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86화. 혼비백산


나는 모임이 취소되는 바람에

한가한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훈지 씨는 내가 잠들 때까지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훈지 씨는 게스트룸에서 자고 있었다.




'새벽에 들어와서 나 깰까봐

 여기서 자는 건가?'




오늘은 촬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언니였다.





"언니. 왜?

 나 지금 출근하려고 나가는 중인데?"





"지금? 엄마 곧 도착하실텐데.

 엄마 뵙고 나가."





"뭐???? 엄마가 온다고?

 아.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엄마가 너한테 미리 말하면

 오지 말라고 한다고 가만히 있으랬어.

 가서 반찬 갖다 놓고

 청소해 주고 오신다고 했는데."





"아!!! 진짜 어떡해. 나 몰라!!"





"왜? 왜 그러는데?"





"집에 훈지 씨 있단 말이야."





"그 스페인 친구 가면서

 박훈지도 집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 후에 짐 싸 갖고 들어왔어."





"니네 지금 동거하고 있다는 거야?

 미쳤어 미쳤어 얘가.

 너 어쩌려고 그래?"





"몰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온다며?

 빨리 끊어봐. "





"나는 주차 등록해 놓으라고 전화한 건데."





"알았어. 언니 일단 끊어."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부터 해야 할지

순서가 생각나지 않았다.





우선 훈지 씨부터 깨워야 했다.




나는 게스트룸으로 들어가

자고 있는 훈지 씨를 흔들었다.





"훈지 씨, 일어나요!! 빨리 일어나요!!"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훈지 씨!!!! 일어나야 돼요. 빨리요!!!"





그가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





"정아 씨. 나 잠든지 얼마 안 됐어요."





나는 그를 한 번 더 흔들었다.





"엄마가 집으로 오고 있어요.

 곧 도착하신대요."





그는 비몽사몽인 채로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순간 잠이 확 깬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라구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정아 씨 어머님이 오신다고요?"





"방금 전에 언니한테 전화왔어요.

 훈지 씨 물건 숨겨요!! 빨리빨리!!

 뭐부터 하지?

 게스트룸에는 짐이 너무 많아서

 치우기가 힘든데..."





훈지 씨는 왔다 갔다 서성이기만 했다.






"안 되겠다.

 게스트룸은 그냥 문을 잠가놔야겠어요.

 훈지 씨도 게스트룸에 숨어 있어요.

 문이 고장 났다고 할게요.

 빨리 침실로 가서 훈지 씨 물건

 다 이리로 가져와요."






훈지 씨는 침실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나는 현관에 있는 남자 신발들을

우선 신발장에 다 넣어놓았다.





"그 다음에 뭐 해야 하지?

 거실이랑 주방은 괜찮나?"





훈지 씨는 침실에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게스트룸으로 옮겼다.





"드레스룸에 있는 훈지 씨 옷은 어쩌지?

 대충 남자 옷으로 보이는 것만 빼서

 게스트룸으로 옮겨줘요. 훈지 씨."





"알았어요.

 욕실, 욕실!!

 정아 씨, 욕실에 있는

 칫솔, 면도기 그런 것도 치워야 돼요."






"아!! 맞다, 맞다!!

 욕실 것도 치워야지!!"




나는 손살같이 욕실로 가서

남자 물건들을 모두 선반 안으로 넣었다.





그때,

차량이 주차장에 입차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훈지 씨. 빨리 화장실 갔다가

 게스트룸으로 들어가요.

 안에서 문 잠그고 소리 내면 안 돼요.

 기침, 재채기 같은 것도 안 돼요.

 알았죠?"





"알았어요. 나는 걱정 마요.

 정아 씨, 당황하거나 그러면 안 돼요.

 잘할 수 있죠?"





"아... 몰라요.

 후후!!"





나는 숨을 고르고

주방으로 가서 찬물을 한잔 마셨다.




물잔을 내려놓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하.... 잘 해야 하는데..."





나는 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아침부터 웬일이야?"





"응. 언니가 전화했지?

 너 카페 나가기 전에 잠깐 얼굴 좀 보려고.

 나 거의 다 도착할 때쯤 전화하라고 했는데..."






"반찬은 언니도 가끔씩 갖다 줘.

 사다 먹으면 되기도 하고..."





"사 먹는 거하고 같니?"





엄마는 조리대에 반찬통을 담아 온

쇼핑백을 올려놓았다.



반찬통을 꺼내어 냉장고에 정리해

넣으면서 말했다.





"온 김에 엄마가 청소도 좀 해 놓고 갈게.

 너는 출근해."





"아니야 아니야.

 청소는 어제 내가 싹 다 했어.

 내 물건 건드리는 거 싫으니까 청소하지마."





"그대로 다시 놓으면 되지."





"아니야. 싫다니까!!

 청소 하지마!!"





"아우... 알았어.

 너 오늘 왜 이렇게 유난이야?

 그리고, 엄마 왔는데 커피도 한 잔 안 줘?"






"커피도 마시려고?

 나 나가야 되는데..."






"아니... 딸이 카페 사장인데

 엄마 커피도 한 잔 안 주고 내쫓는거야?"





"아우...

 아침 시간에 바쁜데 뭐 하러 왔어?"






"주말에 한 번 좀 오라니까

 지가 안 오고..."






"엄마, 내가 나가면서

 단지 안에 맛있는 커피로 사 줄께.

 나 지금 나가야 되니까 같이 나가자."






"엄마 지금 막 왔어.

 그럼 물이라도 한 잔 줘."





나는 하는 수 없이 커피를 한 잔 내려

엄마 앞에 놓았다.





"정아야. 원희가 얼마 전에 집에 왔었다.

 너한테 얘기했어?"





"원희? 원희 오빠 말하는 거야?"





"어... 내 번호로 글쎄 전화를 했더라고...

 그래서 집 주소 알려 달라고 하더라.

 너랑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서

 한 번 뵙고 싶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집으로 왔었다고?"





"학생 때나 지금이나 애가 반듯하니...

 그런데 어쩌다가 이혼을 해 갖고는...쯧쯧."





"엄마, 미안한데 내가 월요일 아침에는

 더 바빠서 지금 나가야 할 거 같은데..."





"엄청 보채네...

 잠깐만, 그럼 화장실 좀 다녀올께."





나는 거실에서 안절부절못한 채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팔짱을 끼고 현관문 쪽으로 이끌었다.





"아니...

 그런데 게스트룸 방문은

 왜 이렇게 꼭 닫아놨어?"




"어? 어... 방문이 안에서 잠겼나봐.

 아저씨 불러서 열어야지.

 요새 잘 안 들어가서 괜찮아."





엄마가 확인이라도 하듯

게스트룸 방문 손잡이를 흔들었다.





"안에서 잠겼다니까 엄마."





"이거 머리핀 같은 걸로 열려.

 무슨 이런 걸로 사람까지 불러.
 
 젓가락 좀 가져와봐."





"아니야... 엄마 내가 유튜브 보면서 해 볼께.

 빨리 나가자.."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빨리 나가자니까. 엄마.

 나 벌써 늦었어."





엄마의 등을 떠밀며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가 나가기 전에 뒤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유정아.

 너 부모한테 소개 못 시키는

 연애는 하는 거 아니야.

 알지?"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뭐?

 내가 무슨 연애를 해, 지금...?"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엄마 아빠한테 말 못 하는 건

 이미 너도 그 답을 알고 있어서야."





"엄마, 나 바쁘다는데 왜 자꾸 그래.

 빨리 나가, 빨리."





나는 엄마가 차를 타고 떠나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현관문을 열자

훈지 씨가 게스트룸 문을 열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훈지 씨. 나에요 나.

 많이 놀랐죠? 미안해요..."





"정아 씨.

 어머니가 뭔가 눈치채신 것 같죠?

 현관 앞에서 하시는 말씀이..."





"훈지 씨도 그렇게 느꼈어요?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화장실에서 뭘 보셨나?"






"훈지 씨.

 우선 걱정하지 말고

 내 침실 가서 더 자요.

 짐은 이따 나 오고나서

 같이 정리해요."




훈지 씨는 나가려는 내 손을 잡더니

살며시 안았다.




"나의 세모네모,

 이따 카페 끝날 때 쯤에

 내가 데리러 갈게요.

 우리 오래간만에

 밖에서 데이트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계산하지 않아서 좋아."

 <87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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