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경 말고 남자로서
03. 혼란
Produced by.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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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서는 웃는 게 예쁩니다.’
“하아..”
정확히 그 말을 들은 뒤 혼란스럽기 시작한 여주.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린 이유를 알 것만 같아 그랬다. 오래 일 한 사람과는 저런 말을 잘 하시는 분이지만 언제 부터인지 그런 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옷이랑 잘 어울리네요. 예뻐요. 그래서 다음 일정이 뭐죠?’ 라던가. 3년차가 되고 새로 산 옷을 입고 출근 했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그때는 이런 감정이 없었는데.
“김비서님!”
“아.. 윤아씨..”
“제가 몇 번을 불렀는 줄 아세요? 저번부터 이상하시네.”
“출장이 피곤했나봐요. 오랜만에 가서 그런가..”
“음.. 그런가보다. 이거 디자인팀에서 올라온 결제서류인데 상무님께 드려야해서요. 제가 지금 바로 회의 들어가야해서.. 부탁 드릴게요!”
“아.. 네. 갔다오세요.”
똑똑-
“상무님. 들어가도 괜찮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들어가자 보이는 건 쓰던 안경을 벗고 여주를 뚫어져라 보는 석. 오늘따라 저 눈빛이 다르다. 손 끝이 뜨거워지고 볼도 조금은 뜨거워지는..
“김비서.”
“네? ..죄송합니다.”
“서류 주세요.”
석 앞으로 다가가서 서류를 주고 결제가 끝난 서류를 품에 하나 둘 안는 여주. 그 모습을 보던 석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팔목을 그러쥔다. 그 모습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여주. 손바닥 전체가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아픈 거 같진 않은데,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아무 일도 없습니다.”
“열..은 없는 거 같은데.”
“홍조입니다.”
“그런 거 없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생겼습니다. 3시에 회의 있으니 잊으시면 안됩니다.”
“네. 점심은 같이 먹죠. 오늘 같이 먹을 사람 없는데.”
“네. 알겠습니다.”
여주가 문을 닫고 나가자 고개를 한번 갸웃거린 후 다시 안경을 고쳐 쓰는 석. 오늘따라 삐걱거리는 여주의 모습이 이상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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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서님.. 열 나는 거 같은데요..? 얼굴이 엄청..”
“홍조에요 홍조..”
“그런 거 없지 않으신가..?”
‘홍조는 무슨.. 홍조가 아니라 마음이 생긴 거 같아요 윤아씨..’
존경한다는 감정과 좋아한다는 감정. 두가지 감정을 구별하기 어렵고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할 만큼 여주는 어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존경할 때는 이유가 있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감정은 ‘좋아한다.’가 틀림 없었다.
어린 애가 아니었다. 감정을 깨닫는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깨달은 후엔 그리 혼란스럽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김비서.”
“…”
“김비서.”
“ㄴ,네?”
“하아..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합니까. 오늘 전시회 최종 확인 몇시냐고 물었습니다.”
“아아 오늘 5시입니다.”
“알겠어요. 나가보세요. 정신 차리시고요.”
“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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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은 이쪽으로 해주시고 옷이 조금 더 두드러져 보이게 위치도 조정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네.”
“이번 새벽의 꽃 프로젝트는 회장님도 오시니 특히 더 신경 쓰셔야합니다. 마지막에 그 옷은 붉은 꽃이 튀어보이게 해주세요.”
“상무님. 여기가 이 옷으로 런웨이 할 공간입니다.”
“마지막 의상 보고 여기로 오는 동선 잘 체크 해주세요.”
“네. 이번에 뽑은 모델들이 여기 런웨이에 설 예정입니다.”
“좋네요. 겹치거나 꼬이지 않게 잘 해주세요.”
“네. 전달해두겠습니다.”
“이건 뭔가요? 화관?”
“네. 여성 모델들이 입는 의상에 어울려지는 장식들 중 하나입니다. 남성 모델은 부채 같은 장식에 꽃이 여성 모델은 화관이나 머리 장식에 꽃을 새겨 둘 예정입니다.”

“이렇게 하는겁니까?”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이 없어 보였던 여주는 그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는다. 석이 화관 착용 방법을 모를 리는 없었다. 저렇게 화관을 쓴 이유를 알자 기분이 좋으며 두근거렸다.
“고쳐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눕혀서..”
“김상무. 잘 하고 있는가?”
두 사람이 웃으면서 붙어 화관의 모양을 잡는데 전시회장에 회장님이 나타났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이번 전시회는 잘 되고 있는지 보러 왔네. 큰 걱정은 없다만. 이번에 특이한 점이 이 런웨이라지?”
“네. 회장님.”
“화관은 김상무가 아니라 김비서가 써 봐야 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어울리는지 봐야할 거 같아서 말이야.”
김회장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쩔 때 한번 나오는 석의 장난기는 아마 회장님을 쏙 빼닮았는지도 모른다. 기계같은 석에게 있는 작은 인간미랄까.
그에 석은 웃으며 회장을 말리려했으나 여주의 생각은 달랐다.
“회장님. 김비서는.”
“괜찮습니다. 제가 쓰면 이번 전시회 의상들에 어울리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겁니다. 44회때 의상도 입어봤는데요. 괜찮습니다.”
생화로 만들어진 화관을 조심스럽게 머리 위로 올렸다. 비뚤어지지 않게 잘 쓰고 머리를 잘 정리한 후 석과 김회장을 바라보았다. 석의 입가엔 작은 웃음이 걸리고 김회장은 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가?”
“생각보다 무겁지도 않고 걷는데 큰 무리도 없을 거 같습니다. 다만 여성 모델에게 화관을 모두 씌우면 옷 보다 장식에 눈이 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여자 의상 모델만 이 화관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군. 김상무는 어떤가?”

“네. 좋습니다. 예쁘고요.”
“김비서가 예쁜건가?”
“네?”
“회장님.”
“허허허. 알겠네. 알겠어. 난 김비서가 예쁜 것 같네. 말 하는 것도 똑부러지고. 우리 서화에 큰 인재가 들어온 것 같아 기쁘군.”
“감사합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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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님. 밖에 차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회장님,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더 고맙네.”
“회장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세요..”
“눈에 보이는 게 있어서 그러지.”
“뭐가 보인다는 말씀이세요?”
“난 이미 말 했다. 네가 생각해 볼 것이지.”
“회장님..”
“허허허.. 손자 놈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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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예쁘고요.’
“하아.. 진짜 미치겠네..”
[ 예고 ]
“김비서님. 좋아하는 사람 생겼죠? 다 알아.”
“무슨 그런 말씀이세요..! 그리고 제가 연애할 시간이 어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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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가죠.”
“다음 일정 빼두겠습니다. 병원부터 가시죠.”
“이런 걸로 병원입니까. 괜찮습니다.”
“안됩니다. 상무님 내일 모레 전시회입니다. 병원부터 갔다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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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서님.. 회사 그만 두시게요..?”
“아니 뭐..”
“비서님이 사직서 쓸 줄은 몰랐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