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을 집에 들였습니다

1화 - 검은 머리 짐승이 들어왔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거실로 내려왔더니 부모님이 함께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아빠는 소파를 밀어 바닥을 닦고 있었고, 엄마는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던 장식장 위를 닦는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아침부터 옷차림까지 말끔했다. 엄마는 주말엔 안 하던 화장까지 하고, 아빠는 머리까지 만진 모양이었다.

 

“어디 나가?”

“어어, 하민이 올 거야.”

 

냉장고를 열던 손이 멈췄다.

 

“하민? 유하민? 걔가 여길 왜 와?”

“이번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기로 했나 봐. 학교 때문에 하민이만 먼저 왔대.”

“그래서 집까지 청소해?”

“앞으로 같이 살 건데 깨끗해야지.”

 

냉장고 문을 그대로 닫았다.

 

“뭐!? 누구랑 누가 같이 살아?”

 

아아, 들어오는구나. 별 생각 없던 나는 이어지는 말이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며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걸레를 접었다.

 

“하민이 부모님은 정리할 게 있어서 두 달 뒤에 들어오신대. 그동안 하민이는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

“두 달?”

“방도 남고, 어릴 때부터 알던 애인데 뭐 어때.”

“그걸 왜 지금 말해?”

“말 안 했나?”

 

태연한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따져봐야 나만 피곤해질 것 같았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있으니 아빠가 다가와 턱을 올려 입을 다물려줬다.

 

우리 부모님 맞아?! 어떻게 딸한테 이런 것도 안 알려줘!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가 반색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아빠도 들고 있던 밀대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 뒤로 따라가자 열린 문 너머에 커다란 캐리어가 보였다.

그 옆에는 유하민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민은 부모님께 먼저 허리를 숙였다. 한 손에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이건 부모님이 전해드리라고 하셨어요.”

“어머, 몸만 오지 뭘 이런 것까지 챙겼어.”

 

들어와들어와, 하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엄마가 쇼핑백을 받아드는 동안 아빠는 하민의 캐리어를 안으로 옮겼다. 그제야 하민이 현관 한쪽에 서 있던 나를 발견했다.

 

스토리 핀 이미지

 

“오랜만이야.”

 

짧아진 머리도, 전보다 훨씬 커진 키도 어색했다. 내가 기억하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몸집만 달라진 것 같았다.

 

“……어.”

 

그게 전부였다.

하민 역시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부모님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두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무슨. 네 집처럼 편하게 있어.”

 

아빠가 하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엄마는 벌써부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며 하민을 거실로 데려갔다.

불과 몇 분 만에 나만 빼고 모두 적응한 분위기였다.

 

“여주야, 하민이 방 좀 알려줘.”

 

엄마가 내 옆 방 쪽을 가리켰다. 아니, 하필이면 내 옆방이야 또?!

며칠 전부터 빈방을 정리하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됐다.

내가 어물쩡거리자 엄마가 등을 손바닥으로 팍, 쳤다. 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앞장섰다.

뒤에서는 하민이 캐리어를 들고 따라왔다. 바퀴가 계단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아예 들어 올린 모양이었다.

 

“여기야.”

 

거실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서 있는 두 방 중 왼쪽 문을 열자 새로 깐 침구와 비워둔 책상이 보였다. 하민은 캐리어를 방 안에 내려놓고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누나 방은 그대로네.”

 

옆에 있는 내 방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건 어떻게 기억해?”

“기억나니까.”

 

별것 아닌 대답이었는데 괜히 말이 막혔다.

나는 방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월요일부터 우리 학교 오는 거지?”

“응.”

“그럼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마. 같이 산다는 얘기도 하지 말고.”

 

하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좀 심했나?

대신 열린 방문 너머로 복도를 살폈다. 거실에서는 엄마가 아빠에게 과일을 내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민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매정하면 서운한데.”

“너…….”

 

목소리는 나한테만 들릴 만큼 작았다.

뭐라 해주려더 찰나, 밖에서 아빠가 나와 하민을 불렀다.

 

“여주야, 하민아, 짐 다 옮겼어? 내려와서 과일 먹고 해.”

 

하민은 어깨를 으쓱하곤 곧장 몸을 돌렸다.

 

“네. 나머지는 제가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싹싹한 목소리였다. 곧장 방문을 나서는 하민의 뒷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 이제 3년 정도이려나.

 

 

중학생이던 하민은 딱 한 번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 우린 많이 친했으니까.

평소처럼 집 앞까지 함께 걸어온 날이었다. 하민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말했다.

 

'나 누나 좋아해. 동생으로 말고.'

 

그리고 그때의 나는 예준을 좋아하고 있었다. 뭐, 이제와서 다 지난 일이지만.

나의 거절 멘트는 아마 최악이었을거다. 더 좋게 거절할 방법이 있었을텐데,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는 했었다.

 

'미안. 나는 예준이 좋아해.'

 

하민은 이유를 묻지도, 다시 생각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한참 서 있다가 알겠다고 대답한 게 전부였다.

얼마 뒤 하민은 부모님을 따라 외국으로 갔다.

 

 

그 후로도 한국에 들어올 때면 몇 번 마주쳤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다시 나온 적이 없었다. 하민도 전과 다름없이 굴었다.

그래서 진작 끝난 일인 줄 알았다.

 

“여주야, 너도 와서 과일 먹어!”

“엉 지금 가!”

 

앞으로 두 달.

끝난 줄 알았던 유하민이 바로 옆방에서 지낸다.

 

방문을 나가며 그제야 불현듯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던데.

우리 부모님은 이미 방까지 내어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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