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婚姻憂鬱》
第7集 | 象牙日記



오늘 계약 까인게 충격이여서 눈이 잘못 된건가, 순간적으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소매로 눈을 벅벅- 하고 문지르고 다시 눈을 뜨는데.

이런, 아무래도 내 정신은 멀쩡한 모양이였다.


김여주
…설마, 이사 온 게 그쪽?…


박지민
……

제이 박도 적잔히 당황했는지, 내 물음에도 큰 두 눈만 끔뻑이며 나를 바라봤다.


김여주
미쳤네… 미쳤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남친의 바람 사실을 알려주고, 오늘 아침만 해도 계약을 깐 사람이, 왜 우리 집 앞에 이사를 와?.

난 문 앞에 바싹 붙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올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침엔 깔끔하게 머리를 올려 차도남같더니, 저녁이 되니까 가지런히 내린 모습이 갓 대학교 입학한 신입생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박지민
그쪽… 설마, 604호 살아요?.


김여주
그런데요…?

대답을 하며 얕게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하…’ 한숨쉬며 귀찮은 일이 늘었다는 듯 마른세수를 하는게 아닌가. 가만, 생각해 보니 빡치네?.

기분 나빠야 할 사람은 난데, 왜 자기가 기분을 나빠하는데?.

문에 껌처럼 찰싹_ 붙어있던 난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그에게 다가가 최대한 눈썹을 지켜올리고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김여주
뭐에요?, 귀찮은 애가 붙은 것 같단, 그 반응은?.


박지민
…난 귀찮다고 내 입으로 말 안 했는데, 본인도 본인이 귀찮은 걸 아나봐요?.


김여주
뭐요?!.

아니, 이 사람 보게?. 진짜 사람 면전에 대고 서스럼 없이 말을 해?. 난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리고는 허리에 착- 하고 손을 올렸다.


김여주
하?, 그쪽은 되-게 재수없는 거 알아요?.


박지민
뭐요?.

내 말이 거슬렸는지 살포시 구겨지는 미간. 난 꿋꿋하게 고개를 지켜세우며 그를 바라봤다. 고거 참 샘통이네.


김여주
어머, 본인은 몰랐나봐요?. 주변 친구가 말해줄 법도 한데…


김여주
아!, 설마_ 친구가 없나?.



박지민
……

발끈하면서 반박하고 나설 줄 알았는데, 두 입술을 꾹_ 다물어 보이는 그. 설마, 진짜 친구가 없는 걸까 생각하는 와중,

그의 표정이 백마디의 말보다, 확실한 답이 되었다.


김여주
정말인가 보네.


김여주
역시, 내가 사람은 볼 줄 아나봐요-ㅎ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약 오르라고 귀부인처럼 호.호. 웃어보이니, 한껏 분한 모습을 보이는 그 남자.

급기야, 제 품에 들고있던 이삿짐 상자를, 열린 현관문으로 집어넣더니 큰 소리로 하는 말이.



박지민
한국 친구는 없어도, 미국 친구는 있거든요?.

미국 친구는 있단다. 과연 진짜일까?, 가늘게 눈을 뜨고 그에게로 팔짱을 낀 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한 껏 움츠린 몸. 그리고 당황한 얼굴로 뒷 걸음질 치는 그. 내게는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었다.

쿵, ㅡ

벽에 부딪힌 그의 등. 차가운 느낌이 등에 닿아 놀랬는지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손으로 내 어깨를 밀어낸다.


박지민
…좀 떨어지죠?.


김여주
미국 친구, 이름 말해봐요.


박지민
…말 한다고 알아요?.



김여주
알 수도있죠. 아니면 그것도 거짓말?.

“케빈…?”

잠시 고민하는 가 싶더니,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케빈?, 너무 옛날 이름 아닌가.


김여주
거짓말을 할 거면 좀 그럴 듯 한 걸로 하던가.


김여주
나 홀로 집의 ‘케빈’ 이 뭐야…

흥미를 잃어버리고 한 발자국 물러서 돌아서자, 황급한 손길이 내 팔을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돌려세웠다. 역시 속수무책으로 돌아서고.


박지민
케빈 진짜 있어요.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옛날 이름으로 지었다고 어찌나 불만이던ㅈ,

텁, ㅡ

목숨걸고 해명을 하려 들기에, 난 그가 어서 말을 마치기 전에 내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고는 말했다.



김여주
아니…ㅎ, 이렇게까지 변명할 일이에요?.

제 입을 막는 행동에 놀란 걸까, 두 눈을 꿈뻑이는 그.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새삼 실감난다.

이 사람, 진짜로 잘생겼구나.

한참을 넋 놓고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가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내 손을 제 얼굴에서 떼어놓고는 휙- 하고 돌려세웠다.


김여주
아…!, 갑자기 뭐에요?.


박지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김여주
잘생겨서요. 왜요?.


박지민
뭐라고…요?.

돌직구에 적잔히 당황한 그. 당황한 건 ‘제이 박’ 뿐만 아니라 나도 당황했다. 놀랐거든. 내 입에서 그런 돌직구가 나올 줄은 말이야.

세상에, 평생 안 나던 땀이 지금 이 순간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것 같아, 난 다급하게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쳤다.

띠리릭, ㅡ

집 안으로 뛰어들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럼 당황한 게 티 날 것 같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춰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김여주
이사… 잘 하던가, 말던가.

쿵-!!




박지민
……

잘생겼다고 말 해놓고 갑자기 들어가버리는 여자에,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을 문을 쳐다봤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다.

하여간, 나랑은 상관없지. 어차피, 오늘 이후로는 피해다니면 얼굴 마주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짐 정리를 마저하러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지민
어?, 이거 내거 아닌데…

아파트 복도에 떨어져있는 아이보리 색의 다이어리. 주워 들어보니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2월 12일, 우리 부모님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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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 꼭 승진하기.]

‘승진하기’ 라고 적힌 글자 위에 그어진 두 줄. 그리고 옆에 자그만한 글씨로 적힌 짧은 문장의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결혼… 할 수 있을까?.’

짧은 문장에 수많은 감정이 담긴 것만 같았다. 연인에 대한 분노, 증오, 허망함, 그리고 ‘슬픔’ 까지.


마치 오늘 막 적은 것 처럼 잉크가 덜 말라, 글씨가 이곳 저곳에 번져있었다. 괜히 사람 미안해지게.


박지민
…결혼.

타이밍 진짜 이상하지. 왜 저 여자와 대화를 나눌 때면 그 녀석이 생각나는 건지. 이미 결혼했을텐데…

괜히 뒤숭숭한 마음에 다이어리를 닫아버렸다. 그래, 다이어리는 나중에 돌려주고 피해다니면 되니까. 이상하게 가슴이 고구마를 먹은 것 처럼 답답했다.


박지민
…잘 지내는지만, 보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