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篇小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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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어느 시골 병원에서 만난 그 사람.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이제약간김태형사랑해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허름하고 낭만적인 어느 작은 시골 병원. 병실이 몇 개 없어 다른 사람과 써야 하는 병실. 나는 누구랑 써야 할까, 궁금해 이름을 확인한다. 민윤기, 라는 이름 석 자를 입밖으로 읊어 본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 특이하지만 예쁜 이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내가 병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무언가 크고 무거운 게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고막을 찌르듯 들려온다. 귀가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는데, 간호사님이 너무 죄송하다며 박살이 난 카메라를 치우고 있다. 그 간호사님의 앞에는 링거를 꽂고서 앉아 있는, 피부가 굉장히 뽀얀 어느 남자가 카메라 주인인지 괜찮다고 말한다.


 “어차피 이젠 못 쓰는데요, 뭘. 죄송해하지 마세요.”


 간호사님은 내 인기척에 내 쪽을 돌아보신다. 아, 도시에서 여기로 병원 옮기셨다던 동백 씨, 맞으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간호사님은 두 분이 같이 병실을 사용해야 하는데 괜찮냐며 물어본다. 내가 괜찮다고 말을 꺼내려 하자 민윤기라는 환자는 내게서 고개를 홱 돌리며 창가를 바라본다. 그러곤 무심하게 툭, 내던지듯 말한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곧 있으면 저는 이 병원에 없을 테니깐.”


 그의 말 뜻은 무엇일까. 곧 있으면 퇴원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곧 있으면 나와 같은 처지가 된다는 것일까. 박살이 난 카메라를 보고서 잠시 그립다는 눈빛을 하고는 이젠 못 쓴다는 말을 했던 것을 보니 곧 나와 같은 처지가 된다는 쪽이 맞는 것 같다.


 그는 지금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바깥을,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혼자 엉성하게 땅에 박혀 있는 나무를. 그는 지금 무슨 표정을 하며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그는 여전히 내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는다. 새하얀 창밖, 또는 사진집만 바라보고 있을 뿐. 나는 그런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그림 그리려고 꺼냈던,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를 바라본다. 마치 소복이 쌓인 눈같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도 피부가 눈처럼 하얗던데. 나는 또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그와 내 시선이 마주한다. 그는 불만이 있어 보이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나를 쏘아보고 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 그게……”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점심밥을 들고 계신 간호사님께서 들어오신다. 내 말은 자동으로 끊기게 되고 이 병실엔 차가워진 공기를 타고 흐르는 어색한 기류만이 남아있다. 두 분의 간호사님께서는 나와 그에게 점심밥을 주신 후 나가신다. 그는 밥을 깨작거리더니 이내 먹지를 않는다. 그래서 저렇게 손목이 가늘고 마른 건가. 나는 맛은 없지만 어쨌든 먹기는 해야 하기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역시 병원밥은 맛이 없다.


 다 먹고 나서 그를 바라보니 그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녹아서 푸른 잔디 위에 엉성하게 남아있는 새하얀 눈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예전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던 나와 겹쳐 보인다.


 “나가고 싶어요?”


 “…”


 “계속 창밖을 보시길래.”


 “…”


 “아니면 카메라에 담고 싶은 건가?”


 그제서야 그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아까 간호사님께서 박살내신 카메라, 그쪽 거 같길래.”


 “…”


 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내게서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러곤 또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쨍쨍하게 뜬 해가 새하얀 눈을 전부 녹이고 있었다. 그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가 뜬다. 마치 저의 눈에 이 모든 풍경을 담으려는 듯, 마치 저의 눈이 카메라라는 듯.


 “치… 대답 좀 해 주지.”


 나 또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러곤 새하얀 도화지 위에 창밖의 풍경을 담는다. 마치 그가 저의 눈에 풍경을 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