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篇小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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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침범한 작은 섬과 작은 섬을 침범한 바다.


고깃 씀.




 어느 한 바다 위에 자리잡은 작은 섬. 이 섬이 바다를 침범한 것인지 바다가 섬을 침범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큰 파동을 일으키며 올라오는 파도가 큰 바위를 건드리며 찰박인다. 그러다 이내 모래사장까지 침범한다. 아이들이 오목조목 모여 만들었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간다. 휑하던 모래사장이 하나의 모래성으로 인해 외롭지 않게 보였는데, 파도가 모래성을 휩쓸고 감으로써 모래사장은 또 다시 휑해진다.


 휑하기만 한 모래사장에 내가 서 있다. 노을을 담고 일렁이는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잠시 잠잠하던 바다가 내 시선을 느끼고서 또 다시 큰 파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큰 파도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모래성처럼 저 파도에 휩쓸려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큰 파도에 익숙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다만 보면 정신이 멍해진다. 내 모든 혼들을 빼앗긴 것만 같다. 바다와 눈이 마주침으로써 내 모든 정신과 영혼들이 쏟아져 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바다는 나의 혼을 담고 있다.」


 나의 혼을 담은 바다는 더 큰 파도를 일으키며 내게 다가온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아님 내가 마음에 든 것일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를 모래성처럼 휩쓸고 간 것일까 아님 내가 마음에 들어서 자신의 품속으로 삼켜버린 것일까. 알 수 없는 바다의 행동에 나는 심해로 잠식되어 간다. 점점 더 깊이, 더 깊이. 바다의 물로 인해 내 숨통은 점점 멎어간다. 점점 고통스럽게, 더 고통스럽게.


 물을 머금은 코는 금방 맹해진다. 더 이상의 숨을 쉴 수가 없다.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의 힘이 남아있지 않다. 눈이 점점 감긴다. 정신이 아득해져만 간다. 그리도 깨끗했던 바닷속이 암흑하다. 이 느낌, 열일곱 때도 느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의 생각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그 순간, 내 몸이 위로 솟아오른다. 거친 파도가 아닌 잔잔한 물결이 내 육체를 담고서 뭍으로 오른다.


 그대로 쓰러진 나는 일어날 힘조차 나질 않는다. 그저 눈을 뜰 힘만 남아있을 뿐.


 잔잔하게 볼을 스치는 바닷물에 구태여 눈을 떠 본다. 어딘가 익숙한 이 느낌. 흐릿한 시야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들어온다. 아, 살아있구나. 평소 보던 하늘임에도 오늘따라 더욱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일까.


 흐릿한 시야로 누군가 침범한다. 시야가 흐릿한 탓일까 누구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누구냐고 물어보려 입을 떼어 보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목소리도 나오질 않는다. 그저 입만 벙긋벙긋할 수 있을 뿐.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 누군가는 낮은 중저음 목소리로, 동굴같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스쳐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울아, 정신 차려 봐. 너울아.”


 그는 너울아, 하며 내 이름을 부른다. 오랜만에 듣는 내 이름. 항상 할머니께서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부르셨는데. 거의 잊어갈 때즈음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되새겨 준다. 너의 이름은 너울이야, 하고. 그는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인데, 점점 선명해져 가는 시야로 그의 모습이 잘 보여 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잔잔한 물결로 날 살려 준 넌 대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