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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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너머로 시끄러운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뻔한 말장난들이 난무하는 익숙한 음성들이
이리저리 얽혀 덩어리처럼 들렸다

내가 당연히 올 거라 생각했던 그들에게
짧은 한 마디로 거절을 표했다


“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보자~ ”


아쉬워하는 혜민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짧다면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니
퇴근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용한 매장 안, 조용한 탈의실과 사무실

옷을 갈아입으며 나는 부스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매장을 나오자마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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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붙은 담배를 한입 크게 빨자
끝부터 서서히 빨갛게 타올랐다

뿌옇게 흩어지는 연기는 유독 더 달게 느껴졌다

몇 입 빨지 않았는데도 금방 짧아진 꽁초는
바닥에 툭 버려졌다

아직 불씨가 남은 꽁초를 발로 비벼 끄곤
자리를 떠났다

이어폰을 꼽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콧노래로 신나게 흥얼거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았다

전에 선물 받았던 배쓰밤을 욕조에 풀고
곧장 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따끈한 온도와 향기로운 향기가 
뜨거운 김에 섞여 모락모락 피어났다

몸통 절반 정도가 물속에 잠겼을 때
가득 차 있었던 물이 욕조 밖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피부를 감싼 온수가 노곤노곤한 몸을 풀어주었다

찰랑이는 물소리가 고요한 욕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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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듯 말 듯 한 상태로
약 20분간 멍하니 반신욕을 하곤
배수구 마개를 열었다

욕조 가득 차 있던 물이 점점 빠지며 수위가 낮아졌다

거품이 묻는 전신을 샤워기로 씻어낸 후 거실로 나오니
한결 몸이 개운해졌음을 느꼈다

머리를 말리며 아까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재생했다

요란한 드라이기 소리에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묻혔지만
나름 그것대로 좋았다

드라이기가 꺼졌을 때
내가 흥얼거리던 구절과 가수가 부르는 구절이 맞닿으면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 노래를 오랫동안 들어왔다는 게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한편 태희가 없는 일상들을
꾸역꾸역 보내고 있던 민호는

본인도 모르게 평소 태희가 즐겨 듣던 노래를
나직이 흥얼거릴 때면
문득 정신이 든 듯 입술을 꾹 다물고 노래를 멈추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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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태희가 올까

평소에 거들떠도 보지 않던 술자리를 나갔지만

내심 태희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 얼굴을 마주하면 다시 흔들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었지만, 마주치지는 않았음 했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부르던가

이상한 감정이 자꾸만 속을 헤집어 놨다

그렇다고 어디에도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웬만한 친구들은 전부 태희와 엮여 있어
말하기가 꽤나 곤란했고

입이 싼 대학 동기들에게 이를 털어놨다간
한순간에 우리 과 학생들의 안줏거리가 될 게 뻔했다

괜찮은 척 지내면 언젠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
태희가 보고 싶어질 때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저으며 이를 억눌렀지만

길을 걷다 그 아이의 향이 코끝을 스칠 때면
어김없이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7년이라는 시간은
잊는다고 쉽게 잊혀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참아 왔던 게 터지지 않도록
잘 다스리는 방법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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