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_0.2
그 상태로 얼어붙은 둘은 같은 시선으로 김태형을 바라봤다. 그 눈빛의 의미는 ‘얘는 뭐지?’ 라는 의미였다. 오싹한 느낌에 소름이 돋은 가랑은 급히 손을 피했다. 당황한 나머지 머리도 잘 안 굴러갔다. 물어온 질문에 답을 해야하지만 뇌가, 머리가 고장이 나버렸다. 입만 뻐끔 말을 하려고 하는데 머리가 고장나서 그런지 입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태형은 한참을 뜸을 드리다 말을 덧붙였다.
“그… 지금 안 되면… 이따가 점심시간에 옥상으로 올래…?”
“아, 응… 그럴게.”
이때 대답을 잘못 했다는 것을 점심시간에 깨달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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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시작한지 벌써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다. 10분이라면 사람들이 기다리다가지쳐버려 화가 난 나머지 가버리는 정도의 시간인데, 만약 아직까지 기다린다면? 인내심 상을 줘야할 정도이다. 근데 기다리지 않고 있다면? 굳이내 시간을 허비해 허탕을 치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근데 김태형이랑 별로 접전도 없던 난데, 설마 쌩판 모르는 애를 계속기다려? 소문의 김태형이? 말도 안 된다. 결론은,
“가지 말자.”
였다. 굳이 갈 필요가 없었고, 갈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생각을 접고, 그대로 눈을 감아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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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ㄹ…”
“ㄱ, ㅏ 랑…”
“가… 랑… ㅇ,”
“가랑아!
“ㅇ, 어…?”
“수업 시작했어!”
눈을 떠 봤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수업이 이미 시작 되었을 때였다. 눈 앞에 보이던 선희는 날 보며 웃음을 지으며 수업이 시작 되었음을 알렸다. 칠판에는 안 보이던 인영이 서있었다. 선생님이였고, 교과목은 국어였다.
“여기서 이런 문장이 들어간 이유는…”
선생님의 말이 한 귀로 들려지고, 한 귀로 빠져 나간다. 왜일까? 잠을 못 자서? 전혀 아니다. 오늘은 진짜 푹 잤다. 아침에 봤던 유박선 때문에? 아니다. 오늘만 본 게 아니니까. 2학년 때도 보고 내일도 보고 내일 모래도 볼 예정이기 때문에 전혀 그럴 리 없다. 그럼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김태형? 걔가…? 전혀 그럴 일 없다. 아침에 조금 도움을 받았을 뿐. 오늘 아침 빼고는 아무 접전도 없다. 아니 전혀없었다. 아니 전혀 아니다. 전혀아닐 것이다. 억지로라도 부정을 하지만, 부정은 점점 옅어지며, 긍정으로 변한다. 맞다, 김태형이 문제다. 이젠 이렇게 부정하는 것도 긍정적으로들리기 시작했다. 그냥 이젠 인정한다.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이유도, 오늘부터 이렇게 고민이 많은 이유도. 다 김태형이 중간에 튀어나와서 문제가 되었다.
“옥상, 가봐야겠네.”
수업 시간이 점점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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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문을 세차게 열면 바람과 함께 푸른 하늘이 보인다. 안 그래도 높은 곳이라 그런지 유난히 하늘이 더 파랗고 진하게 보인다. 진하게 보이는 하늘은 옅은 주황색이 보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나 빠르게 올라온다는 것을 빠르게 올라왔는데, 역시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가 지는 허공만 보였다. 덩그러니 문 고리만 잡고 있던 손은 문을 활짝 열어, 천천히 발을 밀어 넣어 옥상에 발을 디뎠다. 바람은 역시 차가웠다. 차가웠지만 산뜻했다.
“없네.”
김태형은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모를까하고 찾아왔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허탕을 쳤다고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약속을 깬 내 잘못도있었다.
반대로 생각해, 내가 김태형이였으면 나를 한대 팼을 것 같았다. 올라간다는 대답도 들어서 모처럼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점심시간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다니 반에 찾아가 한대 팼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반에 안 찾아온 걸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 그래도 아직은 좀 춥네”
교복 치마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펄럭인다. 머리카락도 바람에 따라 휘날린다. 눈 앞에 보이는 벤치, 올라온 김에 내려가기도 아쉽기도 하니 앉았다 가는 게 좋아 보였다. 그리고 벤치를 향해 한걸음, 두 걸음 발을 떼고 있었을 때
덜컥.
뒤에서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봤을 때는 검은 모자와 단정한 교복, 맘에 들었던 컨버스까지. 소문의 그. 김태형이 서있었다.
이번엔 무슨 느낌이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안심이 생겼다.
😞
