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을 집에 들였습니다

7화 - 한 지붕 아래

눈이 떠졌다. 잠을 꽤 설치긴 했지만 몸 만큼은 개운했다. 기지개를 쭉 켜고 침대에서 일어난 뒤, 욕실로 들어가 칫솔을 꺼내들었다. 치약을 칫솔 위에 듬뿍짜, 입에 넣고 이를 닦았다.

욕실에서도 바로 보이는 하민의 방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저기에는 지금.

내 남자친구가 자고 있다.

 

……남자친구.

입 안에 칫솔을 문 채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어제 어떻게 됐냐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일이 벌어졌다.

 

 

*

 

 

“……네가 신경 쓰여.”

 

 

내 말을 들은 하민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침이 묻고, 힘이 들어간 입술은 점점 붉어졌다. 내 시야에선 그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보였기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하…….”

 

 

낮은 한숨을 내쉰 하민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하민을 바라봤다. 심장은 여전히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얘도 지금 좋은가 보다.

고개를 숙인 하민의 귀가 새빨갰다. 그 빨간 귀가 한 번 더 내 심장을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귀 끝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하민이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없이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게슴츠레 눈을 감고 다가오려는 것이, 꼭 … 꼭 키스라도 할 모양새였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얼굴에 놀라 양손으로 입을 턱 막았다.

 

“아니, 바로 키스는 좀…….”

 

하민이 바로 멈췄다. 딱히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내 손에 가려진 입술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알겠다는 듯 내 양 팔목을 잡아 내리곤 나를 불렀다.

 

 

“누나.”

“응.”

“……장여주.”

“응.”

 

 

이름을 부르다니. 버릇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얌전히 대답해줬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감출 생각조차 없는 기쁨이 묻어 있었다. 하민이는 정말 온몸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빨개진 귀도, 참지 못하고 올라가는 입꼬리도. 촉촉하게 젖은 눈까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온몸에서 전기가 흐르듯 짜릿하게 전율했다.

 

“안는 건 돼?”

“……그래.”

 

대답이 끝나자마자 하민의 팔이 나를 끌어당겼다.

단단한 팔이 등을 감싸고 힘껏 조여왔다. 살짝 숨이 막힐 정도였다. 빠져나갈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꽉 안아주는 갑갑함이 오히려 좋았다. 그때의 일방적인 포옹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가까워진 심장에서는 세찬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등 뒤로 손을 뻗어 천천히 하민의 등을 끌어안았다.

 

“좋아해.”

 

달콤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 옆에서 들렸다.

 

“내가 더 많이.”

“…….”

“고마워.”

 

옴짝달싹 못하겠어서, 그리고 나도 기쁨 때문인지 목이 막혀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대로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먼저 팔을 푼 건 하민이었다. 조금 떨어진 하민이 내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아쉬움이 묻어나면서도 또 기쁜 얼굴이었다. 그래, 우린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앞으로 매일매일 이러면 되는거야.

 

 

“잘 자, 누나.”

 

 

하민은 그렇게 나를 내 방까지 데려다줬다.

 

나는 침대에 누운 뒤에도 한동안 천장만 바라봤다. 식을 생각이 없는 얼굴은 계속 뜨거웠다. 이마에 닿았던 입술의 감촉도 자꾸 생각났다.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 부분만 꼭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운 느낌.

 

멈출 기미가 없이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

 

 

 

어제 일을 생각하니 또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칫솔을 입에 문 채 헤벌레 웃었다.

내 남자친구.

유하민이 내 남자친구라니.

 

그때 머리 위로 가벼운 충격이 느껴졌다.

콩.

 

 

“침 흐른다.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으븝!”

 

 

어느새 욕실로 나온 하민이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때린 뒤 옆에 서 있었다. 나는 황급히 세면대에 거품을 뱉었다. 아니, 언제 왔대 …. 기척 좀 내지.

 

칫솔질을 마저 하면서 거울에 비친 하민을 힐끔거렸다. 막 일어난 건지 머리는 부스스했고, 눈도 평소보다 덜 떠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는 내 남자친구라니. 저런 꼬질꼬질한 모습도, 잘생기고 귀엽다. 진짜 완벽하네. 괜히 내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아침 식사를 하려 식탁에 앉으니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왔다. 부모님과 학교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부모님. 우리집 딸내미가 갑자기 같이 사는 건장한 남자랑 산다고 하면 무슨 생각이실까. 아마 짐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전에는 하민과 같은 집에서 밥을 먹든, 같이 등교하든 별생각이 없었는데, 사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 의식이 됐다. 꼭 나쁜 짓을 하는 기분….

 

진정하고, 괜히 좀 더 기쁘지 않은 척, 오히려 기분은 평소보다 다운된 척 밥을 먹는데

무언가가 내 발끝을 톡, 건드렸다. 내 발을 건든 커다란 발은 그대로 정강이에도 한 번 뽀뽀를 하듯 쿡, 찌르곤 떨어졌다.

 

 

“우악!”

 

 

놀라서 자동반사로 몸이 들썩였다. 아빠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어우, 왜 그래?”

“아니, 그냥…… 벌레가 있던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며 식탁 아래를 흘끗 내려다봤다. 하민의 긴 다리가 앞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저게….

 

 

고개를 들자 하민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얼굴로 밥을 먹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건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괜히 하민을 째려봤다. 진짜 아침부터 심장 떨어지게 하고있어!

 

 

 

*

 

 

 

집을 나와 등교를 위해 하민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평소처럼 나란히 섰다. 왠지 연인으로는 처음 같이 타는 것 같지. 어쩐지 긴장된다. 고 생각하고있는데 손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하민의 손이었다.

손끝이 닿은 것도 잠시, 하민이 그대로 내 손을 잡았다.

 

으아악! 얘 진짜 왤케 저돌적이지?!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속은 난리가 났다.

 

슬쩍 옆을 보니 하민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귀가 빨갰다. 아, 얘도 부끄럽고 좋은가봐.

 

 

거울에 비친 내 얼굴도 만만치 않았다.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렇게까지 의식이 되는 건 처음이야. 내 손 땀이 나는 것 같아 ….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만 잡고 있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손에서조차 박동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등교를 하면서 내내 잡고있던 손은, 학교가 가까워지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손을 놓았다. 하민이 나를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빈자리가 느껴지는, 방금까지 맞닿아있던 손을 매만지다 하민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 수업 잘 들어.” “누나도.” “으, 응!” “이따 봐.” 등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를 마치며 우리는 그대로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

 

 

 

어젯밤에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오전에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점심을 먹은 뒤부터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책상에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말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때는 이상하리만큼 개운했다. 너무 개운해서 오히려 싸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이 왠지 너무 조용했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서 확인해보니, 책상 위에 팔을 올려두고 얼굴을 괸 하민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헉!”

“잘 잤어?”

 

하민이 내 얼굴 쪽으로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이 내 입가를 슥 닦았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지금 몇 시야?

 

멍하니 눈만 깜빡이는데 하민이 씩 웃었다. 그러더니 내 입가를 닦은 엄지손가락을 자기 입술로 가져갔다.

 

쪽.

짧게 입을 맞췄다.

 

 

“기다려도 왜 이리 안 나오나 했는데.”

“야, 너 더럽게……!”

“덕분에 좋은 구경 했어.”

“으아아…….”

“나 때문에 잠을 못 잤나?”

 

 

더럽게 내 침을 닦고 그 위에 뽀뽀를……. 아니, 간접 키스잖아!

부끄러워서 제대로 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민은 그런 나를 보며 엄청나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민이 의자를 끌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큰 손을 펼쳐 내 앞에 내보였다.

 

 

“가자.”

“으, 응.”

 

 

나도 빠르게 가방을 챙겼다. 잠시 주저하다가, 하민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 공주가 된 기분이네.

 

학교랄 빠져나오는 길, 나는 단단히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큼.”

 

 

그러다 조금 용기를 내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깍지를 끼자 하민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

 

 

“왜, 뭐.”

 

 

하민을 쳐다도 보지 않고 말을 했다. 옆에서 피식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왔다. 노을이 서서히 저물어가고있는 날. 우리는 두 손을 꼭 붙든 채로 등하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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