吸血鬼皇室 [第二季]
23.




정호석 (27)
"이거, 안, 놔?"

위에서 자신을 꾹 누르고 버티는 정국 때문에 버둥거리며 몸싸움을 시도하는 호석이다. 하지만 정국은 그냥 힘으로 누르며 저지하지.


전정국 (22)
"이 형이 미쳤나, 좀 가만히, 있어!!"


김석진 (27)
"..."


김태형 (25)
"저 형, 뭐에 씌였어. 그건 확실해."


김석진 (27)
"뭐에 씌였는데? 이제 씨발 블타병에 이어서 정신 상태까지 해결해야 하는 거야?"


김태형 (25)
"형."


김석진 (27)
"네가 얼마나 판을 크게 만들었는지 알겠냐? 희생하겠다는 정호석한테 허락만 안 했어도 이런 일까지는 없었을 거 아니야!"


김태형 (25)
"진짜 누군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그랬어? 왜 자꾸 그 얘기가 나오는데!!"


전정국 (22)
"아니 갑자기 왜 또 싸워!! 가뜩이나 속 시끄러운데 형들까지 싸우면 난 어떡하라고!"


김석진 (27)
"넌 가만히 있어. 이 부분은 진짜 너랑 대화를 좀 해야겠다, 김. 태. 형."


석진의 말을 들은 정국의 시선이 공중에서 얼었다. 덕분에 호석을 잡던 힘까지 빠질 뻔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꾹 눌렀다.

태형의 반응도 정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정국과 다르게 몸까지 다 굳었다는 거지. 백현은 갑자기 냉랑해진 분위기 속에서 싸움이 나면 말릴 생각으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김태형 (25)
"... 형... 지금 뭐라고,"


김석진 (27)
"너 나랑 얘기 좀 하자고."


김태형 (25)
"ㅇ, 아니... 그거 말고."


김석진 (27)
"뭐. 내가 너 김태형이라고 부른 거? 그게 그렇게 억장이 무너져?"


김태형 (25)
"..."

응, 억장이 무너져. 내 편을 싸그리 잃은 기분이야.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태형을 태태라고 부르는 것은 잊지 않았던 석진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석진도 태형은 이번에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김태형 (25)
"..."


김석진 (27)
"울 것 같은 표정 짓지 마. 네가 울 수 있는 핑계 그딴 거 지금은 하나도 없으니까."


김태형 (25)
"으응, 응."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재우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호석과 아등거리는 정국에, 석진은 서둘러 그 둘에게로 다가갔다.


김석진 (27)
"정호석."


정호석 (27)
"씨발, 뭐!!!"


김석진 (27)
"..."


김석진 (27)
"정호석 아니잖아, 너. 진짜 정호석은 그렇게 말 안 해. 정국아, 얘 기절시켜서 궁으로 데려가자. 할 수 있어?"


전정국 (22)
"응, 해 볼게. 이것만 잡아줘."

석진의 손이 정국이 가리킨 곳으로 닿는 걸 본 태형이 목소리를 최대한 멀쩡하게 내며 휜 철장을 잡았다.


김태형 (25)
"나... 밖에 나가 있을게."


전정국 (22)
"ㅇ, 어? 아... 알았ㅇ, 아악!! 형, 정호석 제대로 잡아!!"


정호석 (27)
"씨발!! 뭐야, 이거!!"


김석진 (27)
"으윽!! 전정국, 거기!!"

스윽-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동굴 밖으로 나온 태형이 다리 힘이 풀린 듯 자신이 놓고 들어갔던 짐 옆에 앉았다. 분명히 어제 피를 든든하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김태형 (25)
"피가 주는 체력은, 정말 능력에만 통하네."

석진에게 몇마디 들었다고 정신이 혼미한 자신이 미웠다. 아무리 자기의 생을 책임져준 형이라 해도 그 몇마디 들었다고. 석진도 속상한 마음에 울부짖은 것을 제가 잘 받아주지 못했다고도 생각이 들어 답답했다.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었지만, 다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왠지 들었다.


김태형 (25)
"..."


김태형 (25)
"내가 미쳤지."

내 주제에 포기는 무슨, 더 해도 모자랄 판에.

손을 털며 일어나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쭈뼛거리는 백현이 조심조심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서 같이 앉자는 눈빛을 보냈다.

그랬더니 쪼르르 달려와서 앉네? 어쩐지 전정국이랑 비슷한 점이 많다.


변백현
"... 괜찮아?"

너는 도대체 뭐니.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만나서 이렇게까지 또 엮일 줄이야.

강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뭐 하나 자기 자신에 대한 걸 알지도 못하고. 입도 무겁고, 행동도 꽤 조용하고. 진짜 전정국 처음 만났을 때랑 비슷하네.


김태형 (25)
"... 과거 생각하게 만드네요."


변백현
"응?"


김태형 (25)
"아니에요. 그냥, 마음이 좀 무거워서요. 다친 곳은 없어요? 지켜주겠다 했는데 책임감 없게 실패했네."


변백현
"괜찮아. 너는?"


김태형 (25)
"나야, 뭐... 괜찮겠죠."


김태형 (25)
"그냥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혹시 호석이 형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 둘은 애초에 어떻게 만났어요?"


변백현
"주인이랑은 숲에서 만났어."


김태형 (25)
"그래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데요?"


변백현
"그냥 보자마자 서로 경계해서 싸웠는데, 정신 차리니까 이런 관계였어."


김태형 (25)
"호석이 형도 능력 잘 다루죠."


변백현
"... 응."


김태형 (25)
"혹시 조금 위험한 능력도 썼어요? 그때 싸울 때 아니더라도, 평소에."


변백현
"썼어."


김태형 (25)
"... 어? 진짜? 언제 썼는데요?"

훅 들어온 백현의 대답에 영혼 없이 말만 내뱉던 태형이 눈이 커지며 고개를 백현에게로 틀었다.


변백현
"맨날."


김태형 (25)
"네?"


변백현
"맨날 저 동굴 안으로 뱀파이어 하나 불러서 뭐 이상한 거 했어."


김태형 (25)
"..."


변백현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 제일 큰 동굴 방 바닥이 항상 축축한 것 같았어. 막 번쩍거리기도 하고 그러던데."


김태형 (25)
"뭐가 번쩍거려요?"


변백현
"모르겠어."

반말에두 짧고 단호한 그의 말투도 이제 슬슬 적응하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태형이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근데 지금까지 안 정보로만 따져도, 답은 이미 하나가 나오는 것 같았다.

동굴 들어가면서도 느낀 액체, 넓은 공간에서의 습도, 그리고 호석의 알 수 없는 모습. 그리고 호석이 맨날 무엇을 했다고 말하는 백현.

호석이 형이, 블타병을 확산시키고 있었던 걸까?

왜? 뭐 때문에? 정말 뭐에 쓰여서 그러는 건가?


변백현
"... 야!"


김태형 (25)
"ㄴ, 네?"

생각을 돌리느라 아무 소리도 잠시 못 들었는데, 저를 꽤 크게 부르는 백현의 소리에 발딱 고개를 세웠다. 그러자 백현이 뒤를 가리키지.


변백현
"너 형 나와."


김태형 (25)
"... 아."

기절해 보이는 호석을 등에 업은 정국과, 그런 정국을 도와주는 석진이 동굴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태형이 호석을 힘들어 보이는 정국에게서 받아 업었다.


김태형 (25)
"궁으로, 바로 갈까?"


김석진 (27)
"그럼 어딜 가."


김태형 (25)
"... 그래."


전정국 (22)
"백현, 날 수 있어요?"


변백현
"응."

천천히, 한 명씩 날개를 펼쳤다. 석진이 가장 먼저 날아오르고 그 다음이 정국. 그리고 백현이 날개를 완벽히 펴려는데, 태형이 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김태형 (25)
"ㅈ, 잠깐만!!"


변백현
"어?"


김태형 (25)
"이거... 날개 색이, 원래 이랬어요?"

반짝이는 밤 하늘의 색을 담아놓은 것 같은 짙은, 남색이었다. 하지만 오로라를 품은 듯한 몽글함도 없는 듯 진하게 섞여 있었다.

이런 색의 날개는, 평생 처음 본다.

하지만 정작 그런 날개의 주인인 백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한다. 이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곧장 하늘 위로 올랐지.


김태형 (25)
"..."


전정국 (22)
"형, 일단 얼른 가야해. 정호석이 언제 깨서 난리칠지 누가 알아. 마취약 살짝 넣긴 했는데 모른단 말이야."


김태형 (25)
"응? 아, 아... 어."

결국 애써 더 늘어난 고민거리를 묻어두며 뱀파이어 왕족들의 순수 혈통만의 윤택이 빛나는 날개를 펼처 하늘을 가로지르는 태형이다.

근데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가는 이들이 아직까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남준이 왕궁과 남쪽이 통행하는 길을 다 막았다는 사실.

석진과 정국의 연락망은 이미 아까 강한 물살에 박살났고, 태형의 것은 태형이 동굴에서 얻은 젖은 손으로 만지는 바람에 고장이 나버렸다.


한마디로, 지금은 남쪽에 고립된 상황이라는 거지. 그것도 모르고 이들은 점점 노을빛으로 물들여지는 하늘을 활주하는 중이다.


제가 생각한 동굴은 약간 이런 이미지예요! 어둡고 약간 축축해 보이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