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숑넨] ON AIR, 우리 둘만의 점심시간

ON AIR, 우리 둘만의 점심시간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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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스피커 너머로 울리는 제 목소리가 유난히 이질적으로 들리는 날이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딱 한 달이 지난 4월의 첫째 주 월요일.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3학년 층 복도는 잔반을 일찍 비우고 매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요란해졌다.

정작 나는 그 소란을 뒤로한 채 3층 복도 끝, ‘방송실’이라 적힌 투명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반 아이들과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나를 집무실로 부르셨다.

‘성찬아. 올해 방송부 아나운서 부장이 정해지기 전까지 네가 점심 방송 좀 맡아줘야겠다.

엔지니어 부원 하나랑 같이 팀으로 묶어줄 테니까.’

어쩌다 보니 등 떠밀려 들어오게 된 방송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문 너머로 사선으로 내리쬐는 봄 햇살과 함께, 낯선 아이의 뒷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헤드폰을 목에 걸친 채, 콘솔 기계 앞에 푹 엎드려 있는 아이.

“저기… 안녕?”

내 조심스러운 인사에 엎드려 있던 아이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약간 부스스한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매가 생각보다 날카로웠지만, 눈동자는 졸음이 가득 차 멍했다.

박원빈. 2학년 엔지니어 담당.

이름표를 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항상 교복 차림으로 기타 가방을 메고 다니거나, 체육 시간 외에는 학교 구석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있던 애.

접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던 녀석이 바로 오늘부터 나와 점심 방송을 함께할 짝이었다.

“아. 성찬 선배?”

“응. 오늘부터 점심 라디오 대본 읽기로 한 성찬이야. 잘 부탁해, 원빈아.”

나는 어색함을 달래려 어깨를 긁적이며 활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원빈이는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는 다시 기계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아이는 아니었지만, 벽을 두껍게 치고 있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대본은 거기 오디오 박스 위에 있어요. 12시 20분부터 40분까지 딱 20분 진행이고요. 사연은 아직 들어온 게 없어서, 오늘은 선배가 준비해 온 멘트 읽고 중간에 제가 곡 두 개 틀면 끝이에요.”

“아, 그래? 알겠어.”

생각보다 깔끔하고 건조한 설명.

원빈이는 다시 헤드폰을 머리에 쓰더니 슬라이더 기어를 만지작거렸다. 유리벽 하나를 두고 나뉜 아나운서 부스와 엔지니어 조정실. 마이크 앞에 앉아 헤드셋을 쓰자, 유리 너머로 콘솔을 조작하는 원빈이의 손가락이 보였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믹서의 버튼을 리드미컬하게 누르고 있었다.

‘쟤는 음악 할 때 엄청 진지해지는구나.’

12시 19분 50초. 조정실의 디지털 시계 숫자가 빨간색으로 깜빡였다.

원빈이가 유리창 너머로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셋. 둘. 하나.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동시에 내 앞의 마이크 위 ‘ON AIR’ 빨간 불빛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혜성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4월의 첫 번째 월요일 점심 라디오를 맡게 된 아나운서 정성찬입니다. 다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적막한 부스 안,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학교 전체로 울려 퍼졌다. 미리 적어온 정석적인 오프닝 멘트를 읽어내려가며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 매점 앞에 줄을 서서 빵을 먹는 아이들.

그리고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리 너머, 헤드폰을 쓴 채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원빈이에게 머물렀다.

원빈이는 내가 멘트를 치는 동안 멍하니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살짝 당황했는지 시선을 아주 미세하게 옆으로 돌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조금 간지럽고 귀여워 나도 모르게 오프닝 멘트 끝에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첫 곡은 선선한 봄바람에 어울리는 노래로 준비했습니다. 함께 듣고 오시죠.”

멘트가 끝나고 ON AIR 불이 꺼지자, 원빈이가 곡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곡은 아이돌 댄스곡이 아닌, 조용하고 청량한 밴드 사운드의 인디 음악이었다.

“원빈아, 이 노래 뭐야?”

내가 부스 안 인터콤 마이크를 누르고 묻자, 원빈이가 헤드폰 한쪽을 살짝 내리며 대답했다.

“아, 이거요? 그냥… 요즘 날씨에 들으면 좋은 노래요.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되게 좋다. 꼭 4월 바람 같은 느낌이야.”

내 말에 원빈이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선글라스를 벗은 것처럼 투명해진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것이 우리가 나눈 첫 번째 사적인 대화였다.

방송이 끝나고 정리하는 시간, 원빈이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지만 아까의 그 어색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는 한풀 꺾여 있었다.

학교를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오늘 방송실에서 들었던 그 인디 밴드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가사보다, 콘솔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그 애의 무심한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쩐지 내일 점심시간이 조금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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