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y boy
STORY 4



지금은 반으로 찾아가는 첫 번째 시간. 내가 뱉은 말이니 지켜야지 뭐.

아까 등굣길에서 2반이라고 했으니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가려고 했다. 근데 막상 가면 뭐라고 하지? 달랑 인사 하나만 하고 오기에는 너무 쪽팔리고.


전정국
“아…. 야. 민윤기.”


민윤기
“…뭐.”


전정국
“내가 반에 찾아가야 할 친구가 있는데 막상 가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민윤기
“왜 찾아가는데.”

거짓말을 하면 바로 들통나는 편이라 긴장했다. 잘못 말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을 들킬 텐데. 어떻게 말해야 그럴싸할까.


전정국
“…그냥 그런 게 있어.”


민윤기
“여자냐?”


전정국
“아니…! 남자거든?”


민윤기
“…구라.”


전정국
“아닌데….”

민윤기는 자기 눈을 마주쳐보라고 했다. 아씨 이런 거에 진짜 약한데…. 결국 나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들켰다.


민윤기
“…ㅋ. 그래서, 좋아하는 애냐?”


전정국
“……. 내 이상형.”


민윤기
“……헐.”

엄청 놀랐을거다. 평소에 눈 높다는 소리를 많이 들을 정도로 여자를 안 좋아한 지 오래여서. 이상형이 까다롭기도 하고.


민윤기
“경사 났네.”


전정국
“뭔 경사야. 빨리 알려줘. 뭐라고 해…?”


민윤기
“잘 부탁드립니다.”


전정국
“아오.”


민윤기
“해봐 진짜.”


전정국
“지랄 마. 쪽팔려서 죽을 일 있냐?”


박지민
“아 그냥 안녕해.”

옆에서 듣고 있던 박지민이 답답한지 그냥 안녕하란다. 이상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찮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박지민
“근데 누구야? 너의 마음을 뺏어간 여자.”


전정국
“아 진짜 왜 저래. 갈래.”

나는 쉬는 시간이 끝나버릴까 봐 애들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고 빠르게 2반으로 향했다.

“음…. 혹시 걔인가.”

“누구.”

“있어 그런 게.”

“아까부터 뭘 계속 있대 시발.”


여학생들이 좀 시끄럽나. 나랑 민윤기, 박지민만 떠드는 조용한 우리 반과는 달리 2반은 무지하게 시끄러웠다. 여기저기에서 목소리가 겹쳐들려서 솔직히 머리가 조금 아팠다. 내 이상형에 조용한 여자도 추가해야겠다.

근데 그 친구가 안 보인다. 이 반이 아닌가. 아닌데 분명 2반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아까 아침에 옆반이네.라고 했었잖아. 근데 내 옆반이면 4반일 수도 있는데….라는 많은 생각을 뒤로하고 다시 우리 반으로 돌아왔다.

반으로 들어온 나는 그들이 나를 향해 보내는 뜨거운 눈빛이 부담스러워 그들을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물론 민윤기가 내 옆자리라 무시한 것은 소용이 없게 되었다.


박지민
“잘하고 왔냐? ㅋㅋㅋㅋㅋㅋ.”


전정국
“없더라.”


민윤기
“아. 노잼.”


전정국
“근데 확실히 여자애들이 시끄러운가 봐.”


박지민
“왜. 여자 반 처음 가보니까 시끄럽더냐.”


전정국
“어. 여긴 우리밖에 안 떠들어서 조용한데.”


민윤기
“엄청 시끄러운데. 너네들 너무 시끄러워서 짜증 나.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일 걸. 야! 여기 애들 짜ㅈ,”


전정국
“닥쳐 개새끼야.”

나는 갑자기 우리 반 친구들을 향해서 헛소리를 하는 민윤기의 입을 재빠르게 막았다. 얘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인 듯하다.


박지민
“민윤기 오늘 제일 많이 말했다.”


민윤기
“경사 났잖냐.”

아까부터 계속 경사 났네, 경사 났네. 그런다. 내가 내 이상형을 만난 게 왜 경사 난 건지….

“참 대놓고 잘 떠드네? 어? 박지민은 자리로 안 돌아가고 뭐해.”

갑자기 들린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는 교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많이 참은듯한 표정의 선생님이 교탁에 기대며 서있었다. 물론 우리 셋을 노려보면서.

우리가 선생님이 들어오신 줄도 모르고 떠든 건가. 분명 나는 종소리도 못 들었는데. 결국 지민이는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갔고 우리는 얼떨결에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민윤기가 잠들어버린 수업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박지민은 내 앞자리로 와서 빨리 그 친구에게 가보라고 재촉했다.


박지민
“이번엔 성공해라.”


전정국
“아 알겠다고….”

2반갈지 4반갈지 고민하다가 그냥 2반으로 향했다. 가봤더니 다행히 그 친구가 있었다. 나는 육성으로 안녕이라고 말해도 여자애들이 떠드는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힐까 봐 그냥 손만 흔들었다.

그 친구도 같이 흔들어줬다.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너무 기뻤다. 인사하고 바로 가면 좀 이상할까 봐 가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런데 그때 선도부 부장 선배가 2반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봤다. 또 나 잡으러 온 건가.

착각이었다. 그 선배는 나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 2반 학생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별 관심 없이 가려고 하던 참에 여주야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바로 이쪽으로 오는 어떤 학생을 봤다. 그 학생은 내 이상형인 그 애였다.

이름이 여주구나. 나는 여주가 뭐 잘못한 거 있나 궁금해서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근데 나를 발견을 한 건지 못한 건지 나에게는 단 하나의 눈길도 주지 않고 내 앞에서 대놓고 둘이 알콩달콩 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딱 봐도 여주의 얼굴에는 나 너 좋아해가 쓰여있었고, 선도부장 선배도 웃고 있었다. 그냥 가려고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 화가 솟아올라 그냥 둘을 지켜보기로 했다. 기분이 나빴던 탓인지 노려보는 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진짜 둘이 나에게 눈길 하나도 주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눈앞에서 무시당한 적, 아니 그냥 무시를 한 번도 안 당해봤던 나는 난생처음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매우 안 좋았다.

결국 야.라고 해버렸다.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른다. 순간 화가 너무 나서 나도 모르게 한 것 같았다. 그냥 갈걸. 위아래로 훑어보지도 말걸. 화나면 자동으로 나오는 버릇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엄청 후회된다.

결국 그냥 반으로 왔다. 내가 여태까지 내 돈 쓰면서 초코우유 준 건 뭐가 되고, 민윤기랑 박지민이 잘 해보라고 한 건 뭐가 되고, 또 내가 찾아간 건 뭐가 되는가. 비참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아닌가.


박지민
“욜. 오랫동안 있었던 거 보니까 얘기도 했냐?”

했긴 했지. 상대가 내가 아니라는 것만 빼면 박지민의 말은 백번 천 번 맞았다.


전정국
“어 했다.”


박지민
“뭔 얘기했냐.”


전정국
“나랑 말고 선도부장 그 새끼 있지. 걔랑 했다.”


박지민
“엥. 갑자기 그놈이 왜 나옴.”

반말하고 욕하고 뒷담 까서 미안해요 선배. 순간 화가 너무 나서 어쩔 수 없었어.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네.


전정국
“몰라. 여주도 선도부장 좋아하는 거 같던데.”


박지민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


전정국
“선도부장이 여주야. 부르고 걔가 나왔어. 웃으면서.”


박지민
“헐. 어떡해 정국씨….”


전정국
“몰라. 그만 말할래.”


박지민
“알겠어. 남은 시간 동안 여친 보러 가야지."

아 진짜 쟤는 왜 저럴까. 꼭 이렇게 실패한 사람 앞에서 꼭 저런 말을 해야 할까.


전정국
“개새끼야?”


박지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장난이다. 종 쳤어 이미.”

4교시 쉬는 시간이 됐다. 3교시 때도 안 간 것처럼 이번에는 안 가기로 했다. 어차피 가봤자 나를 반기지도 않고 인사만 하면 끝인걸.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은 다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으니.


박지민
“아 졸려 뒤지겠다.”


전정국
“민윤기는 이미 자네.”


박지민
“얘 2교시부터 자지 않았냐?ㅋㅋㅋㅋ. 몇 시간 동안 자는 거야.”


전정국
“지금 4교시 쉬는 시간인가.”


박지민
“어. ㅋㅋㅋㅋㅋㅋㅋ.”


전정국
“미친. 야 민윤기.”

2교시 중간부터 잔 윤기는 지금까지 안 일어나고 계속 자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윤기를 깨우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어차피 한번 자면 깨워도 잘 안 일어나니. 나는 얼른 깨웠다. 하지만 윤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박지민
“야 윤! 기! 촉! 촉!!!”


전정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박지민은 윤기의 귀에 대고 윤기가 제일 싫어하는 별명인 윤기 촉촉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민윤기
“……. 뒤질래.”


박지민
“일어났다.”


전정국
“지금 4교시 쉬는 시간이야 윤기야.”


민윤기
“아…미친.”


박지민
“ㅋㅋㅋㅋㅋㅋㅋㅋ학교 왜 다니냐.”


민윤기
“어우 씨. 잠 깨야겠다.”


박지민
“…같이 옥상 고?”

저 말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자는 얘기이다. 언제쯤 끊으려나. 박지민은 이미 틀렸고 민윤기는…얘는 더 오래됐구나. 그냥 저 둘의 폐는 이미 검정색일 거다.


민윤기
“…고.”

5교시는 그냥 쨀 생각이구나 얘네들. 하는 수없이 나 혼자 5교시를 외롭게 보내야겠다. 어차피 수업 시간에는 지민이와 자리가 떨어지고 윤기는 항상 자서 있으나 마나이니 상관없다.

“지민이랑 윤기 어디 있니?”

5교시가 시작되었고 지민이와 윤기가 없는 것을 발견한 선생님의 질문에 그 어떤 학생도 대답하지 않았다.

저번에 지민이가 학교에서 딴 학교 애들이랑 몰래 술 먹다가 취해서 우리 반 애들한테 술 담 꼰지르면 죽여버린다.라고 외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얘는 기억을 못 한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줘야겠네.


전정국
“보건실 갔어요. 다쳐서.”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니, 정국아?”


전정국
“알아서 생각하세요.”

“……반장은 지민이랑 윤기 찾아서 데리고 와.”

“…네…?”

우리 일에 저 애까지 휘말리면 좀 그러니까 또 내가 나서기로 했다. 진짜 얘네들은 나 없으면 안 된다니깐.


전정국
“제가 찾아올게요.”

“전정국, 너는 이 일에 나서지 말아 줄래? 선생님이 알아서 할 거야.”

항상 이런 식이라니깐. 특히 차별하는 건 저 선생님이 더욱 심하다. 우리 이미지가 좀 그렇긴 해도 모든 애들이 다 박지민이랑 민윤기 같진 않은데 말이야. 걔네 둘은 진짜 문제 아고, 나는 그래도 바람직한 편이지 않나?

심지어 저 선생님은 1학기 기말고사 때 점수 잘 받은 나에게 부정행위 했냐고도 물어본 선생님이다. 그날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저 선생님에게만 싹수없게 군다. 유치하지만 사소한 복수랄까.


전정국
“아 그냥 제가 간다니까요.”

나는 이 말 한마디만 내뱉고 반을 나왔다. 5교시 수업을 못 들은 건 아깝지만 어차피 저 선생님은 수업도 제대로 안 하시니까 상관없다.


반을 나온 나는 옥상에 있겠지 하며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정국
“…야. 미쳤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얘네들은 정말 문제아구나. 오늘은 왜 이런 애들과 친구로 지냈을까 처음 후회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