也許,我們[短篇小說]

也許,我們[短篇小說]

<어쩌면,  우리>





소나기가 쏟아지는 그 여름날 밤, 그는 그 시린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렸다. 그의 이름은 강의건. 4년전부터 한 여인만을 사랑했고, 그 여인과 미래를 약속하려했고, 그리고 어제 둘의 미래가 산산조각났다. 지겨워졌다는 그 한 마디로 그와 그녀의 관계는 쉽게 정리되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말이다. 그에게는 아직 그녀와의 이별도, 지금 맞고있는 빗물도 모두 꿈같이 느껴졌다. 일어나지도 않을 허상. 딱 그렇게만 느껴졌다. 얼마나 그렇게 기다렸을까? 저 멀리 사람이 걸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역시나였다. 짙은 허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자, 갑자기 지나가던 여자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강의건님 맞으신가요?"
"네, 제가 강의건입니다..." 
어렵사리 대답을 한 후 들린 답은 충격적이었다.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나온 허망감보다 짙은 죄책감, 절망감이 발목부터 꾸물꾸물 천천히 그를 집어삼켰다.






"저..여주 언니에요."
"...여주 누나분..?"
"네...여주가 꼭 전해달라고 한 편지가 있어서요"
"편지..?"
"..."





"여주가...며칠 전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병원에 입원해서 잘 회복되나 싶더니 갑자기 안좋아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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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건이에게-



너무너무 사랑하는 우리 의건아~ 나 여주야! 내가 질렸다고 해서 상처받았지..?사실 나 하나도 안질렸어! 아주아주 많이 사랑하고있어ㅎㅎ지금 나는 병원에서 너에게 이별통보를 하고 바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갑자기 몸이 안좋아져서 의사선생님이 나 길어야 3일이라고...그러더라..?지금 내 초췌하고 아픈 모습 너에게 보여주고싶지 않아서 더 모질게 말했어. 상처받았다면, 그냥 다 잊어줘. 진심 아니었어..아 그리고 우리 언니가 이 편지랑 같이 전해준 통장 있잖아, 그거 다 너꺼야. 결혼식 비용인데, 우리 결혼식 못하면..그거 다 너가 써. 너를 위해 모은 돈이기도 하니까! 정말정말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거야. 내가 하늘나라에서도 너 계속 지켜볼거니까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의건이의 신부 이여주-






편지를 모두 읽고 그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내 사랑이, 내 여주가 내 곁을 떠났다. 더욱 화가 나는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잠시나마 너를 미워했다는 것. 미친듯이 눈물을 쏟아내며 울부짖는 그를 보며 여주의 언니도 눈물을 훌쩍이며 이내 자리를 떴다. 편지가 혹여 빗물에 젖기라도 할까 가슴에 꼭 끌어안고서 울어젖히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짝을 잃은 늑대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발목부터 올라오던 죄책감과 절망감이 그의 심장을 천천이 옥죄었다. 순식간에 그것에게 심장을 물어뜯겼고 그 혈관들을 따라 독이 퍼졌다. 독은 곧 손끝까지 퍼져 경련을 일으켰다. 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는 품속에서 반지 한 쌍을 꺼냈다. 그녀의 손가락에 꼭 맞을 크기로 제작한 반지. 안쪽으로 서로의 이니셜을 새겨 둔 반지. 그녀의 하얗고 예쁜 손에 끼워주려했던 반지. 이제는 주인을 잃어버린 그 반지를, 그는 하염없이 바라보며 울었다. 그러다가 곧 울음을 멈추고는 도로 한 가운데로 달렸다. 순간 눈 앞이 밝아지더니 경적소리가 미친듯이 울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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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떠는 그 상황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속삭였다










"어쩌면, 우리..."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