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서윤은 눈을 떴다.
제일 먼저 한 건 역시 휴대폰 확인. 태형에게서 온 답장은 하나뿐이었다.
[조금은요.]
그 아래.
[다행이다.]
짧은 네 글자. 그 네 글자에 속이 울렁거렸다.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내가 조금은 보고 싶었다고 한 게?
아니면 먼저 연락해 준 게?
"...아, 몰라."
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만 뜨거워졌다.
-
출근해서도 똑같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가 들렸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긴장됐다.
아니, 일을 하고있는데 왜 긴장이 되는거지. 정신 차리자. 일하는 중이라고!
민망함에 살짝 뜨거워진 볼을 양 손으로 꾹 누르는 순간이었다.
딸랑.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고, 서윤은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김태형이었다.
"...!"
태형은 평소처럼 조용히 웃으며 카운터 앞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괜히 목소리가 작아졌다.
태형은 서윤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더니 웃었다.
"저 많이 기다렸어요?"
"네?! 아, 아뇨 …."
"엄청 기다린 얼굴인데."
서윤은 바로 시선을 피했다. 꼭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내 속마음을 꿰뚫어보는게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된다.
이 사람은 왜 만날 때마다 심장을 이렇게 뛰게 만드는 거지.
후우, 한 숨을 쉬곤 주문을 받는다.
평범한 일상 대화를 하고, 달큰하게 어제는 뭐했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을 한다.
긴장으로 식은땀이 난 두 손을 꾹 쥐고 주문을 받았다.
태형은 오늘도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책도 잘 안 보고.
휴대폰도 거의 안 만졌다.
가끔씩 서윤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서윤은 괜히 더 바빠졌다.
컵을 닦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이미 절반 이상이 차있는 냅킨까지 다시 맞춰 놓았다.
그럼에도 뒤통수가 뜨거웠다.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금방 흘러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중간엔 정말 바빠졌다. 배달 주문도 큼직큼직하게 들어오고, 카페 내부에도 손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새 태형은 사라져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바빠보여서 다음에 오려고 생각했나보다.
큼, 한 번은 자리에 찾아가볼 걸 그랬나? 보고싶다고 해놓고선 너무 무심했나ㅡ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치마를 벗은 서윤이 가방을 챙기려는데,
카페 문이 다시 열렸다.
태형이었다.
"...어?"
태형은 카운터 앞까지 걸어와 자연스럽게 말했다.
"끝났죠?"
"...네."
"같이 가요."
카운터 안쪽에 있는 사장님께 인사를 하곤 그대로 태형과 밖으로 나왔다.
저녁 공기는 선선했다.
둘은 천천히 골목길을 걸었다.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고요하고 편안한 적막인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은 나만 긴장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한참을 걷던 태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네?"
"문자."
"...아."
서윤은 괜히 민망해졌다.
그 한 줄을 보내려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생각만 해도 부끄러웠다.
태형은 작게 웃었다.
"나 많이 기다렸어요?"
...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태형도 따라 멈췄다.
"아니..."
부정하려 했다.
그런데 말이 안 나왔다.
어제 하루 종일 문만 쳐다봤던 게 떠올랐다.
휴대폰 붙잡고 고민했던 것도.
창가 자리가 비어 있는 걸 계속 바라봤던 것도.
전부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태형이 허리를 살짝 굽히곤,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어쩐지 웃음기도 조금 섞여있는 듯 했다.
"나 기다렸어요?"
한참의 침묵 끝에.
서윤이 아주 작게 말했다. 부끄러움을, 민망함을 무릅쓰고.
"...기다렸어요."
태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서윤은 용기를 내 계속 말했다. 한 번 말을 하니 술술 나온다.
"계속."
"..."
"문 열릴 때마다."
"..."
"안 오니까..."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걱정도 했어요."
이 정도면 다 말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실은 더 말하고 싶었다.
결국 서윤은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가, 태형을 올려다봤다.
태형은 꽤 놀란 눈치였다.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대범하게 이야기할 줄은 몰랐겠지. 늘 우물쭈물하는 모습만 보였으니깐.
눈이 커진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연다.
"저..."
"...네."
"태형 씨 좋아해요."
말해 버렸다.
순간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차 지나가는 소리도.
바람 소리도.
아무것도 안 들렸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잠시간의 정적 후, 가장 먼저 들린건 내 심장소리였다.
쿵, 쿵, 두근대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태형은 서윤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예뻐서.
서윤의 눈이 같이 동그랗게 커졌다.
"다행이다."
"...네?"
"나만 그런 줄 알았어요."
태형이 반짝이는 미소를 띠곤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좋아해요."
그 한마디에.
서윤은 결국 웃고 말았다.
태형도 따라 웃었다.
"이제."
"..."
"정식으로. 만나도 돼요?"
태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손을 들어 서윤의 옆머리를 살짝, 만지작거렸다.
이번에는 서윤이 망설이지 않았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네."
태형은 그제야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서윤도 함께, 소리를 죽인 한숨을 내쉰다. 심장이 꼭 터질 것만 같았다.
수능을 볼 때보다도 더한 긴장감이었다.
"사실."
"...?"
"어제 안 온 것도."
"왜요?"
"하루쯤 안 보면 서윤 씨가 나를 기다릴까 궁금했어요."
"...뭐라고요?"
"확인하고 싶었어요."
서윤은 어이가 없어서 태형 팔을 툭 쳤다.
"나쁜 사람이네."
태형은 웃으며 그 손을 살짝 잡았다.
"미안해요."
"..."
"근데."
"...?"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서윤은 결국 또 웃었다. 그리고 맞잡은 손에 깍지가 껴졌다.
정말.
이 사람한테는 계속 지는 기분이었다.
둘은 다시 천천히 걸었다.
이번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드디어 사귑니다 ^___^ 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