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62화. 축제

sophie97
2026.07.17瀏覽數 18
축제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전이었다.
막 외출 준비를 마칠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자, 미겔이 서 있었다.
"준비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릴께요."
"아니에요. 준비 다 했어요.
출발해요."
이 그림 같은 곳에서 하는 축제라고 하니
지난 주 미겔에게 축제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손꼽아 기다렸다.
당연히 마리아와 안토니오도 함께 갈 거라고
예상했는데 현관문 밖에는 미겔 뿐이었다.
"마리아랑 안토니오도 함께 가는 거 아니었어요?"
"어머니가 오전에 컨디션이 안 좋으셔서
이따 오후에 아버지와 함께 가시겠다고 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이런 축제에 빠질 분이 아니에요."
"아..어디가 아프세요?"
"어머니가 이 맘때쯤 사고를 당하셨어요.
심리적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 일인데도 항상 사고 당한 달이 되면
몸도 마음도 아파하세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힘드셨겠네요.."
"그땐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었죠.
어머니의 사고 때문에 아버지가 간호를 하느라
변호사 시험도 포기했었구요."
"아...너무 안타깝네요...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아버지는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오히려 자신이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요.
그 때 시험을 봤었어도 떨어졌을 거라구요.ㅎ"
미겔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안토니오라면..
내 꿈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을까?
내가 마리아였다면...
그의 꿈보다 나를 선택하게 할 수 있었을까?'
미겔의 말을 듣고 난 후,
'내가 한 선택이 맞는 거였을까?'
처음으로 내 선택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시간을 보낸 후,
훈지씨를 만났더라면 내 선택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안토니오의 선택도, 마리아의 사랑도
나의 결정과는 많이 달랐지만,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스페인에 와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미겔과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에
더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까지 함께 먹으면서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미겔이 불그스름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은 왜 스페인에 오게 된 거에요?
어머니가 당신이 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어서
스페인에 오게 되었다고 얘기해 줬어요.
그게 다에요?"
미겔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마리아를 떠올렸다.
"내 인생이 조금 지겨워질 때 쯤이었어요.
더 이상 사는 게 재미없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졌어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구요.
그리고,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게 된 것도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왜 헤어지게 됐는지 물어봐도 돼요?
아직 말하기 힘든 상태라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왜...헤어지게 되었냐면..
내가 그의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상황이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걸림돌이요? 왜요?
당신이 그 사람의 성공을 방해했어요?"
그의 표정을 보니,
'걸림돌'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들리는 것 같았다.
"방해...방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만약에 내가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방해가 되었을 수도 있죠."
"상대도 당신과 헤어지고,
성공하는 걸 선택한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헤어지는 건 내 선택이긴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을 거에요."
미겔은 이해하지 못 하는 눈빛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해요?"
"경험상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모든 경우의 수가 항상 같은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잖아요.
수학 공식도 아니고...
인생이고 사람 일인데.."
난 미겔의 말을 듣고, 그 다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믿었던 가치관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축제 때 찍은 사진들을 랩탑으로 옮겼다.
미겔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와서 나는 하루도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 이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았지?" <63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