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만이 감도는 작은 단칸방. 보증금 20에 월세 20 이 정도면 없는 게 낫다 싶을 정도다. 하얀색 벽지 뒤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고, 벽지 위에도 슬금슬금 올라온다. 먼지는 아무리 쓸어도 쓸어도 좀비같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벌레가 나오는 건 이제 일상이다.
“어이! 장여주!”
“아직도 처 자? 빨랑빨랑 안 나와?”
침대 위에 떨어져 있는 거미 사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대답한다.
“…나갈게요.”
“내가 무슨 말 할 지 알지?”
“…네”
“이번주 내로.”
“네…”
지금 내 나이는 18살. 부모님은… 기억에도 없는 사람들이다. 친척들도 마찬가지며, 날 키우고 싶다는 친척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됐지 뭐. 그 사람들 집에서 폐 끼치면 그게 더 불편했다.
“휴… 고아년이 왜 나와가지고 지랄이야, 지랄은.”
“…”
너무 아프지만 한가롭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번 주가 토요일까지라면 3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곳도 구하기 쉬운 곳은 아닌데 여기보다 더 싼 곳이 있을까. 아니, 내가 더 살아갈 수는 있을까.
“…동정심에 호소해보자”
혹시나 하는 바람에 초등학교 때 친구인 수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주야? 장여주?"
그게 뭐라고 그렇게 심각하냐고, 우린 그저 널 좋아할 뿐이라고 말하던 그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달라는 눈친데, 내가 부담스러울까 속으로 삭이던, 배려 넘치는 그들이 내 친구라는 게 너무 좋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수빈이다.
"여주야, 내가 지금 중국이거든. 국제전화일거야…"
"내가 다시 할게"
하… 그래도 수빈이는 부모님 한 번 잘 만났다. 가수 아버지에, 공무원 어머니까지. 돈을 달라고 요청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게다가 저번엔 나 몰래 월세를 내주고 가셨다. 죄송하고 부담스러웠으나 한 번만 더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의미도 없는 생각이 끝나자 수빈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
"그건 내가 물어야할 질문 같은데…"
"잘… 지내고 있냐고…"
"…잘 지내고 있어. 나야 늘 똑같지. 넌 잘 지내?"
"당연하지!"
"…진짜?"
"응!"
"그럼 왜 전화했어. 통화비 나가는 거 뻔히 알면서…?"
"보고 싶어서"
"나 지금 완전 잘 지내. 집주인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월세도 반으로 받고."
"힘든 일 있으면 또 연락해. 아니다, 내가 먼저 할게.
나도 학생 신분이지만, 도와줄 수 있어. 진짜야"
"…고맙다, 정수빈"
"…울어요?"
"요즘은 안 바빠?"
"바쁜데, 너랑 통화할 시간은 있어."
"뭐 하느라 바빠"
"아…"
"그럼 끊자. 너 바쁘다며"
순간 집을 구해야한다고 말할 뻔 했다, 바보 같이. 말했다면 앞의 노력은 다 물거품이 됐을테니까.
"…그래, 그럼. 너도 힘내"
수빈이는 순순히 전화를 끊어준다. 그의 힘내라는 별 것 아닌 그 말에 괜히 힘이 난다.
그것도 아주 잠시. 곧 찾아온 적막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진짜 익숙해지지 않는다. 고작 적막감 하나 익숙해지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혼자 살 건지. 어떤 자신감으로 버티고 있는지.
이번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이번에도 쫓겨난다면 그냥 보육원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물론 오래 있지는 못할 것이다. 만 18세면 그곳에서 나와야하니 길어봤자 1년이다.
하지만 적어도 식숙은 고민하고 싶지 않다.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너무 어린 나이에 그런 것까지 고민하는 게 불쌍하다고. 하지만 불쌍하다고 하며 도와주지 않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사람들.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런 사람들을 믿는 바에는 힘없는 날 믿는 게 낫겠다. 적어도 난 날 속이지 않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따라 전화가 많이 온다. 2통이면 많이 온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