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步之遙
情緒爆發


비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렸다.

젖은 공기는 무거웠고, 차가운 바람은 서연의 피부에 스며들었다.

축 늘어진 어깨와 무기력한 걸음.

그날의 상처는 아직도 피부 아래에서 진동치고 있었다.

회사를 막 나서려는 순간, 불현듯 손목이 탁— 하고 잡혔다.

이서연
“...서, 선배님?”

놀라 고개를 돌린 서연의 눈앞에 정한이 서 있었다.

물기 어린 머리칼, 다소 흐트러진 숨결, 그리고 눈빛. 그 눈빛은 왜인지 모르게 너무도 깊고 복잡했다.

서연의 충혈된 눈동자가 그를 비추자 정한은 미간을 조용히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살짝 당겨, 비로부터 보호하듯 벽 안쪽으로 안아들이듯 감쌌다.


정한
“비가 이렇게 오는데 맞고 다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요, 진짜…”

정한의 목소리는 나무결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깃든 단호함은 또렷했다.

이서연
“...아,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그…”

서연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끝이 떨리고, 입 술은 자꾸 젖어 갔다.

정한은 그 말끝을 기다리듯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정한
“…후배님.”

그 한 마디. 고요했던 서연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상처로 찢겨진 자신의 마음을 치료하듯 부드럽게 얹혀진 그의 부름이 그녀의 마음을 다시금 울렸다.

이서연
"... ..."

겨우 말라가던 감정이 또다시 차올랐고, 입술을 꽉 깨물던 서연은 결국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이서연
“…아아아, 진짜…

이서연
으아…흐윽…흐아아앙…”

버거운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 흐느낌은 비 소리 속에서도 분명하게 들려왔다.

정한은 순간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고, 손끝이 서연의 팔을 안으려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이서연
“...진짜, 다시는 저 안보실 것처럼 말해놓고... 뭐예요...

이서연
진짜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왜, 흐윽...!”


정한
"아니..다신 안 보다니..그게아니라..."

정한은 급히 말했다. 목소리에 죄책감이 실렸다. 하지만 서연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이서연
“왜… 왜 내가 이런 상태일 때만 나타나요...?

이서연
좀 괜찮을 때 만나면 안되는 거예요?! 왜 또 이렇게… 왔다가, 또 갈 거잖아요…가버릴 거잖아요..!! 선배님 진짜… 흐윽…”

서연은 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가며 얘기했다.

너무 고마운데,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나타나서 또 온 세상을 뒤흔들듯 내 모든걸 흔들면서 그러고선 또 사라질거면서. 대체 왜 이러는건지 모르겠다.


정한
"내가 가긴 어딜가...."

이서연
"...그럼 그때 했던 말은 뭔데요...?! 이제 저 안볼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이서연
그래서 저도 열심히 마음 다잡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자꾸 이렇게 나타나서...나타나서....하윽...진짜, 대체 어떡하라고..."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전달하려는 간절함이었다.

정한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 그때, 정한은 서연을 달래주려 할 말을 생각하다 조금 멀리서 건물안으로 들어오려는 직원들 및 사람들이 보였고,

정한은 순간 놀라 울고있는 그녀를 데리고 빠르게 이동해

고민할 틈도 없이 서연의 손목을 끌어 벽면 뒤, 좁은 틈 안으로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좁은 공간안에 밀착되버린 두 사람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고,

정한은 시선을 다른데 두다가 서연쪽으로 돌려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품 안쪽에 닿아있는 서연.

순간 울먹이며 말을 이으던 서연도 그런 상황에 의해 옅은 숨을 내쉬며 당황했다.

정한은 크게 뛰는 심장을 애써 감추며 팔을 편하게 하려 서연을 조금 감쌌다.


정한
“…말하던 중에 미안해요. 갑자기 사람들이…”

이서연
"..아, 아니에요...흡...괜찮아요...."

서연은 여전히 울먹였고, 정한은 그녀를 살펴보며 나직이 말했다.


정한
“…후배님, 나 그날 말했던 거… 진짜 안 보려고 한 거 아니야...


정한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마.."

이서연
"...아..아니에요..제가 오늘 조금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요.

이서연
정말 죄송해요..선배님한테 뭐라고 할 그게 아닌데..."


정한
“후배님.”

정한은 서연의 말을 막았다.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낮고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