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윤.”
“왜.”
“너 오늘 술 먹지 마.”
과방 들어오자마자 남예준이 한 첫마디였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뭔 소리야 갑자기.”
“오늘 과 술자리 온다며.”
“어.”
“그러니까 먹지 마.”
“왜?”
예준은 내 얼굴을 보고, 잠깐의 침묵 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제가 말해놓곤 고개를 홱 돌렸다.
“취하면 귀여워져서.”
“…뭐?”
“그래서 안 됨.”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나는 바로 헛웃음 터졌다.
“야 그걸 지금 이유라고 말하냐?”
“충분한데.”
“안 충분하거든?”
“난 충분.”
그러고는 내 머리 위에 손 한번 툭 올리고 지나간다.
진짜 자연스럽게.
아니, 요즘 왜 이렇게 스킨십 늘었지?
적응 안 된다.
-
그리고 몇 시간 뒤, 과 술자리.
시끌벅적한 고깃집 안은 이미 정신 없었다.
“야 한서윤 여기!”
“예준이 옆자리 비워놨다ㅋㅋ”
누가 소리치자
나는 괜히 민망해서 빠르게 자리 앉았다.
그리고 내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남예준.
“몇 잔 마셨어?”
“한 잔.”
“더 먹지 마.”
“아까부터 왜 자꾸 통제해.”
“통제 아니고 예방.”
“뭘 예방해.”
“누가 꼬시는 거.”
나는 결국 웃음 터졌다.
“누가 나를 꼬셔.”
“많던데.”
“…뭐?”
예준은 고기 뒤집으면서 툭 말한다.
“너 모르는 거 같아서 그렇지.”
그 순간.
맞은편에 앉은 선배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서윤아.”
“네?”
“너 아직 술 약하냐?”
“아마도요…?”
“오늘 취하면 집 못 가는 거 아냐?”
웃으면서 하는 말인데, 묘하게 거리감 가깝다.
나는 하하, 하고 애매하게 웃었고
그 선배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얘 취하면 귀여워지는데, 예준이는 봤나? 애교 막 부리던데"
"....."
"아직 남자친구 앞에서는 내숭 떠나?"
제 맘대로 떠들어대는 말에 기분이 팍 상할 때 쯤.
그 순간이었다.
옆에서 젓가락 내려놓는 소리.
툭.
예준이 웃고 있던 얼굴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근데—
눈이 안 웃는다.
“선배.”
낮고 차분한 목소리.
“네?”
“얘는 원래 귀여워요.”
떠들썩한 식당 내에서 우리 테이블만 조용해졌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선배도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예준은 여전히 살벌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내가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근데 불편해하잖아요.”
“아~ 미안 미안.”
“아닙니다.”
선배가 얼버부리듯 넘어가자 예준도 됐다 싶었는지 퉁명하게 대답을 한다.
대답은 공손한데 이상하게 더 무섭다.
선배는 뻘쭘했는지 자리를 떴고, 몇 분 되지 않아 동기들이 자리를 채웠다.
예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기를 굽고있었다.
진짜 무서운 건 저거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거.
나는 슬쩍 옆을 봤다.
“…야.”
“응.”
“너 지금 화났냐?”
“아닌데.”
“근데 표정이.”
“원래 이런데.”
거짓말.
방금 전까지 웃고 있었잖아.
나는 괜히 눈치 보다가 작게 이야기했다.
“…대신 화내줘서 고마워.”
괜스레 바삐 고기를 굽던 손 멈춘다.
몇 초 정적.
나는 괜히 괜한 말 했나 싶어졌는데,
예준이 고기 뒤집으면서 툭 말했다.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응?”
"진짜로 술 마시면, 귀여워져?"
"...어어???"
“저런 말에 화도 나는데, 질투도 나."
심장 떨어질 뻔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하는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얘가 뭐라는거야, 지금?!
“야…!”
“왜.”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뭐가.”
“그냥…”
말 막혀서 입 다물었는데,
예준이 옆에서 낮게 웃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소주잔을 가져간다.
“…뭐 해?”
“너 이거 더 먹으면 취해.”
“한 잔밖에 안 먹었거든.”
“그래도 안 돼.”
“왜애.”
내가 늘어지게 말하니까
예준이 잠깐 날 보더니 피식 웃는다.
“봐.”
“…뭘.”
“술 안 마셔도 벌써 귀엽잖아.”
진짜 미쳤다.
얘는 사람 심장 떨어뜨리는 걸 숨 쉬듯 한다.
-
술자리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밤공기 차갑다.
나는 괜히 얼굴 식히려고 손 부채질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예준이 조용히 내 손 잡았다.
“…왜.”
“가자.”
“어디.”
“데려다주게.”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시원한 바람이,
숯불 때문인지 아니면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 설레는 말을 하는 누구 때문인지ㅡ
달궈진 얼굴의 온도를 조금씩 낮춰주고있었다.
바람, 기분 좋다.
나는 가만히 걷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난 취해도 누구한테 애교 안 부려. 저 선배가 이상한 말 한 것 같아."
"응, 알아."
"그래도."
예준이 내 손 한번 더 고쳐 잡는다.
손가락 사이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그래도,?
끊어진 말을 다시 이어간다.
“누가 너한테 관심 가지는 거.”
"...."
“별로야.”
심장이 또 이상하게 뛴다.
나는 괜히 고개 숙인 채 중얼거렸다.
“…소유욕 개쩐다.”
그러자 예준이 바로 웃는다.
“응.”
“…부정 안 해?”
“너한텐 좀 그래.”
아, 진짜!
분명 얼굴의 온도가 다 내려갔을 건데. 다시 열이 올라오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