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주
— 오늘 늦어?
전정국
— 응.
김여주
— 나 오늘 저녁에 친구 만···,
‘쾅’
김여주
— 말도 안 듣고 나가네. 무관심해도 어떻게 이렇게나 무관심하냐.
오늘 저녁에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혹시나 늦을까 봐 미리 말해두려고 했는데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전정국이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난 전정국의 모습을 성숙해져 가면서 성격이 변한 거라고만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김여주
— 아, 몰라. 자기가 내 말 안 듣고 나갔는데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사실 친구가 남자이다. 결혼하고 나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인데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난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김여주
💬 어디야?
친구
💬 앞에 봐봐.
난 앞을 보라는 친구의 말에 앞을 봤다. 앞을 보니 친구가 딱 서 있었다.
김여주
— 박지민!
박지민
— 김여주, 잘 지냈냐?
김여주
— 나야 맨날 똑같지.
박지민
— 그런데 살이 더 빠진 거 같다?
김여주
— 아··· 그래? 요즘 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박지민
— 밥을 안 먹어?
김여주
— 아, 다이어트 중이라.
박지민
— 그러다 쓰러진다. 밥부터 먹자.
김여주
— 내가 얼마나 열심히 버텼는데. 안 돼.
박지민
— 씁- 예약해 놨어. 나 만나는데 밥을 안 먹으려고 했다고?
김여주
— 참··· 안 먹는다니까···.
어쩔 수 없이 지민의 손에 꽉 잡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레스토랑 하면 떠오르는 딱 그런 고급스러움이었다.
김여주
— 야, 여기 비싼 곳 아니야?
박지민
— 이 정도는 돼야 대접이지.
김여주
— 아니야, 나가자. 너무 비싸.
박지민
— 저, 박지민으로 예약했는데요.
직원
— 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필이면 또 때마침 직원이 나와서 또 안으로 어쩔 수 없이 이끌렸다. 지민은 앉자마자 익숙한 듯 주문을 했다.
박지민
— 음··· 이걸로 주세요.
직원
—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김여주
— 뭐 시켰어?
박지민
— 네가 좋아할 만한 거?
김여주
— 내 취향은 아직도 기억해?
박지민
— 그럼.
김여주
— 또, 비싼 거 주문한 건 아니지?
박지민
— 싼 거 주문할 게 뻔해서 내가 주문한 건데요?
김여주
— 너 진짜.
박지민
—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내가 좋아서 사주는 거니까.
김여주
— 뭐가 좋아···?

박지민
— 어? 아, 그냥 돈 쓰는 게 좋다고.
김여주
— 돈 좀 아껴서 써.
박지민
— 예예. 그런데 전정국 씨한테는 잘 말하고 나온 거야?
김여주
— 아··· 그게···.
박지민
— 왜, 잘 얘기가 안 됐어?
김여주
— 말하고 있는데 그냥 나가버려서 말을 끝까지 못 했어.
박지민
— 왜?
김여주
— 예전하고 정국이가 좀 많이 달라져서. 좀 무관심해졌달까?
?
— 내가?
김여주
— 어···? 정국아···!

전정국
— 여기서 뭐 해. 그것도··· 남자랑.
박지민
— 아 그때 결혼식에서 봤었죠? 박지민이에···,
전정국
— 따라와.
김여주
— 어? 아니, 잠시만! 지민아, 미안해! 연락할게!
어디서 나왔는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정국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내 손목을 세게 잡고는 식당 밖으로 나왔다.
김여주
— 아파··· 정국아.
전정국
— 뭐해, 여기서.
김여주
— 아까··· 친구 만난다고 했잖아.
전정국
— 언제. 난 그딴소리 들은 적이 없는데.
김여주
— 그야··· 네가 내 말 듣지도 않고 나갔···,
전정국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뭐야?
김여주
— 그건 안 변했네···.
전정국
— 뭐?
김여주
—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싫어하는 거는 그대로인데 성격은 왜 그렇게 변했어?
전정국
— 내가 뭐가 어떤데.
김여주
— 무관심해졌어, 너무.
전정국
— ······.
김여주
— 솔직히 말하면 나 진짜 속상해. 네가 성숙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변한 거였어.
전정국
— 관심 가지고 있잖아, 지금.
김여주
— 아니? 이건 관심이 아니라 강제야.
전정국
— ···강제.
난 내가 순간 욱해서 훅 내뱉고도 금방 또 조심스러워 정국의 눈치를 슬쩍 봤다. 표정은 이미 싹 굳어있었다.
전정국
— 그래 강제 맞네. 난 네가 다른 남자 만나는 게 싫어서 강제적으로 나오게 했다 하면 넌? 넌 왜 여자 두고 남자 만나는데?
순식간에 공격과 수비의 위치는 바뀌었다. 그냥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났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지민이를 이성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친구로 만나는 건데도?
김여주
— 먼저 연락이 왔어.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그게 남자든 여자든 그냥 친구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것조차 안 되는 거야? 너 몰래 만나는 것도 아니고 너한테 얘기까지···,
전정국
— 그래서 좋았어?
김여주
— 뭐···?
전정국
— 좋았냐고. 좋아 죽어서 정신을 못 차리지.
김여주
— 전정국.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전정국
— 이 말이 아니면 뭔데. 난 네가 좋은데 넌 내가 싫구나.
김여주
— 야, 전정국. 왜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
전정국
— 맞잖아. 이제 질렸으니까 다른 남자도 만나야지.
김여주
—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마.
전정국
— 맞는 말 아니야?
김여주
— 나 너 좋아해. 아까 걔는 그냥 친구일 뿐이야.
전정국
— 남녀 사이에 친구는 무슨···.
김여주
— 나 너 좋아한···,
전정국은 날 끌어당겨 자기 품속으로 날 가뒀다. 얼마 만에 전정국에게 안겨보는지 느낌이 정말 싱숭생숭했다.

전정국
나도 너 좋아해. 우리 싸우지 말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