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아 나 오늘은 밥 안 먹을래"
"뭐? 왜"
"그냥.. 오늘은 진짜 생각이 없어. 오빠한테는 나 아파서 보건실 갔다고 해주라"
"야.. 그렇게 말하면 형도 밥 안 먹고 보건실 달려갈걸?"
"..아 그럼 너가 잘 막아봐! 나 잘거야"
"어휴 너 때문에 내 수명이 줄어든다"
일주일 전부터 자꾸 기분이 이상했다. 범규가 더이상 나한테 아는 척을 안 했다. 물론 헤어진 사이긴 하지만.. 뭐랄까, 전에는 어느정도 나를 신경 쓰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예 투명인간 취급 하는 것 같달까
그리고 일주일 전에 내 앞에서 운 것도 그렇고.. 신경 쓰여서 미치겠다. 지금까지도 오고 있는 태현이의 연락에도 집중을 못 하겠다. 괜히 미안해지네
보건실에 가니 점심시간이라 그런가 선생님이 안 계셨다. 나밖에 없네? 개이득.
"으으... 따뜻해"
이불을 꼭 끌어안으며 눈을 붙였다.
그치만 누군가 문을 존나 세게 열고 쿵쿵 거리며 들어오는 바람에 눈을 다시 떴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너.. 어디 아파?"
"뭐..야"
"약은 먹었어? 기다려봐 약이라도 찾아보게"
"아니 .. 뭐 해 최범규"
"너 아프다며"
갑자기?... 뭔가 급하게 서랍을 뒤적거리며 약을 찾는 범규의 행동에 나는 얼이 빠졌다. 지금 뭐 하는거야..
"나 아프다고 누가 그래?"
"...최수빈이"
"최수빈이 너한테 말해줬다고?"
"아니, 지나가다가 들었어"
"나 안 아파"
내 말에 서랍을 뒤적이던 범규가 그제서야 하던 짓을 멈추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진짜 최수빈 시발..
혼자 중얼거리며 욕을 하기에 어이없어 쳐다봤다.
"너 여자친구 있잖아 여기와서 이러면 안되지"
"..."
"안 그래? 왜 너가 나한테 신경을 써"
"..야, 너는 그게-!"
지잉- 지잉-
진동 소리가 들렸다. 내 폰은 아니였다. 최범규가 뭐라 말하려다가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어지며 급하게 보건실을 나가려했다.
"야 최범규!"
"...너"
진짜로 아프면 안 돼. 문을 닫으려다 뜬금없이 아프지 말란다. 또다시 찾아온 정적이 낯설었다.
아..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아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게 뭐야..쟤는 왜 자꾸.. 하,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
.

"단축수업 개이득. 야 오늘 우리 집 갈래?"
"너네 집은 왜"
"엄마가 너 데리고 오래 반찬 준다고"
"아줌마가 주시는거면 당연히 가야지"
수업이 끝나고 수빈이랑 교문을 빠져나왔다. 연준오빠는 고3이라 오늘부터 야자도 한다고 했다.
우리들의 미래겠지..
"그나저나 김여주 요즘 무슨 일 있냐?"
"왜?"
"그냥 생각 많아보여서"
누가 오랜 친구 아니랄까봐 바로 알아보네. 수빈이 말이 맞았다 요즘 생각이 너무 많다. 아까 범규와 있었던 일을 말해주면 바로 정색하며 쌍욕 하겠지?
그 때였다.

"범규야, 너 내가 모를줄 알았어?"
"...미안"
"어쩌지.. 한번만 더 그러면 내가-"
"다시는.. 안 그럴게"
"흐음... 거짓말"
바로 옆 골목에서 들리는 김예림과 범규의 목소리였다. 수빈이도 눈치 챘는지 우리 둘다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갈까?"
수빈이가 내 눈치를 보며 귓속말을 했다. ..아니야 뭘 돌아가. 요 앞이 집인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수빈이와 그 옆을 지나쳤다. 그 둘은 우리를 못 봤는지 신경도 안 쓰며 큰 소리로 얘기 하고 있었다.
"이제 김여주 안 찾아갈게. 걔는 건들지마"
뒤에서 들리는 최범규의 마지막 말에 발걸음을 또다시 멈췄다. 뭐? 저거 내 얘기 맞지

"왜 그래?"
"아.. 아니야. 가자"
다행히 수빈이는 못 들었나보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수빈이 옆으로 뛰어갔다.
***
다음날 학교, 오늘은 어제보다 더 기운이 없다. 어제는 꾀병이였는데 오늘은 진짜 몸이 아프다.
어제 한번도 못 본 연준오빠가 내가 아프다는 걸 알았는지 쉬는시간 마다 내 옆에 있었다.

"아까보다 열 내렸네. 다행이다"
"오빠.. 나 보건실에 좀, 데려다주라"
"괜찮아? 그냥 조퇴할래?"
"아니 그냥 좀 쉬고싶어.."
연준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날 일으켰다. 아니 일으켜줄 것 까지는 없는..데, 그래도 몸에 힘이 없어서 오빠가 하는데로 가만히 있었다.
힘 없이 연준오빠한테 의지하며 복도를 걷고 있는데 범규와 박태정,김예림이 보였다. 언제부터 저 셋이 같이 다녔지? 박태정은 심지어.. 질도 안 좋은 앤데
"저기 보지말고 걷기나 해"
"아, 알았어.."
그 쪽을 보는걸 오빠도 알았는지 내 소매를 오빠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지만 조용히 그들을 지나가려던 우리의 계획은 무너졌다. 박태정이 오빠한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형 안녕하세요"
물론 연준오빠는 들은 척도 안하고 지나갔지만 박태정이 한 번 더 입을 뗐다.
"씹네"
그 말에 연준오빠가 뒤를 돌아봤다. 에반데..
박태정이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저 새끼 왜 시비야 미쳤나.. 나도 화나는데 연준오빠는 얼마나 빡칠까.
"오빠 그냥 가자"
"..그럴거야. 보건실이나 가자"

"..."
보건실이라는 단어에 최범규가 여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걸 멈추고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그치만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하는 척 하지 말라고 나쁜 새끼야.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휙 돌렸다.
.
.
"여주야 나 야자 쨀까?"
"오빠 미쳤어? 대학은 가야지"
"하루 빠진다고 대학 못 가나.."
"오빠 하루만 빠질거 아니잖아. 오늘 꼭 야자 해"
"..알았어 곧 수업시간이니까 나 갈게"
응. 대충 짧게 대답을 한 뒤 눈을 감았다. 진짜 몸 상태 최악중에 최악이다..기분도 안 좋고.
***
눈을 떠보니 30분이 지나있었다. 아 한참 수업하고 있겠네... 그래도 조금 잤다고 몸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볼ㄲ..
"아악!..."
뭐야?... 내 옆에 최범규가 의자에 앉아서 폰을 보고 있었다. 귀신인줄 알았네!..

"깼어?"
"너가 왜 여기에 있어?.."
"너 아프다길래"
"뭐야..너.."
내 일에 너무 간섭하는거 아냐? 내 말에 범규가 정색을 했다. 간섭.. 그렇지 간섭 맞지. 헤어졌는데 왜 자꾸 이러는거야
"나한테 할 말이 그런 것 밖에 없어?"
"어. 그것 말고는 뭐라 할 말이 없어. 맨날 무시하더니 나랑 헤어지고, 하루만에 김예림 만나고. 그런데 왜 이제와서 헷갈리게 해? 나한테 미련이라도 남아있어?"
"...나 갈게"
"대답은 하고 가."
"몸 조심하고"
"야! 대답은 하고 가라고"
범규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울 것 같아. 그치만 대답은 진짜 들어야겠어 네 마음이 뭔지 ..
힘겹게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최범규의 팔을 붙잡았다.
"아 씹!..."
범규가 소리를 지르며 내 팔을 뿌리쳤다. 하, 이럴거면 ..어차피 이렇게 나 상처 줄거면서.. 왜 나한테 자꾸
눈물이 나왔다. 자존심은 존나 상하지만 눈물이 안 멈췄다.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부여잡은 최범규가 곧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울어?"
"흐, 너 시발놈아.. 왜, 끄읍-.. 왜 나한테 소리, 지르고"
"야, 야..김여주 그런거 아니야"
"어흑.. 그런게 뭐,가 아니야."
그런거 아니라며 나를 달래주는 최범규가 얄미웠다. 아니, 존나 미웠다.
"...하 씨, 그런게 아니라 나 여기 다쳐서 그래"
"끄흑... 뭐-?"
"그냥 놀라서 소리 지른거야 너한테 그런거 아니야.."
최범규의 말에 팔을 쳐다봤다. 그러고보니까 슬쩍 보이는 소매 안으로 푸른 멍 자국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뭐야?..
"..너 여기 왜그래?"
"..그냥 다쳤어"
"이게.. 그냥 다친거야?"
"응. 그냥 다친거야"
최범규는 거짓말을 못 했다. 내 눈을 피하는걸 보니 이건.. 그냥 다친게 아닌게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