缓缓吹动的刀片(4)


***

“우리는 버렸으면서.”

원우의 짧고 굵은 한마디에 정한은 몸이 굳어버린다.

아마 죄책감같은 걸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런 죄책감으로는 정한의 발을 묶을 순 없었다.

가능했다면 진작 그의 죄책감을 이용해 죽였을 것이다.


윤정한
다 지나간 일 가지고 이제 와서 이러는 거 웃기지 않아?


전원우
참 웃기지.


전원우
어렸을 적 일인데 난 아직도 형을 죽이고 싶어.


윤정한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여주 씨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기 전에 죽으라는 거야?

원우는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그를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는다.


전원우
어. 우리 앞에서 죽어 봐.


윤정한
근데 원우야.

굳어있던 정한의 얼굴에 여유로운 웃음이 번진다.


윤정한
너희가 소문을 퍼트리는 게 더 빠를까 아니면…

그는 빠르게 한 손으로 원우의 목을 조른다.


윤정한
내가 너희를 죽이는 게 더 빠를까?

정한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린다.

그의 손아귀에 붙잡혀버린 원우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 뒷걸음만 치다 벽에 등을 세게 부딪힌다.


전원우
윽……

점점 조여오는 숨통에 원우의 얼굴엔 핏대가 서고 점점 시뻘개져간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목을 쥐어짜듯 말한다.


전원우
큭…… 정말로, 내가… 윽…


전원우
김민, 규를…… 형 집에… 윽, 보내지 않았을 거라, 고… 믿는 거야?

갑자기 정한은 싸함을 느낀다.

이번에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같다고 정한은 생각한다.

여기서 원우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꽉 쥐고 있었던 목을 내팽개치듯 놓는다.

그러자 원우는 저항없이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내뱉는다.


전원우
…어쩌다 이렇게 됐냐.

원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고 별빛조차 없는 공허한 밤하늘이다.

***

***


김민규
이렇게 바로 달려갈 줄은 몰랐네~

민규는 껄렁대며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곤 이죽거린다.

여주와 지수밖에 없는 지금, 민규를 이길 수 있는 존재라곤 없다.

인간인 여주가 민규를 상대할 수 있을리는 없고, 뱀파이어긴 하나 원래는 인간이었던 지수 또한 그에게 잽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을 여주와 지수 본인들도 느끼는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며 긴장감이 맴돈다.

이여주
정한 씨가 없는 틈에 저희 둘을 죽이려구요?

이여주
이렇게 치사한 방법을 써서 당신이 얻는 게 뭐죠?


김민규
글쎄. 난 그냥 정한 형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어.

이여주
정한 씨가 당신을 괴롭히기라도 했어요?


김민규
그건 아니고.

뭔가 말을 덧붙이려다 민규는 멈칫한다.


김민규
내가 왜 이런 것까지 너한테 알려줘야 할까?


김민규
어차피 넌 여기서 죽을 텐데.

순간 민규의 눈에 살기가 돋는다.

이여주
꼼짝 없이 당하기만 하진 않을 거예요.

여주가 지수의 손을 붙잡고서 뒷걸음질을 친다.

그리곤 그녀는 지수에게 곁눈질을 하며 무언가 신호를 보낸다.

아마 순간이동을 해서 도망치자는 거겠지.

여주의 신호를 단번에 알아챈 지수는 순간이동을 쓰려고 하지만

순식간에 민규의 손아귀에 목이 붙잡혀 숨통이 막혀버리고 만다.


홍지수
윽…

민규는 붙잡고 있던 그를 벽에 내동댕이치듯 거칠게 놓는다.

그러자 지수는 벽에 세게 몸통을 부딪히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도 뱀파이어이긴 한 지수는 금방 일어나 민규에게 달려든다.

민규의 복부라도 뚫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지만 속절없이 그의 손은 붙잡혀버리고,

반대쪽 손도 붙잡혀버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민규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수의 두 손을 붙잡느라 다른 곳을 신경 쓸 겨를도,

무언가를 막을 손도 남아있지 않다.

그것을 노린 여주는 조용히 뒤쪽에서 유리병으로 민규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다.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민규의 머리는 핑 돈다.

그의 머리에선 피가 줄줄 흐르지만 끄떡도 없는 듯 보인다.

잠시 휘청거리다 여주에게 점점 다가간다.

그러자 정한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나타나곤 민규의 앞을 가로막는다.


윤정한
민규야.

그를 부르는 정한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차갑다.


김민규
벌써 왔네?


김민규
저 여자 죽인 후에 왔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민규가 내뱉은 말에 정한은 살기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그의 목을 붙잡는다.

그리곤 어디론가로 순간이동해버린다.

***

***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저 밑으로 떨어져 큰 충격에 사지가 분리될 것이다.

정한은 그런 옥상의 끝에서 민규의 목을 붙잡고 서 있는다.


김민규
나 여기서 떨어트릴 거야?


윤정한
너 순간이동할 수 있잖아.


윤정한
그걸로 잘 살아 봐.


윤정한
저 땅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김민규
예전에는 그렇게 살갑던 형이 왜 이렇게 변한 거람~

옥상 끝에 몰렸는데도 민규의 능글 맞음은 여전하다.


윤정한
네가 여주 씨만 건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는 안 했어.


김민규
우리도 좀 그렇게 대해 주지 그래.


김민규
우리도… 우리를 그렇게 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짓까진 안 했어.

민규의 눈은 어쩐지 서글퍼 보인다.


윤정한
…나도 그땐 무서웠으니까.


윤정한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안 했더라면 너네 다 거기서 죽었어.


김민규
그래. 거기에 불 지른 건 고맙긴 해.


김민규
근데 우릴 버리고 가진 말았어야지.


김민규
내가 그렇게 애타게 불렀는데.


김민규
근데 형은……


김민규
매정하게 등을 돌렸잖아.


윤정한
…미안하다.


김민규
이제 와서?


김민규
뭐 야경을 보니까, 밤바람 좀 맞으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윤정한
글쎄. 용서해 주는 것도 네 자유고, 그렇게 생각을 하든 말든 네 자유야.


윤정한
근데 난 네가 날 용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윤정한
지금 네가 한 행동을 난 용서해 주지 않을 거거든.


김민규
혹시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

정한은 침묵하며 여주를 떠올려 본다.

사랑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먹이를 지키고 싶었던 소유욕인 것인지

정한 자신도 모르겠다.


윤정한
그냥 지키고 싶어.


윤정한
그게 다야.

정한은 붙잡고 있던 민규의 목을 밀치듯 놓는다.

그러자 그의 몸이 옥상의 끝으로 기운다.

그의 몸은 허공에 뜨다가 이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다 검은 연기가 민규의 몸을 감싼다.

땅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그는 순간이동을 했겠지.

하지만 그의 몸은 그리 성하지 않을 것이다.

피를 줄줄 흘리며 체력 소모가 많은 순간이동을 썼으니,

아마 지금쯤 어디론가로 이동해 기절해 있을 것이다.

***

***


이서영
…이건 또 뭐람.

레스토랑에서 마감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즐거운 퇴근 시간을 만끽하던 서영의 눈앞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한 뱀파이어가 기절한 채 쓰러져 있다.

저번에 자신과 함께 동맹하자던 그 뱀파이어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