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ㅣ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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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합의를 해줄 생각이 없었다. 내 머리는 절대 합의 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내 가슴이 쓰려왔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있을 때 뇌리에 스친 할머니의 말.
“아무리 너희 부모가 밉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이야.”
“나도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가면 네가 의지할 사람은 너랑 가족 밖에 없어 서아야.”
“너희 부모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너는 그걸 참고 견뎌야 해.”
“가족 아니면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 물론 당시에는 네가 힘들겠지만 그게 탁월한 선택일 거다.”
“만일 너희 부모와 법적 분쟁까지 가는 날이 있더라도, 당시 너를 생각하지 말고 미래의 너를 생각해.”
할머니의 말을 듣고 결정했다. 여기서 내가 이 사건으로 질질 끌게 된다면 의사로서 도리도 못 지킬 것 같았다. 법적 분쟁까지 가게 된다면 바빠질 거고, 환자를 봐줄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내가 원했던 건 의사가 되어 더이상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사건 하나로 환자들을 소홀히 봐준다면 분명히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흉부외과는 한 시라도 빨리 처치를 하지 않으면 위급한, 그런 기관을 다루는 곳이니까.
그렇기에 내 결정은 합의를 해주는 것이었다. 법적 분쟁을 하게 된다면 나와 교수 님 또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걸 알기 때문에. 여기서 합의를 해준다면 당장은 많이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나중을 생각한다면 이게 맞는 선택이었다.
결국 내가 원하지 않았던 돈을 받으며 원만한 합의가 진행되었다. 물론 사과까지 받았지만, 진정성이 없는 사과였다. 굳이 받고 싶지도 않은 그런 사과.
그 사과를 받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여기서 참기로 했다. 많이 억울했다. 굳이 필요 없는 돈을 받으려고 내가 이 짓을 한 건가 싶었다.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하고 싶었지만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만두었다.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핏줄이라는 게 죽기보다 더 싫었다.
같은 핏줄을 가졌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내고 싶었다. 억울한 감정이 점점 독기로 변해갔다. 지금까지도 노력했지만, 더 노력해 최고의 의사가 될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내가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건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이제 원하는 건 그들에게 최고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