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출근하자마자 후배 사원이 다가왔다.
"오늘 기사 보셨어요?"
김여주는 노트북을 켜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기사죠?"
"어제 촬영 사진이 벌써 올라왔는데..."
후배가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촬영 현장을 멀리서 찍은 사진.
조명이 넘어질 뻔했던 순간, 해찬이 김여주의 손목을 붙잡은 장면이었다.
사진 각도 때문인지 두 사람이 꼭 서로를 끌어안은 것처럼 보였다.
기사 제목은 더 자극적이었다.
'해찬, 광고 촬영장에서 포착된 의문의 여성?'
김여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홍보팀에 연락하세요."
"기사 내려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말해 두세요."
"현장 사진 유출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차분한 대응.
하지만 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부장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런 불필요한 구설수라는 걸.
-
같은 시각.
해찬의 대기실.
"야."
매니저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이 기사 봤냐?"
"..."
해찬은 화면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걸 기사로 쓰네."
"웃을 일이 아니야."
"회사에서도 연락 왔어."
"해명문 낼까?"
해찬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괜히 더 커져요."
"...근데 김부장님 괜찮으실까."
그 한마디에 매니저가 고개를 들었다.
"너 걱정할 사람은 너 아니냐?"
"저야 맨날 이런 기사 나오잖아요."
"..."
"근데 일반 직원은 다르죠."
해찬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괜히 저 때문에 피해 보시면 안 되는데."
-
오후.
브랜드 본사.
예상대로 임원 회의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
"김부장."
상무가 기사 화면을 띄웠다.
"이게 뭡니까."
"촬영 현장에서 이런 사진이 나오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김여주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조명이 넘어졌습니다."
"모델이 저를 피하게 해 준 상황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런 오해를 살 행동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잠시 정적.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해찬과 소속사 관계자가 들어왔다.
원래는 다음 촬영 회의 때문에 방문한 것이었다.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상무는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마침 잘 오셨네요."
"모델분도 아시겠지만 이런 기사 때문에 회사 이미지가..."
"죄송합니다."
해찬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상황에서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조명이 넘어졌고."
"제가 가까이 있었고."
"당연히 잡은 겁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김부장님은 끝까지 촬영부터 걱정하셨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런 상황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담담하지만 단호한 목소리.
김여주는 처음으로 해찬을 바라봤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앞에 나서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회의가 끝난 뒤.
복도.
"죄송합니다."
해찬이 먼저 말을 꺼냈다.
"괜히 신경 쓰이게 해드렸죠."
"..."
"저 때문에."
김여주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닙니다."
"원래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고."
김여주가 처음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해찬은 눈을 크게 떴다.
"회의에서 말씀해 주신 거."
"굳이 안 하셔도 됐는데."
잠시 침묵.
해찬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사실대로 말한 건데요."
"..."
"억울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답게 웃으며 말했지만.
김여주는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
저녁.
촬영 스튜디오.
다음 광고 촬영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쉬는 시간.
김여주는 혼자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김부장님."
해찬이 작은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커피입니까."
"아니요."
김여주가 받아 들고 안을 들여다봤다.
따뜻한 유자차였다.
"..."
"커피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요?"
"네."
"커피는 늘 남기시더라고요."
"..."
"그래서 이번엔 따뜻한 거."
김여주는 종이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직업병인가 봐요."
해찬이 웃었다.
"사람 보는 거 좋아해서."
잠시 정적.
"김부장님."
"...네."
"맨날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마세요."
"..."
"생각보다."
"주변에 김부장님 편인 사람 많을걸요."
김여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
김여주는 손에 들린 빈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평소라면.
누군가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끝까지 다 마셨다.
그 모습을 본 후배 사원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부장님."
"...왜."
"유자차 좋아하세요?"
"..."
김여주는 잠시 멈칫했다.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배려가.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그리고 처음으로.
김여주는 스스로에게 인정했다.
'이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 많이 다르다.'
- 4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