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在田柾國家。


[7]

정국이를 만난 뒤에 꽤나 생각이 많아졌다. 다만 홈마에 미쳐 있던 삶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다. 정국이는 나랑 같은 나이에도, 어쩌면 더 어렸을 때부터 꿈을 위해 달려서 지금 저 자리에 서있을 텐데. 나는 지금 아무런 목표도 없이 정국이를 쫓아다니고만 있다.

    

"갑자기 내가 엄청 한심해 보이는데."

    

처음부터 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치원 때만 해도 하루에 한 번씩 꿈이 바뀔 정도로 꿈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건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정국이처럼 가수가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그것도 정국이를 쫓아다니면서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 노래 정말 좋아하는데. 작곡은 아직 초자이지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건 누구에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정국이를 쫓아다니면서도 틈틈이 녹음을 했다.

    

"정국이 처럼 쓸 일은 없겠지만."

    

나는 역시 홈마 쪽이 더 어울려. 정국이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정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다는 걸 느꼈다.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세계를 벗어나면 난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았으니까.

    

'꾸꾸 : 햄아. 자?'

'햄: 아니, 안 자.'

'꾸꾸 : 내일도 알바 가?'

'햄 : 응, 알바 하는 날이니까!'

'꾸꾸 : 나 갈래! 내일 갈래! 저번처럼 놀라면 안 돼!'

    

우와. 정국이가 카페에 또 놀러오는 구나. 내일은 사람이 좀 적었으면 좋겠다. 정국이가 편하게 쉬고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차피 종업원 복장이겠지만 내일을 위해서 팩도 하고 로션도 듬뿍 발랐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정국이가 오기로 해서 안 하던 화장도 하고 잔뜩 힘을 줬는데 알바가 끝날 시간이 다가와도 정국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햄 : 정국아, 연습 중이야?'

    

역시 문자에 대한 답도 감감무소식이고 말이다. 이럴 때는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게 된다. 정신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달 까. 이러다가 내 삶을 완전히 정국이가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도 뭔가 해야지."

    

이대로 타인의 삶에 의지해서 살 순 없잖아. 나는 오랫동안 묵혀둔 악보집을 꺼냈다. 모두 내가 쓴 자작곡이다. 오늘의 기분이라면 곡 하나 쯤은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악보에 쓱쓱 음표를 그리는 중에 종소리가 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꾸꾸야."

"햄아! 미안해. 너무 많이 늦었지?"

"아니야. 넌 항상 바쁘니까."

정국이로 종소리가 멎을 줄 알았는데 뒤이어 종소리와 함께 정국이보다 작은 키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마스크를 했지만 분명히 저 눈은.

"민윤기?"

"아, 나 티 나?"

"완전히 티 나요."

"나름대로 숨긴 건데."

"되도록이면 안쪽으로 들어와 계세요."

    

오늘은 어쩐 일로 민윤기까지 온 걸까? 작곡에 작사까지 내가 욕심내는 부문해서 당당하게 실력을 뽐내는 인물을 가까이서 만나니 괜히 긴장이 된다.

    

"윤기 형이 자꾸 따라오려고 해서 결국에는 데리고 왔어. 미안해."

"아니야. 같이 오면 좋지."

"난 햄이랑 둘이서 노는 게 더 좋은데."

    

정국이가 칭얼대는 중에 윤기가 내가 그리고 있던 악보에 눈길을 준다.

    

"너 작곡도 해?"

"네? 아니, 그게. 작곡한다고 하기에는 형편없어서."

"좀 봐도 돼?"

"안 되는데."

    

안 된다고 해도 보실 거라면 왜 물어보신 거죠. 윤기는 내 악보를 어느새 낚아채서는 방금 전까지 쓰고 있던 곡과 앞 편의 곡들을 집중해서 훑어본다.

    

"확실히 다듬어지지 않은 솜씨네."

"네. 그렇죠."

"형은 왜 햄이한테 악담을 해?"

"악담이라니. 사실이지."

    

윤기는 일에 있어서 참으로 냉정하구나. 어쩐지 형식적으로 곡이 좋다고 하는 것보다 멋있어 보인다.

    

"역시 나 혼자 올걸 그랬어."

"응? 왜?"

"햄이 눈이 나보다 윤기형을 더 많이 보니까 싫어."

"그랬어? 악보 때문에."

"잘 봤어."

    

윤기는 나에게 다시 악보를 건네줬다. 나는 악보를 가방 안에 숨기고 정국이를 마주봤다.

    

"뭐 마실 거 줄까?"

"핫초코!"

"난 아메리카노."

"네. 준비해드릴게요. 안쪽 테이블에 앉아계세요. 지금은 손님 없으니까 괜찮을 거 에요."

"그럼 부탁해. 이리 와. 전정국."

"아, 형은 왜 따라와서 방해야?"

    

정국이와 윤기는 사이가 좋구나. 윤기가 정국이의 귀를 잡아끌고 테이블까지 갈 정도면 말이야. 아프겠다. 음료 준비가 끝나자 다음 알바인 오빠가 왔다. 오빠는 다행히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지 윤기와 정국이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뒷정리는 놔 둬. 내가 할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니야. 친구들 같은데 가서 놀아야지."

"감사합니다."

    

나는 오빠의 배려에 환하게 답하고 정국이와 윤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정국이는 어쩐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알바오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국아. 왜 그래?"

"왜 다음 알바가 남자야?"

"원래 여기서 알바 하시던 분이래. 처음 왔을 때 많이 도와주셨어."

"근데 왜 오빠야?"

"그야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완전 별로야. 친하게 지내지 마."

"응?"

    

정국이의 행동에 윤기의 웃음이 빵 터졌다. 윤기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는 정국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웃어?"

"너 완전 질투의 화신이네."

"질투의 화신이라니. 내가 언제 질투를 했다고 그래?"

"여기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쭉 진행중?"

    

윤기의 돌직구에 정국이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토마토 꾸꾸가 되어버렸다. 질투라니 그럴 리 없겠지만 토마토 꾸꾸도 꽤나 귀엽다. 카메라가 있었다면 당장 담았을 정도로?

윤기이는 정국이를 한참을 놀려 먹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햄이라고 했지?"

"그건 내가 부르는 애칭이거든?"

"나도 관심이 많으니까 햄이라고 부를게."

"왜 형이 관심을 가져?"

    

정국이는 햄이라는 애칭을 빼앗긴 것에 대한 질투로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윤기는 담담한 얼굴로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햄이 너는 작곡을 언제부터 한 거야?"

"음, 초등학교 때부터 낙서처럼 하긴 했는데. 완성작도 낙서 같아서."

"확실히 저대로는 못 쓰지."

    

다시 한 번 윤기는 시원하게 팩트 폭력을 날려주신다.

    

"형 왜 자꾸 우리 햄이 디스해?"

"언제부터 저 햄이가 네 햄이야?"

"내 홈마니까 내 햄이야!"

"햄아. 너 갈아탈 생각은 없냐? 나로."

    

내가 잘 해줄게. 윤기는 어떻게든 나를 정국이게서 뺏어오겠다는 기세로 나를 바라봤지만 정국이는 나에 대한 믿음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네.

    

"나는 원래 정국이 홈마니까."

"와. 개인팬이야?"

"개인팬이라니 방탄소년단 전체를 좋아하지만. 사진은 한 명을 파는 편이 잘 나오니까."

"그러니까 그 한 명이 누구든 그렇게 상관있는 건 아니잖아."

"왜 상관이 없어?"

    

정국이는 내가 자신의 홈마여야만 하는 이유를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내 눈치만 보고 있다.

    

"왜 상관있는데?"

"햄이는 날 좋아하잖아? 그렇지?"

"와, 왕자병. 대박."

    

얘 진짜 연예인병있나봐. 완전 별로지? 그러니까 나한테 갈아타. 나는 생각도 못한 정국이의 질문에 얼음상태가 됐고 윤기는 그 틈을 노려 어필을 하기 시작한다. 한 번 말을 잘못 뱉은 정국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가 너무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불안함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다.

    

"음, 확실히 저런 이미지인 줄은 몰랐어."

"햄아. 아니야. 나 원래 이런 스타일 아닌데."

"아, 그래?"

"햄아. 믿어줘."

    

윤기는 정국이가 나에게 매달리는 상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킬킬 대며 웃기에 바빴다. 아무래도 윤기이는 정국이를 놀리러 온 게 분명했다.

    

"너 노래는 좀 불러?"

"노래? 부르는 건 좋아하지."

"그럼 다음에 노래 불러 봐."

"다음에?"

"정국이 네가 데려와."

"어디를?"

"우리 작업실."

    

잠깐만. 내가 윤기의 말을 바로 들은 게 맞다면 윤기가 지금 날 방탄소년단의 작업실로 초대한 건가. 나 진짜 성덕 오브 성덕이 되는 건가. 정국이도 윤기의 말이 의외였나 보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정국이를 바라보는 걸 보면.

    

"그렇지만 매니저 형이 가만히 있을까?"

"내가 저 목소리, 시험해 보고 싶어졌어."

"시험을 해?"

"응. 제법 듣기 좋잖아. 말 하는 목소리도."

    

윤기는 턱을 괴고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왜 윤기가 백설탕이라고 불리는지 알겠다. 앳된 얼굴에 천진한 눈웃음 하지만 반대로 박력 있는 행동이랄까.

    

"형, 햄이한테 작업 걸지 마라? 형은 다른 홈마들 많잖아."

"햄이가 딱히 홈마라서 마음에 드는 건 아니거든?"

"뭐야. 무슨 말이야? 그게? 난 아직 햄이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

"형이 뭔데 보내고 말고야?"

    

누가 보면 친오빠라도 되는 줄 알겠네. 난 항상 햄이를 그런 마음으로 소중하게 대하고 있다고. 왜 그냥 아빠를 한다고 그러지? 윤기와 정국이의 신경전은 끊이지 않고 계속 됐다.

정국이와 단둘이 만날 때와 윤기와 셋이서 만날 때의 느낌은 색달랐다. 처음에는 완전 팬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지만 대화를 하면 할 수 록 그들은 내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