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하면 맨날 붙어 다닐 줄 알았다.
왜냐면 고등학생 때까지의 연애만해도, 같은 반 내에서 꽁냥거리고, 비슷한 학원가로 가고, 집도 거의 동네였으니깐.
뭐, 적어도 나는 그럴 줄 알았다.
근데 현실은, 대학교는 생각과는 달랐다.
시험 끝나니까 바로 팀플.
팀플 끝나니까 과제.
과제 끝나니까 조별 발표.
바쁜 것도 바쁜건데, 같은 과라고 해도 듣는 수업이 달라 마주치기가 꽤 어려웠다. 시간대도 다르고 말이지.
게다가 수업하는 건물도 다르니까 체력도 쭉쭉 빠졌다.
죽겠다 진짜.
문제는 남예준도 똑같이 바쁘다는 거다.
오히려 쟤가 더 바빠 보인다.
“야 너 요즘 예준이랑 싸웠냐?”
점심 먹다가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뭐?”
“아니, 둘이 요즘 같이 있는 걸 못 봐서.”
나는 젓가락 멈춘 채 잠깐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며칠 못 봤다.
연락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아침마다 “일어났냐” 연락 오고, 자잘한 스몰토크를 하고.
잘 때가 되면 “과제 끝났어?” 같은 것도 온다.
근데— 그게 끝이었다.
전에는 틈만 나면 찾아왔는데.
손 잡고 다니고.
괜히 시비 걸고.
장난치고.
요즘은 볼 시간 자체가 없다.
“…아닌데.”
나는 대충 대답하고 물 마셨다.
근데 괜히 기분 이상하다.
싸운 것도 아닌데,뭔가 멀어진 느낌.
아 연애 왜 이렇게 어렵냐.
-
오늘도 난 도서관에 갇혔다.
팀플 자료 만들다가 정신 차려보니까 밤 열 시.
허리 아파 죽을 거 같다.
나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진짜 집 가기 싫다. 머리 대자마자 잠들 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도서관?]
남예준이다.
나는 화면 빤히 보다 답장했다.
[응]
[나와봐]
“…뭐야. 잠드려고했는데.”
나는 인상 찌푸리면서도 자리 정리했다.
그리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는데—
“야.”
익숙한 목소리.
고개 드니까 남예준이 서 있었다.
후드 뒤집어쓴 채로. 손에는 캔커피 두 개.
“…너 뭐야.”
“사람 보자마자 뭐야가 뭐냐.”
“아니 너 작업 있다며.”
“끝났어.”
짧게 말하고는 내 손에 커피 쥐여준다.
차갑다.
딱 내가 좋아하는 거.
“너 피곤해 보여.”
“너도.”
“난 원래 잘생겨서 괜찮아.”
진짜 어이없어서 웃음 나왔다.
“미친놈.”
“응.”
예준도 따라 웃는다.
근데 웃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
내가 먼저 물으니까
예준이 잠깐 나 보더니 말한다.
“서윤아, 요즘 서운했어?”
순간 말문 막혔다.
“…뭐?"
“아닌 척하지 말고.”
와.
진짜 이런 거 귀신같이 안다.
나는 괜히 시선 피했다.
“안 서운했거든.”
“거짓말.”
“진짜.”
“너 삐지면 말수 줄어.”
…그걸 어떻게 아냐.
예준은 잠깐 가만히 날 보다가
작게 한숨 쉬었다.
“미안.”
순간 당황했다.
얘가 이렇게 바로 사과할 줄 몰라서.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닌데.”
“근데 난 좀 그 정도 같았어.”
“뭐가.”
“너 못 보는 거.”
심장 철렁 내려앉았다.
예준은 괜히 캔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생각보다 더 찾게 되네.”
“…뭘.”
“너."
"...."
"엄청 보고싶었다고."
씨익 멋지게 웃으면서 날 내려다본다.
진짜 심장 남아나질 않는다.
“나 너 되게 좋아하는 거 같아.”
쿵, 쿵, 귀까지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원래 연애하면 다 이런 건가 했는데.”
"...."
“너 없으면 하루가 좀 이상해.”
예준은 낮은 목소리로 달콤한 말들을 해줬다.
마치, 화를 풀라는 듯.
정말로 어딘가의 남자주인공처럼.
울컥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하고.
아마도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을 내 얼굴을 보더니 예준이 피식 웃었다.
"설렜지?"
"뭐... 그렇지 뭐."
“안 설렜으면 큰일 날 뻔.”
하여튼 분위기 잡아놓고 꼭 마지막에 저런다.
나는 괜히 민망해서 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보고 싶었거든.”
커피를 마시던 예준이 멈추고, 입을 가린 채 나를 내려다본다.
꽤나 놀란 것처럼 큰 눈을 하고.
“…뭐?”
“못 들은 척하지 마.”
“아니."
"엉?"
“한 번 더.”
“뭐? 싫어!”
“서윤아.”
“아ㅡ 한 번에 못 들었으면 끝이야!”
배실배실 웃으며 다가오는 예준은 어느새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평소보다는 조금 더, 설렘과 행복이 묻어있는.
나도 따라서 웃었다.
어느새 서운한 감정은 눈 녹듯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그때.
예준이 내 손 잡았다.
손끝 살짝 차갑다.
“앞으로는.”
"...."
“바빠도 보러 올게.”
심장 또 이상해진다.
“그러니까.”
손가락 천천히 맞물리더니,
“너 혼자 서운해하지 마.”
깍지를 낀 채로, 제 얼굴에 우리의 손을 가져다댄다.
진짜 선수가 아닐리가 없다.
너무 사랑스러운 남자친구의 모습에, 그 품에 꼭 껴안았다.
어느새 피로가 사라져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