被俘

(34)團隊領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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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히다 (34) 민팀장


"김태형씨, 
 
당신을 현 시각 부로 납치, 폭행,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



나는 김태형을 체포하는 정국을 뒤로 하고 절벽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아침에 지나온 R&V연구소가 한번에 보이는 이 곳.. 하늘만 그대로인 채로, 어렸을 때 보던 풍경과는 모든 게 너무도 많이 바뀌어있었다. 온갖 회한들이 느껴지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들이 떠오르고 그리웠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조그만 아이었을 때 실험실 문을 빼꼼히 열면 가운을 입고 있던 엄마 아빠가 얼른 달려나왔다. 엄마는 혹시라도 내가 위험한 물건을 만질까봐 걱정하며 뛰어 나왔고, 아빠는 뭘 그리 걱정하냐며 조그만 나를 안아들고는 실험실 구경을 시켜주기에 바빴다. 내가 아빠의 어께에 매달려 이것저것 구경하면 아빠 등 뒤에서 장난을 쳐주며 웃던 김태형의 얼굴도 살짝 지나갔다.

엄마 아빠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이 연구원이 된 내가 입는 실험 가운과 겹쳐보이면서 갑자기 설움이 복받쳤다. 



늘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나.. 잘 살고 있었던 걸까? 



결국 엄마, 아빠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된 것이 숙명 같기도 하고... 굴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두어지는 절벽 끝에서 풍경을 보다보니 나는 다시 눈물이 났다.. 



흑흑....


"해주야, 너도 이제 가자.. 많이 다쳤잖아... 병원.. 가야지..?"



김태형을 다른 경찰들에게 인계한 정국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설움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국은 눈물을 흘리는 날 보더니 내가 기댈 수 있게 곁에 가까이 와주었다. 해가 져서 캄캄해질 때까지 잠시동안 나는 그리웠던 하늘 밑에서 울었다.



" 야, 전정국 너 지금 일 안하고 뭐하냐...?

 너 해주요원에게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이렇게 애를 울려.."



등 뒤에서 민윤기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에는 이곳 저곳에서 지원나온 경찰들이 모이면서 사람들이 복작복작해졌다.



"아.. 저 윤기형.. 그게.. 해주가.."



정국은 갑작스런 윤기형의 등장에 당황해하면서도 감싸안은 내 어께를 놓지 않았다. 정국이가 뒤돌아보며 뭔가 말하려하자 다른 다정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참에 전정국 형사가 해주 좀 병원에 데려다주고 오면 어떻겠나?"



김석진 서장은 앞으로 오더니 내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헝크러진 머리 하며, 부어오른 입술과 여기저기 뜯긴 옷차림, 피가 흐르다가 말라 붙은 바지까지 어디 하나 괜찮은 곳 없이 내 모습은 처참했다.



"전정국 형사는 흑해주요원 입원 수속 다 밟아주고 천천히 돌아와. 보고는 돌아오면 자세히 듣기로 하지..

 그리고.. 해주야, 정말로 수고 많았어. 고맙다."



김석진 서장은 내 어께를 토닥여주고는 바로 뒤 돌아 수사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자, 1팀은 연구실 바깥부터 수색해. 
 도주하는 사람들 모두 검거하도록. 

 2팀은 음, 민윤기팀장! 아까 골프 cc 아직 수색 중이지...?"


"넵. 국과수에 현장 인계했고, 
 그 쪽에 최소한의 인원을 두고 이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럼 2팀, 3팀은 아까 입구에 있던 지하 연구실로 내려가서 국과수에서 오기 전까지 현장 정리하고, 증거품들 수집하도록..."


"넵!!"



현장을 정리하는 김석진 서장을 뒤로하고 정국과 나는 구급차로 향했다. 그런데 민윤기 팀장도 볼 일이 있는지 우리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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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는 출동한 여러대의 경찰차와 구급차들이 품어내는 빛들이 섞여 어지러웠다. 우리는 형형 색색의 빛 사이를 가르며 걸어갔다. 여러 대의 경찰차를 지나 걸은 후에야 초록색 빛이 막 꺼진 빈 구급차에 닿을 수 있었다. 

민윤기 팀장은 나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전정국이 눈꼴시려운 듯 영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전정국, 너 진짜.. 이것도 경위서 감이야"


"아 형.. 왜 또..ㅜㅠ "


"에휴, 일단 해주씨 빨리 병원 데려다 주고와...
 돌아와서 얘기해."



민윤기 팀장의 말과 표정은 영 차가웠지만 행동은 전혀 그래보이질 않았다. 그는 우리가 응급차에 탈 수 있도록 문도 열어주고, 안에 안전하게 탔는지 확인하고는 구급대원에게도 어느 병원으로 가는 지, 입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 상세한 것들을 묻고 떠났다.



"윤기형이 말은 좀 틱틱거려도, 마음은 그런 사람 아니야.."


"ㅎㅎ 어 그래.. 그런 것 같다"



구급차 안에서도 나는 정국이에게 기대 앉은 채 그렇게 병원으로 출발했다.



.    .    .



이후로 정국이는 매일같이 병원에 와 주었다. 마치 자기가 입원한 양 짐을 잔뜩 챙겨와서는 화장실에 씻을 거리들도 갖다두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잔뜩 쟁여놓았다. 병실에서 필요할 거라며 편한 슬리퍼와 환자복 밖에 걸칠 가디건도 들고 왔다. 

새벽이던 낮이든 틈틈히 찾아오던 정국이는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가기도 하고, 옆에서 티비를 보며 과자를 먹다 가기도 했다. 언론에 이번 사건이 대대적으로 다뤄지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나는 1인실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만약에라도 6인실에 있었다면 자꾸 드나드는 전정국은 큰 민폐였을 것 같았다.  



"뭐야 전정국, 지금 너 일 안하고 땡땡이 치는 거지? 
 지난번에 밖에서 나 만났다고 민윤기 팀장님께 혼났다며"


"어. 안 그래도 어제 서에서 경위서 썼어..
 현장 출동 전날에 너네집 찾아간 것 때문에"


"아 진짜 내가 그 때도 오지 말라고 했잖아.. 작작 좀 와라.. ㅋㅋ
 여기도 아주 니 집이지?"


"뭐래, 실은 좋으면서"



말로는 정국이랑 티격태격 하고 있지만 실은 정국이가 오는 게 좋은 게 사실이었다. 가족이 없으니 꾸준히 있어줄 누군가가 없어서 병실에 있는 시간은 꽤나 외로웠다. 딱히 찾아올 친인척도 없고, 그나마 친해진 후배 정호석은 연구소가 뒤집어져서 정신이 없었다. 김남준 소장은 구속되었고, 지호선배는 관련자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말 약속도 무산되었다. 딱히 여기저기 입원했다고 홍보할 수도 없고.. 결국 주변에 병실에 올만한 사람은 딱 전정국 뿐이었다.



"으이그... 그래서 오늘은 민팀장님께 허락 맡고 온거야?"


"오늘은 허락 받았지~ 

 우리 흑해주 요원님.. 
 이번 사건에 가장 큰 주역인데, 
 담당자였던 제가 제대로 챙겨드려얍죠..ㅋㅋㅋ

 무엇보다도 이젠 스파이도 아니잖아. 
 민간인 흑해주씨. 우리 이제 사적으로 자주 만나도 되겠네?"



정국이 다가와 내 볼에 입을 맞춘다. 
아, 이 능구렁이 같은 쉐키...



"자꾸 예고 없이 불쑥불쑥 스킨쉽 좀 하지 말아줄래...?"


"아니, 하루종일 붙어 있어달라고 부탁한 건 누구였더라...?"


"야, 그건 그거고..!!"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입원 첫날밤, 혼자 있어보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전정국에게 같이 있어달라고 떼를 썼다. 나는 눈을 감으면 비릿한 미소와 금색 눈동자가 떠올랐고,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계속 정국이를 찾았다. 그래서인지 정국이는 곤란해 하면서도 틈틈히 자꾸 왔다. 


.   .   .



사건 후, 1주일 쯤 뒤, 민팀장님과 서장님이 병문안을 왔을 때였다. 그 날은 타이밍이 좀 나빴다.



"에험"



왠 헛기침 소리에 이른 저녁부터 잠에 들어있던 나는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김석진 서장이 민팀장과 함께 와있었다. 



"앗, 서장님....!!! 민윤기 팀장님! 안녕하세요!!!"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강 가디건을 걸치고, 서장님이 들고온 음료 상자 받고는 인사하느라 고개를 숙이는데 엇...? 보호자용 침대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전정국...? 얘가 또 내가 잠든 사이 왔다가 여기서 잠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팀장과 서장에게 들키다니.... 

이거 괜찮은 건가...?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보호자 침대를 발로 툭툭 찼다.



"속닥) 야, 전정국... 일어나..!! 빨리...!!!"


"으..음냐..."


"속닥) 서장님이랑, 민윤기 팀장님 오셨어..!"


"뭐,,? 안, 안녕하십니까...?!!"



정국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로 서서 꾸뻑 인사를 했다. 한심한 듯 팔짱을 끼고 바라보던 민팀장은 잠이 덜 깨서 정신 없어보이는 정국이에게 말했다. 



"너, 아까 일 있어서 일찍 퇴근한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화가 난 민팀장님 옆에 서있는 김석진 서장은 뭐가 그렇게 웃긴 지 고개를 돌려 큭큭 웃었다. 



"야, 전정국! 
 너 지금 행색이 여기 한두번 와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은데.. 

지난번 나한테 보고한 병문안 말고도 몰래 온거야? 
아니, 너 사실 계속 왔지? 그치...?"


"아니.. 저 형 그게... 저.. 제, 제가 잘못했어요."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는지 버벅거리던 정국은 재빨리 민윤기에게 자백부터 했다.



"아우 씹... 전정국, 너 이리 따라나와.."



전정국의 섣부른 자백에 민윤기는 그대로 전정국을 질질 끌고 나갔다. 순간 끌려나가는 정국이가 나에게 눈빛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것 같았지만, 서장님도 있고 무엇보다 민윤기의 화난 기운이 장난 아니어서 차마 나도 뭔가 액션을 취해줄 수가 없었다. 하하, 정국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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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작가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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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