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40화. J와 P의 연애 (1)

sophie97
2026.07.04Views 33
목적지 없이 운전하는 '드라이브'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어딘가를 목표 없이 간다는 게,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나 같은 J에게 계획성 없는 P는
늘 신기한 존재였다.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P가
모든 걸 계획해야 마음이 편한 J를 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전에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한강 공원에 가서 치킨을 먹자고 했던 일,
서점에 간다고 하자
별 고민도 없이 따라 가겠다고 하던
훈지씨를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즉흥적으로 결심하고 행동하지?'
하며 신기해한 적이 있다.
모처럼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수요일 아침.
오피스텔에서 책정리를 하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부터 누구지?"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은 다름아닌 훈지씨였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에요?"
나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는 마음에
받자마자 물었다.
"오늘, 내일 혹시 일정 있어요?"
훈지씨도 뭔가 급한 듯 했다.
내가 받자마자 물었다.
"아니요..왜요?"
"번역 마감이라든가
수업 같은 일정은 없는 거죠?"
"없어요. 왜 그러는 건데요?"
"그럼 우리 캠핑 가요!! 1박 2일로!!
촬영 일정이 갑자기 바뀌어서 휴가가 생겼어요!
방금 전에 매니저님한테 연락 받았는데.
그 때 같이 해 보고 싶다고 했던 캠핑 있잖아요.
우리 그거 오늘 가요!!"
"지금 당장이요? 아무런 준비도 안 했잖아요?"
그는 신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요새는 다 대여해 준대요.
몸만 가도 된다던데요?"
"아니...그래도...
너무 갑작스럽게 이렇게 가자고 하면 어떡해요.."
"왜요? 뭐가 문제인데요?
얘기해봐요. 내가 다 해결해 줄께요."
생각해 보니 딱히 문제는 없었다.
그저 아무런 계획 없이,
갑자기 떠난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우리는 캠핑을 떠나기로 하고
훈지씨가 오는 사이에 나는 짐을 쌌다.
'세면도구, 칫솔, 치약, 수건, 속옷, 슬리퍼,
여벌의 옷, 화장품, 고데기, 드라이어, 빗,
그리고...또... 뭐 가져 가면 되지..'
늘 하나도 빠짐없이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면 한 두가지씩 빠뜨린 게 있었다.
그래서,
여행가기 며칠 전부터
필요한 항목들의 리스트를 메모해 두곤 했다.
'아!! 맞다,
휴대폰 충전기, 카메라, 휴대용 스피커,
랩탑, 선글라스...
이 정도면 빠뜨린 거 없겠지?'
그런데도 항상 불안한 이 마음이 문제다.
그때, 훈지씨에게 메시지가 왔다.
[5분 뒤에 도착해요.]
준비를 끝낸 나는,
집 앞 카페에서
커피 두 잔과 스콘을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근데 이렇게 둘이 캠핑을 가도 되는 건가...
가서 누가 알아 보면 어쩌려고
이렇게 무작정 가자고 하는 거지....'
주차장에 도착한 훈지씨는
나의 캐리어 가방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이게 뭐에요?
내가 1박 2일이라고 말 안 했었나요?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가져가는 거에요?
혹시 그 사이에 장이라도 봤어요?"
30분 만에 도착해 놓고 장까지 봤냐고 묻는
그가 어이없었다.
"아니요. 장 볼 시간이 어디 있었어요?
이건 그냥 내가 필요한 거 싼 건데요."
"네??.."
"이거 다요??"
"... 아니...캠핑을.."
"알겠어요. 우선 차에 타요.
캐리어는 내가 트렁크에 실을께요."
뒷좌석을 보니,
어디에도 그의 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훈지씨 짐은 어디 있어요?
트렁크에 있어요?"
"내 짐이요? 무슨 짐이요?
1박 2일 가는데 짐이 뭐가 필요해요?"
"잠을 집에서 안 자는데 왜 필요한 게 없어요?"
"가다가 편의점 들르면 되잖아요. 거기 다 파는데?"
우린 서로 말문이 막혀
아무말 없이 한동안 쳐다봤다.
"우선 출발할께요!!"
훈지씨는 신나게 말했다.
"네..."
'뭐지..여행을 가는데 왜 아무것도 안 가져가지..
나 놀리려고 농담한 건가..?'
"훈지씨, 여기 커피요...
배고프면 스콘 줄까요?"
"와~~이건 언제 준비했어요?
이런 준비성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 거에요?"
"생각을 하면 생기죠.
뭐가 필요할까 하고 생각을 하면..ㅎ"
"아...내가 생각을 안 해서 준비성이 없는 거구나!"
빠른 인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훈지씨...
신난 훈지씨한테
내가 찬물을 끼얹는 거일 수도 있는데..
우리 둘이 이렇게 캠핑을 가도 되는 걸까요?"
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우연히 알게 된 프라이빗한 캠핑장이 있어요.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서 괜찮을 거에요.
트레이닝복 입고, 모자 쓰고 하면 잘 몰라요.
평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을 거고...
걱정하지 말아요."
"봐요~~
훈지씨도 미리 생각하니까 준비를 해 뒀잖아요.ㅎ"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가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몇 가지를 사고 준비를 끝마쳤다.
'아..저렇게도 여행을 갈 수 있는 거구나..
나는 맛집까지 미리 검색하고 가는데.
이렇게 준비 없이 가는 여행은 처음이네..'
"훈지씨!!"
"왜 그러시죠?"
모처럼 생긴 휴가 때문인지,
우리 둘만의 첫 캠핑 여행 때문인지
그는 잔뜩 들떠 있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캠핑 자체도 처음인데...
그게 훈지씨랑 가는 거여서 더 좋아요.
그거 알아요?
처음은...늘 잊혀지지 않아...
나중까지 기억에 남는 건 맨처음에 한 거에요."
"우리가 나중에 힘들어지면,
내가 꼭.. 당신을 먼저 찾을께요." <41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